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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Jul 31. 2024

때로는 부수적인 욕망 때문에 쓴다

나는 어떻게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는가

나는 운동을 정말 싫어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못했고 몸을 잘 사용하지 못했다. 몸을 쓰다 보니 안 쓰게 되었다. 젊었을 때는 몸을 안 쓰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벽까지 일해도 거뜬했고, 머리도 팽팽 돌아갔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니 어쩔 없었다. 운동을 해야 했다.


이전에 운동에 도전했다 실패했던 수많은 경험들을 떠올렸다.

헬쓰장? 1번 가고 안 갔었다.

요가? 임신했을 때 하고, 큰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아이가 안하게 되니 나도 안하게 되었다.

걷기? 꾸준히 해야 하는데 재미가 없다.


나의 성향을 고려한 운동 방법을 찾아봤다.

첫째, 집순이이며 극내향인 내성향을 고려해야 한다. 일하는 외에는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집에서 하는 운동이어야 했다.  

둘째, 운동하는 시간에 운동 말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데다 효율을 추구하는 나에게 운동시간은 낭비하는 시간 같았다. 운동을 하면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이야말로 가장 생산적인 일이겠지만....)

셋째, 운동하면서 눈과 손을 눈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들으면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이북을 듣는 것도 힘들다.  


이 조건들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것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실내자전거 타기" 운동이었다.

옷걸이로 전락할 수도 있으니 중저가의 실내자전거를 구입했다. 집 안에 놓으니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아 좋았다. 연습삼아 한 번 타봤다. 발로는 자전거를 타면서 손과 눈을 마음대로 있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도 보고, 검색도 하고, 핸드폰 게임도 가능했다. 바로 이거야!


나에게 '실내 자전거 타는 시간'은 노는 시간이 되었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무조건 30분씩 자전거를 탔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면서 발로 페달만 밟았다. 처음에는 발로 페달 밟는 것을 까먹고 핸드폰을 본 적도 있어서 실제 운동 시간이 10분이 안된 날도 있었다. 그래도 일단 매일 탔다.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니.... 자전거 타기 운동을 했다기보다 자전거 위에 앉아서 핸드폰을 봤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매일 타다 보니 습관이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저녁 식사 후 30분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소화도 안 되는 듯했고 몸이 무거웠다. 점점 자전거 타는 시간도 늘어났고, 강도도 세졌다. 지금은 점심 식사 후에도 자전거를 탄다. 어차피 식사 후에는 쉬는 시간이라는 관념이 있으니 자전거 위에서 핸드폰 보면서 정말 쉬는 거다.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운동을 하게 된 건, 운동하면서 놀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건강하기 위해, 살을 빼기 위해, 유연한 몸을 만들기 위해. 뭐 이런 목표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나이가 드니 운동을 해야 했고, 운동하면서 놀 수도 있으니 실내 자전거를 탄 것이다.



부수적인 의미 때문에 하게 된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정지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님의 집이 건물에서 높은 층에 있는데 거의 매일 계단을 오른단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모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계단을 오르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늘 운동 부족에 시달려 집에 돌아갈 때만큼은 종종 계단을 올라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그런 의지는 '괜히 계단을 올랐다가 피곤해서 저녁 시간을 망칠 거야', '괜히 내일 더 피곤해서 손해를 볼 거야' 같은 합리화에 가로막혔다. 그런데 요즘에는 거의 매일 계단을 오르내린다. 그 이유는 계단과 복도에 있는 모기를 잡기 위해서다.   
전자 모기채를 하나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벽과 천장에 붙어 있는 모기들을 잡는다. 일단 모기를 잡는 건 꽤 재미있다. 또 내가 이렇게 모기를 열심히 잡으면, 내 아이를 물 수도 있었을 한 마리를 죽이는 셈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모기도 잡고, 아이도 지키고, 내 건강도 챙기니 일석삼조다. 그러니 매일 계단을 오르게 된다. 몇 년간 마음은 있어도 안되던 일이 비로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계단 오르기가 가능해진 건 어디까지나 '건강 챙기기'가 아니라 '모기 잡기'라는 부수적인 의미 덕분이다.

- p20~21,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정지우


그러면서 말한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거나,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수적인 욕망'을 붙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좀처럼 잘 안된다면, 거기에 다양한 목적을 덧붙여 보면 좋다. 운동을 하고 싶은데 잘 안되면, 운동하는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 듣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된다. 책을 읽고 싶은데 잘 안되면, 책 읽는 시간이 나의 강아지를 쓰다듬어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요리를 하고 싶은데 잘 안되면, 요리하는 시간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사실, 많은 중요한 일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아니, 많은 중요한 일이 그런 식이 아니면 아예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 p22~23,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정지우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왜 계속 운동을 하게 되었고, 매일 글을 쓰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부수적인 욕망'을 잘 활용했고, 다양한 목적을 덧붙여서 가능했던 것이다.  



@pixabay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던, 부수적인 이유들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를 활용해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정성 들여 쓸 때가 대부분이지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짧게라도 쓴다. 어떻게 해서 매일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물론 에게도 작가가 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이런 욕망만 가지고 매일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청 의지가 가능한 사람은 가능할 수도 있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 정지우 작가님 말처럼, 나는 아래와 같은 다양한 목적을 덧붙였다.  


첫째, 온라인에 글을 썼다.  

혼자서 노트에 끄적거리면서 글을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블로그라는 온라인 공간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 글을 공개적으로 쓰고 발행을 해야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 쓰면 며칠 쓰다가 멈춰도 아무도 모른다. 온라인에 쓰면 단 한 명이라도 알 것이다. 내가 글을 계속 쓰는지, 멈췄는지.

게다가 블로그라는 공간, 얼마나 좋은가. 내가 나를 공개하지만 않으면 아무도 나를 모른다. 좋아요도 받을 수 있고 댓글도 받을 수 있다. 글쓰기 툴도 쉽고 편해서 글만 쓰면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다.

독자가 있는 글을 쓴다는 감각을 기르기에도 좋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원고를 수정하게 하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글을 쓰게 한다. 타인을 위한 글을 쓰면서 나도 성숙해져 간다. 내 글이 도움이 되었다는 댓글 하나 때문에 또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인증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블로그 글을 써볼까 생각했던 것은 5년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정작 쓰지는 않았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블로그 글쓰기 수업. 수입을 듣다보니 리더가 운영하는 글쓰기 인증 단톡방에 자동으로 가입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매일 글을 써서 인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떠듬떠듬 글을 써가기 시작했다. 블로그 이웃도 없었던 상태였던지라 읽는 사람도 별로 없는 글을 쓰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끼리 이웃을 맺고 댓글을 달아주니 재미가 있어졌다. 무작위의 블로거들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끼리 소통하니 글 쓰는 재미가 생겼다.

이 단톡방을 나오게 된 후에는, 365일간 글을 쓰고 인증하는 방을 직접 찾아서 가입했다. 이 방에 인증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게 되었다.


셋째, 나만의 마감시간을 정했다.

현재 나의 글쓰기 마감 시간은 아침 7시와 12시다. 몇 달 전에는 아침 7시, 12시, 5시 30분 3회였다. 아무도 모르는 나와의 약속이다. 매일 이 시간에 맞춰서 글을 올리기 위해 예약발행을 활용하고 매일 글을 썼다.

글을 잘 쓰고 못쓰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냥 마감 시간을 지켜서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의미가 있던 없든, 단순 정보성 글이든 그냥 쓰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보니 매일 1편에서 3편까지의 글을 쓸 수 있었고 마감을 지키다 보니 성취감도 쌓여갔다.

매일 쓰다 보니 글쓰기의 재미도 알게 되었고, 글감 찾는 방법도 고민하고, 글쓰기에 대해 공부도 하게 되었다.

역시 선배들의 말이 맞았다. 매일 쓰다 보면 뭐라도 된다.


넷째, 과정을 담는 글을 썼다.

책을 읽는 과정을 담는 글을 썼다. 한 권을 정해서 한 달에 읽을 수 있도록 분량을 나눴다. 그리고 그 분량을 읽고 분량 내의 문장을 발췌해서 글감으로 삼아 글을 쓰는 거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글감을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공저를 쓸 때는 쓰는 과정을 글감으로 해서 글을 썼다. 초고를 쓰고 퇴고를 하는 어려움을 글감으로 썼다.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을 기록해 놓는다는 생각으로 썼다.      



지금 이 글도 나만의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쓰는 글이다.


나의 책읽기도 이와 비슷하다.

책을 읽어야 하는데 잘 안돼서, 브런치 글쓰기의 주제를 '문장 수집'으로 삼아버렸다. 책을 읽어야 글을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부수적인 목적 덕분에 오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를 절반 가량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거창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부수적인 목적을 찾아보자. 그런 부수적인 목적이 나의 매일의 글쓰기를 밀고 나가게 해 줄 것이다.

'최강야구'를 보기 위해 실내 자전거를 타는 오늘의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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