상처를 짊어지고 새벽으로 향하는 나의 이야기
많은 시간과 많은 일들을 겪고 돌아온 내게 나는 스스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과거를 외면하는 게, 정말 나의 염원인가?'
많은 밤을 돌고, 많은 기억을 지난 지금에 와서야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잊고 싶다고 되뇌던 것들이 사실은 잊히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구성한 고통과 상처를 지우는 것으로 회복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내가 겪은 모든 계절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비틀거렸던 날도, 벼랑 끝에 선 채 울먹이던 날도,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든 조각들이었으니까. 나의 희망적이고 밝은 이야기를 담은 흰 달빛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절망적이고 증오와 분노를 담은 검은 물결의 이야기.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걸 쓴 건 모두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흰 달빛과 검은 물결은 내가 살아낸 시간의 양극이었다. 하나는 희망을 품은 위로였고 하나는 진실을 품은 절망이었다. 나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는 둘 다 나였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내가 그토록 깊은 생각을 이어가야 했던 이유는 사람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다. 나에겐 누구보다도 소중했던 사람이 누군가에겐 악연일 수도 있고, 내게 악연이었던 사람이 누군가에겐 삶의 이유가 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얻고 싶어 했다. 사람의 진심은 원래 여러 개인 법이니 이걸 보고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결국 흰 달빛도, 검은 물결도, 전부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생겨난 서사다. 새로운 삶으로 접어든 만큼 한 번씩은 돌아봐야 한다. 그 사람은 지금의 나와 마음이 닿아있는지. 아니면 그리운 건 예전의 기억뿐인 건지. 나 없이도 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놓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내가 바라는 건 그 사람이 나를 다시 바라보는 것인지, 아니면 내 진심이 닿는 순간인지.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없는 삶도 견딜 수 있는 내가 되었는지. 그 사람은 지금도 함께 걷고 싶은 동행자인가, 아니면 내가 길을 찾던 어느 밤에 옆을 비춘 작은 등불이었을 뿐인가. 등불은 길을 보여주지만 항상 함께 가진 않는다. 그 빛 덕분에 잠시 멈추지 않고 걸을 수 있었던 시간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소중함이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나와 함께할 불빛이 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짧게 생각해서 될 일은 아니다. 사람의 뇌 구조가 우주의 구조와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 한 명은 하나의 우주를 가지고 있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다는 건 두 개의 세상이 충돌한다는 걸 의미한다. 어떤 별들은 서로 부딪혀 파멸할 것이고 어떤 별들은 더 아름다운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성간 거리는 매우 멀기에 두 은하가 충돌한다고 해도 그 충격은 거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별이 산산조각 날 것이고 누군가는 생명을 잃어야만 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운명이 탄생할 때, 부서진 자리는 확실히 남게 된다. 그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남아 그 상처를 덮을 수 있다면 그제야 두 세계는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사람에게 있어 인연을 쉽게 포기할 수 없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이 기억은 계속 지니고 가야 할 것인가. 이 사람은 내 미래에서도 함께 걸어가야 할 존재인가. 그 답은 아직 완전히 알 수 없지만 하나 분명한 건, 나는 더는 이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흰 달빛은 나를 멈추지 않게 했고, 검은 물결은 나를 놓지 않게 만들었다. 어느 한쪽만으론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둘의 교차점에서 나라는 사람을 다시 만들고 있다. 넘어지던 순간도, 떠오르던 순간도 결국은 나였다. 사람은 어쩌면 결국 자신 안의 빛과 어둠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아로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선택했다. 흰 달빛과 검은 물결. 그 둘 모두를 품은 채로 걷기로. 이제 나는 한 가지를 더 염원하게 되었다. 과거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 위에 그 모든 걸 기억한 채로도 누군가를 다시 믿을 수 있기를. 다음번에 내가 건네는 마음은 부정당하고 짓밟히지 않기를.
한 때 나는 수많은 고통과 고독을 마주하고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깨달았다. 대가 없이 사람을 구하는 신 같은 건 없다는 걸. 여정에 오르기 전 되뇌었던, 희미해진 기억 속 나의 다짐이 떠올랐다. 나의 길을 지키자. 그 맹세를 기억하자. 무언가를 바꾸려는 사람은 오직 자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미래가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걸어갈 것이다. 사람은 마음속에 저마다의 신의 낙원을 품고 있고, 이 세상에는 인간이 스스로 지어야만 하는 낙원이 있다. 그 이상은 하늘의 태양과도 같아, 난 거기에 닿기도 전에 녹아내려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고난은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의문에는 영원히 답이 없을 거다. 영원한 의문에 대한 답은 영원한 침묵만이 있을 뿐이니까. 그러니, 이게 끝이 아니라면 이 여정의 끝을 눈에 담기 전까지 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절대 운명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걷는 여행자다. 아무리 외롭다고 한들, 앞으로 걸어가는 한 서로를 잊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여정의 끝이 바라던 이상에 닿기를 바라고 싶다. 반복된 윤회를 마친 여덟 번째 날. 나는 나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을 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