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적응자로소이다

-제삼자의 눈으로 경력 증명서를 읽다-

by 그린플러그


2025년 3월 1일 자로 백수가 되었다. 일 년 내내 딱히 하는 것도 없이 도서관에만 들락날락거렸다. 아, 하는 게 없진 않았구나. 300권 이상의 책을 읽었고, 이리저리 떠도는 생각을 낚아채 조잘조잘 쓴 글은 일기장 두 권을 꽉 채웠다. 정서적 시각으로는 매우 생산적이었으나 경제적 시각으로는 굉장히 비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그동안 모은 돈을 다람쥐처럼 야금야금 까먹었다. 일 년 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말 다행이랄 건,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거다. 그 분야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데다 상당히 장기전이라는 점이 누군가의 눈에는 걱정스러운 지점이겠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잘 됐다 싶다. 단기전이라면 성취 이후가 걱정이다. 이제는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매번 새로운 목표를 생각해 내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일 것이 분명하다. 긴 시간을 두고 이뤄낼 목표라면, 매해 수행 가능한 것으로 쪼갤 수 있다. 하나만 이뤄도 잘 해냈다 토닥일 수 있고, 그다음 해는 성취한 것을 기반으로 한 단계 성장한 세부 계획을 설정할 수 있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도 삶을 유의미하게 일구기에 훨씬 좋다. 나에게만큼은.

2025년, 작년 한 해는 내게 자질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해로 정했다. 총 네 군데 도전을 했다. 두 군데는 시원하게 미끄러졌고, 두 군데는 작지만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무려 50%의 성과다!

결과를 분석해 보자면, 미끄러진 요인은 내 탓이었다. 한 번은 게을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무작정 저질러 버렸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하는 동안만큼은 설레고 즐거웠으니 시작 단계에서는 그만하면 되었다. 다른 한 번은 절실하지 않았다. 철저한 의도 분석을 통해 발로 뛰며 시도해 보아야 할 일을 앉은자리에서 해치우려 했다, 어떻게든. 간절하지 않으니 게으름을 부린 것이다. 그러니까 미끄러진 요인 중 하나는 나의 태만, 다른 하나는 월등한 자산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는 것. 그게 축적된 시간일 수도, 영특한 전략일 수도 있겠지.

성과를 거둔 이유는 운이었다. 두 곳에서만큼은 꼭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 정말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고 모두가 좋은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성과를 얻은 이유는 크게 보아서는 운이다. 그래도, 아예 자질이 없다면 그런 운도 누리질 못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게 약간이나마 자질이 있는 걸 수도?!

그렇게 결론 내리고는 올해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바로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어보는 것. 아주 조금이라 할지라도. 다르게 말하면, 올해도 백수로 지낼 계획이다.


그나저나 백수에게 돈 나갈 곳이 이리 많을지 몰랐다. 특히, 꾸미고 치장하는 데 예상보다 많은 돈이 든다.

교사로 지낼 때는 직업에서 풍기는 일종의 품위라는 게 있었다. 그러니 그리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일하느라 꾸밀 겨를도 없었고. 반면, 백수인 현재는,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건 '나' 말고는 없다. 백수에게 넘쳐나는 건 시간이고, 그 시간 중 일부를 나를 꾸미는 데 쓰게 된 것. 취향과 추구미, 그리고 내게 어울리는 것 사이에서 조율을 맞춰가다 보니 이제는 시간뿐만 아니라 돈도 쓰게 되었다. 예상보다 더. 꼭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 때문만은 아니다. 잘 꾸며진 모습은 내가 내게 주는 하나의 선물이기도 해서 교사일 때보다 더 분위기 있어진 거울 속 나를 보면 만족스러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럼에도, 꽤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치장 비용의 타당성을 아무리 소리 높이 외친다 해도, 백수인 지금 야금야금 사라지는 돈에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혹시나 형편이 궁해져버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될까 봐 불안할 때도 있다. 조금씩 줄어드는 은행 잔고에 생활비라도 벌어보자 싶었다. 이번 참에 시급도 괜찮고, 시간도 어느 정도 여유로이 쓸 수 있는 알바를 구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알아본 일이, 바로 기초학력 지원강사.


이동 동선이 나름 괜찮아 눈여겨보던 학교에서 올린 모집 공고에 얼른 지원서를 냈다. 운 좋게도 1차 서류 전형은 통과! 2016년 유네스코 협력교사 지원 이후로 거의 10년 만에 보는 면접이었다. 떨렸다. 모르는 이들, 특히 점수를 매기는 누군가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하는 건 정말 긴장되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예상 질문을 검색하고 답변을 준비했다. 그런데 왜 별로 즐겁지 않은 걸까.

이런 내 맘이 면접 때도 반영된 걸까. 결과는, 낙방. 비록 면접 후에 '차라리 떨어지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긴 했어도, 불합격 소식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차라리 잘된 일이야. 붙었다면 이번에도 나한테 안 맞는 옷을 입고는 또 맞는 척하며 지냈겠지.' 싶었다.

비록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안할지라도 실패는 실패다. 뜻한 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경우엔 늘 그러했듯 이번에도 실패 요인을 분석했다. 내가 다른 지원자들보다 매력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첫째, 간절함이 없는 면접자. 면접에서 간절함이라고는 없었다. 사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긴 했다. 계속 담임과의 협조무새처럼 말했으니.

둘째, 반길 수 없는 동지. 한창 남은 교직 생활을 중도에 그만둔 이가 다시 학교 현장으로 돌아오는 게 학교 입장에서는 과연 달가울 수 있을까? 그곳을 일터로 근무하는 교사가 돈이 궁하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장소로 학교를 바라보는 퇴직자를 과연 반길 수 있을까.

셋째, 평범하지 않은 경력 증명서. 가르치는 일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직 생활을 일찍 그만둔 건 아닐까 우려했다는 면접관의 질문이 있었다. 교사로서 정말 열심히 살아왔기에 그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여길 만도 하지 싶다. 첫 부임 후 10년 동안은 정말 무난한 길을 걸어왔다. 11년 차에 다녀온 교육청 주관 영어 연수 파견 이후로 경력이 돌변했다. 학교에 진득하게 오래 머무른 적이 없다. 1년 반 정도 근무하면 꼭 학교 현장을 벗어나려 들었다. 어학연수 휴직,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교육문화재단 주최 파견 근무, 유학 휴직에 이어 자율연수 휴직까지. 엉덩이 무겁고 진득한 유형을 더 높이 쳐주는 학교 시스템에서 이런 경력은 누가 보아도 교직에 적응하지 못해 어떻게든 학교를 벗어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처럼 보였으리라. 종이에 갇힌 내 경력은 내 부적응을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될 가능성이 꽤 다분했다.

분석한 바 중 마지막 요인을 몇 안 되는 지인에게 말했다. 나로서는 꽤나 충격적이면서도 유의미한 깨달음이었기에. 두 사람은 내가 스스로를 비하한다 여겼는지 무척 걱정 어린 반응을 보였다. 어찌나 격려 섞인 메시지를 보내던지. 하지만 걱정할 것이 없다. 나는 확신하니까. 나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분들은 절대로 나를 부적응 교사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를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은 다르다. 나라는 사람을 알 길이 없으니 서류에 적힌 대로 나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류가 '나'를 이렇게 말한다. 교직에 별 뜻이 없는 사람. 혹은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길을 헤맸던 사람.


내가 선택한 길이다. 서류가 무슨 말을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서류가 나를 더 정확하게 얘기할런지도 모르겠다. 교직에 뜻이 있었다면, 교직에서 살 길을 찾았다면, 영어 연수 파견 이후 과연 그런 시도를 했을까. 유학 휴직까지는 영어 교육에 큰 뜻이 있었나 보다라며 억지로라도 교육과 연결할 수 있겠지만, 자율연수 휴직에다 곧 이은 퇴직 신청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오히려 학교 시스템 부적응자임을 보여주는 쪽에 더 가깝다.

부임 첫 해부터 지금까지 긴 서사의 강에 몸을 담근 채 흘러오는 동안에는 몰랐다. 강의 물결 따라 흘러가는 이들은 물길이 어디로 나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학교 시스템을 벗어난 후에도 내 의식은 여전히 그 강에 몸을 담그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일까. 다른 교사들은 쉽사리 시도하지 못하는 것에 과감히 도전한, '남들과는 다른 교사'라는 일종의 자의식 같은 게 있었다. 내 이야기를 특별함으로만 바라보았다.

면접을 준비하는 동안 생애 최초로 출력한, 네모 반듯한 글꼴의 경력증명서를 들여다보고야 알았다. 학교라는 공적인 시스템은 내가 나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니, 다르게 판단할 확률이 100%에 가깝다는 것을. 그들에게 나는 도전하는 자가 아니었다. 적응하지 못한 자였다.

놀랍게도, 제삼자의 눈으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나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그렇게나 맞지 않는 옷을 입고도 오랜 세월을 교사로서, 맡은 일에 열심을 다했던 내게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말해주고 싶었다. 토닥토닥. 참 수고했노라고,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며 꼭 작은 성과라도 얻어내기를 바란다고, 스스로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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