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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oche Sep 22. 2024

신난중일기 (2)

달아 달아 푸른 달아

“유동성 장세 힘입은 코스피 1900선 탈환... 외국인 돌아오나”     


안 그래도 기분 울적한 출근길.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내 모니터에 흘러나오는 문구가 가슴을 뻐근하게 했다. 증시는 엘리베이터보다 더 빨리 상승했고, 곱버스는 두 배 더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안녕하세요.”

아침 인사를 들릴락말락 허공에 내뱉은 뒤 자리에 앉았다.      


전날도 해외선물 유투버 방송을 보면서 그와 함께 나스닥 하방을 응원하다 늦게 잤기 때문일까, 정신이 몽롱했다. 잠도 깰 겸 카페에 커피 한 잔 사러 갈까 했으나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중압감에 책상 모퉁이 서랍에 고이 잠들어 있던 막대 커피를 하나 꺼내 들고 정수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굳모닝. 개장 전에 커피 한 잔 때리는 거야?”
옆 팀 임 차장이었다. 듣기론 거액을 주식으로 굴리고 있다는데, 처가가 꽤 잘산다는 같았다.      


“예, 뭐 개장 후엔 육개장이나 때리겠죠.”

임 차장의 작은 세모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소리냐? 하다못해 내가 산 것도 많이 올라왔는데...”

일회용 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봉지로 휘적휘적 젓고 나니 작은 소용돌이가 올라왔다.


“그러게요, 어째 전 혈압만 오르고 주가는 안 오르네요.”

개나 소나 다 오른다고 하는 요즘 같은 불장에 임 차장은 내심 내가 뭘 들고 있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하지만 역시 눈치가 빠른 임 차장. 능청맞은 어투로

“오늘은 오를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조만간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라며 자리를 비켰다. 나도 두툼한 임 차장의 뒷모습에 살짝 고개만 까딱한 뒤 자리로 돌아와 앉왔다. 스마트폰 시계를 보니 개장 2분전이었다.      


후-


긴 숨을 내뱉은 뒤 MTS(Mobile Trading System) 켰다. 다행히 예상 체결가는 빨갛게 상승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뭐, 네깟 놈이 그래 봤자 좀 있으면 시퍼레지겠지.”

짐짓 빈정대는 투로 뇌까렸지만 속으로는 기대되기도 했다. 천하의 나스닥도 어제는 꼬리를 내렸는데, 코스피 따위가 뾰족한 수 있겠나. 일 좀 열심히 하고 있다 보면 신께서도 오늘만큼은 나에게 선물을 선사해주시겠지. 심지어 내일은 나름 특별한 날이니까.       


“선배, 내일 생일인데 오늘 점심 사주세요!”     

 팀 후배 우식이었다. 인기척도 없이 언제 옆에 온 건지. 어딘지 얄밉지만 그래도 덩치에 안 맞게 귀여운 구석도 있는 녀석이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놈이 허구한 날 나만 보면 밥타령이었다.     


“알았어, 인마. 대신 메뉴는 내가 정한다.”     

“어머, 웬일이래. 저도 끼워주세요, 선배님!”

뒤편에 앉아 있던 깍쟁이 수영 대리까지 가세했다. 넨장, 이럴 때만 선배님이지. 그래도 선배 생일 챙겨준답시고 자리를 마련하려는 후배들의 노력이 내심 가상했다.     


“그래, 가자, 가. 대신 선물들은 꼭 지참해라.”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모니터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새 화면보호기가 켜져 있었다. 마우스를 좌우로 몇 번 움직인 뒤 키보드를 경쾌하게 두들겼다.      


‘b.l.u.e.m.o.o.n’     


대학교 때부터 줄곧 웬만한 아이디는 bluemoon 이었다. 당시에 즐겨 듣던 스탠다드 재즈곡인데 멜로디도 훌륭했지만 가사가 참 인상적인 곡이었다. 나도 모르게 첫소절을 흥얼거렸다.     


“Blue moon~ You saw me standing alone~”     

노래 가사처럼 오늘 한국 증시에 푸른 달, 아니 시퍼런 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내 곱버스만 동그마니 솟겠지. 흐뭇하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다 보니 그간의 스트레스로 옴팍해졌던 내 볼이 보름달처럼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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