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철 넘치는 미련을 다 흘려보내고자 쓰는 글
2월 28일 아침, 지이잉- 알람과 함께 교육청에서는 숫자로 나에게 안녕을 고했다. 한 통의 문자로 22년 교직 생활이 끝나는 것 같아 그날도 기분이 참 묘했는데. 3월 4일,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 아침, 기상하며 마주한, 시각을 알리는 숫자에 비로소 실감했다. 아, 정말 끝이었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교실로 출근하지 않는다. 평소라면 이미 출근 준비를 다 마치고 시동을 걸고 있을 시각, 아침 7시 10분 무렵 눈을 떴다. 평소라면 책상 줄을 다시 맞추고 교실을 둘러보며 떨리는 숨을 훅 내뱉었을 시각에 평온한 마음으로 성경을 펼쳤다. 평소라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종이에 썼다 지우고 했을 시각에 그저 깨닫고 떠올린 점을 묵상 노트에 썼다. 평소라면 어떤 선생님일까, 나처럼 바짝 긴장하며 들어오는 아이들을 향해 입꼬리를 올려 어색하지만 밝게 웃으려 애쓰던 시각에 내 몸을 데워줄 따뜻한 호박현미팥차 한 잔을 마셨다.
그렇다. 이제 나는 더이상 봄이 가장 늦게 찾아오는 교실에 오들오들 떨면서 들어서지 않아도 된다.
교직 마지막 해까지 줄곧 품었던 교실에 대한 이미지였다.
2005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난 두 해까지는 5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 6학년, 9명이 전부인 5학년을 맡았다. 학교를 옮겼더니 학급 규모가 4배나 커졌다. 4학년 2반 36명. 한꺼번에 너무 많아진 학생들에 정신이 아득했다. 학급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전혀 감도 오질 않았다. 교직 생활 처음으로 성대 결절을 얻었다. 요령 없이 소리만 빽빽 질러댄 탓이다. 마이크를 쓰는 건 상상도 못 할 때였고, 설령 쓸 수 있다 해도 어리숙한 학급 운영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지 않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 갔더니 말을 하지 말란다. 다음날 한글 프로그램을 TV 화면에 크게 띄웠다. 수업 내용 전달 외에 불필요해 보이는 말, 하지만 정말 자주 하는 말, ─예를 들면, '교과서 몇 쪽 펴세요', '누구누구 조용히 하고 선생님 보세요'와 같은 말을 화면으로 보여줬다. 첫날은 눈물 날 정도로 나를 배려하던 아이들이 다음날 원상 복귀되었다. 결국 안 나오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 짜냈다. 안 그래도 처음 만나는 아이들로 긴장해 몸도 마음도 얼어 있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던 교실이 더 춥게만 느껴졌다. 늘 도톰한 재킷과 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3월 어느 날, 학급 안내판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일 년 내내 교실 옆에 붙어있을 사진이라 화사한 옷을 입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실내가 이렇게 추운데, 야외는 더 춥겠지. 그날도 여느 날처럼 도톰한 재킷과 겨울 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어깨가 절로 움츠러드는 추운 교실에서 입기에 딱 적당한 두께. 학년별로 주어진 시간에 맞춰, 아마도 10시 무렵에 운동장으로 나갔다. 예상하지 못한 풍경과 맞닥뜨렸다. 운동장 화단 나무에는 연둣빛 잎이 이미 많이 자라 있었고, 활짝 핀 꽃도 보였다. 아마도 매화꽃이었지 싶다. 새초롬한 노란빛 수선화도 있었던 것 같다. 학교 건물 뒤에 있는 주차장과 4층 교실만 오가느라 전혀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또 햇빛은 어찌나 따스한지. 운동장에서 마주한 봄은 참 화사하고 따뜻했다. 도톰한 재킷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따스한 햇볕 아래 이제는 이 재킷을 벗어도 되겠다 여기며 교실로 돌아왔다. 살짝 덥다 여길 때 땀이 났나 보다. 교실로 들어오자 또다시 오슬오슬 추웠다. 그 후로 며칠을 더, 정확하게는 3월 중순까지 그 재킷을 입고 다녔다. 교실 밖에서는 화사한 꽃과 여리디 여린 새싹이 봄의 입성을 알리는데, 교실은 여전히 찬기가 가시지 않는 겨울이었다. 대체 교실엔 언제 봄이 찾아오는고. 그해부터 교실은 줄곧 나에게 이런 이미지였다, 봄이 가장 늦게 찾아오는 곳.
봄이 가장 늦게 찾아오는 데에는 물리적 요인이 있을 테다. 온전한 햇빛을 듬뿍 받을 수 있는 바깥에 비해 아무래도 건물 안으로는 따스한 봄 햇빛이 잘 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해 내가 있던 교실은 바로 남쪽에 본관 건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려는 봄 햇살마저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남쪽으로 뻥 뚫린 운동장만 마주하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봄이 늦게 찾아온다 여긴 걸 보면 심리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합을 맞춰 운영했던 모든 익숙한 사람(학생, 동료 교사 등)과 환경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향해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때가 바로 3월이다. 온몸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긴장 상태에 있으면 근육은 움츠러들고, 그에 따라 혈관도 수축된다. 수축된 혈관으로 피가 잘 돌기 만무하다. 항온 동물이라 그럭저럭 유지하고는 있지만, 수축된 혈관으로는 오랜 시간 제기능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낯선 환경에서 혈관도 고군분투 애를 쓰지만, 충분하지 않다. 자연히 추위를 더 많이 느낄 수밖에.
하지만 이제 나는,
봄이 가장 늦게 찾아오는 교실에서 더이상 오들오들 떨지 않아도 된다.
3월이, 다르게 말하면 새 학년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 바깥 날씨부터 확인했다. 미련이 철철 넘치는 건지, 아니면 떠났음을 비로소 실감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다.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경남에 눈발이 흩날렸다. 11시가 가까워오는 지금도 내리고 있다. 도로에 닿자마자 녹는 걸 보면 진눈깨비인 것 같기도 하다. 2월 말, 두꺼운 패딩이 점점 거추장스러워지기에 시나브로 봄이 온다 여겼는데, 역시 3월은 매섭고 춥다. 올해도 과연 교실에 가장 늦게 봄이 찾아올까? 나로서는 이제는 알 수가 없다. (혹여나 기간제 교사를 하지 않는 이상)
하지만 예전의 나처럼, 새 학년 첫날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새로운 교실에 들어서 처음 보는 눈망울을 만났을 많은 선생님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그래도 교실에 봄은 찾아오더라고요. 늦더라도 결국 봄은 오니까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사람이 곧 편해지고 익숙해지는 때가, 그래서 근육과 혈관이 이완되어 몸에 피가 잘 도는 때가 결국은 오니까요. 부디 다들 강건하시길,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몇 구절 인용합니다.
1) 어제 스레드에서 읽었던 김종원 님의 구절입니다.
불안한 이유는 마음속에 잘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시작 앞에서 불안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잘하고 싶은 마음은 아이 성장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정말 소중한 가치이니까요.
-<부모의 질문력>, 김종원
2) 작년 우리 반 아이의 일기글입니다.
(사진으로 찍어두지도, 적어두지도 않아서 제 기억에 근거해 씁니다. 필사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합니다.)
예전에 스노클링을 처음 할 때는 물에 빠질까 무서워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런데 아빠의 도움을 받아 도전해 보니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처음엔 긴장했지만, 점점 재미있어졌다. 더 하고 싶었다.
3학년이 되면 어떨까? 잘할 수 있을까 많이 긴장되고 떨린다. 하지만, 스노클링을 했을 때를 기억하자. 일단 해봤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무섭지도 않고, 별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점점 재미있어졌으니까. 나는 3학년 생활도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DS 초등학교 2024학년도 2학년 1반 일기글, ㅈㅂㅎ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불안하고 떨리고, 긴장되지만,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니고 점점 재미있어지기를, 올 한 해가 부디 재미있고 즐거운 한 해가 되기를 무척이나 바라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