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첼로 4
나는 면 단위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생 때부터 타지생활을 했다. 삶에서 내가 나를 꼬옥- 안아주고 싶을 때에는 시골집 노을을 보러 갔다. 산등성이와 논이 산그림자로 거뭇해지고 개밥바라기 별이 반짝일 때까지 집 앞에서 해몰이를 보노라면, 어렸을 때 마을 회관에서 언니 오빠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가던 때가 오버랩되기도 하고, 해가 지는 산 뒤쪽은 나무가 누워서 잘 거라는 어릴 적 교과서 이야기도 생각나고, 쓸쓸할 때 해지는 것을 바라본다는 그래서 하루에 마흔 몇 번을 보았다는 어린왕자도 떠오른다. 맑고 붉어 따뜻한 하늘이 투명하고 푸르러 시린 밤을 포용하는 순간을 보고 나면 비로소 저녁밥이 맛있곤 했다.
유월이면 새 둥지에서 지낸다. 내 마음이 조금 더 잔잔하고 나의 영혼이 아주 자유로울 테지만, 살짝 귀찮은 요리를 해야 할 차례라 ‘꺽쩡’스럽기도 하다. 밥하기 싫어서 홈스테이를 고집했는데, 기어이 룸 렌트를 하게 되었다. 의식주 독립이 주체적 삶의 기본이라는 걸 다시 상기하자.
누군가를 꾸준히 미워한다는 건, 갈등 속에서 부단히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는 건 무척 어려운 시험이고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자꾸 대나무숲만 찾게 하는 상대방의 지금을 그 사람의 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랬더니 초저녁 단잠에서 내 몸에 박힌 유리 파편들을 떼어내는 꿈을 꾸었다. 한결 홀가분한 맘으로 이 집을 나설 수 있겠다.
이사를 가면 그곳에서는, 내 맘을 어루만지고 싶은 순간에, 다시 첼로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시골집 해몰이만큼이나 포근하고 아늑하다.
첼로를 그리워하며 정작 지금 듣고 있는 곡은,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