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여기 특 하나 보통 세 개요. 선배님, 저 특 먹어도 되죠?”
얄미운 자식. 딱히 대꾸하고 말 힘도 없었다. 그냥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갈음했다.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국밥집 명성에 걸맞게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제공됐다.
모락모락 솟는 김 사이로 안경이 뿌옇게 된 채 내장이 가득 얹어진 숟가락을 후후- 불고 있는 우식이가 보였다.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별안간 내장이 쓰라리면서 아까 상황이 떠올랐다.
10시쯤이었다. 잠잠하던 나스닥 선물지수가 별안간 치솟기 시작했다. 그러더니만 마치 기다렸다는 양 코스피 코스닥 양대 지수가 보조를 맞춰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개장 즈음에 발그스름했던 곱버스는 금세 시퍼렇게 질려 버렸고, 나 또한 심정적으로 완전 질려 버렸다. 도로에 버스만 봐도 경기가 날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아직 월초인데 왜 자꾸 장기재고 없애라고 난리 블루스에요. 짜증나게 말야.”
수영 대리가 깍두기를 국물에 신경질적으로 씻어대면서 본인의 장기인 넋두리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여느 때 같으면 하다못해 공감하는 척이라도 해줬겠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곱버스 홀더답게 반대편에서 뻗대고 싶었다.
“그러니까 왜 가져가지도 않는 걸 만들어서 문제를 키우냔 말이야. 이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 되지도 않을 수주를 억지로 왜 하는 거냐고, 이 한심한 중생들아!”
나도 모르게 끝에 언성이 높아진 거 같아 슬몃 눈치를 봤다. 역시나 고새 눈길이 새초롬해져 있었고 깍쟁이는 바로 매서운 반격에 나섰다.
“아니, 생일날까지 그렇게 이죽거릴 거에요? 왜 애먼 우리한테 심술부리는 거에요!”
“수영 대리님이 이해하세요. 김 선배가 요즘 주식이 잘 안 돼서 그렇대요.”
평소 악의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재주가 탁월한 우식이가 염장을 질렀다. 뭐라 반문은 못 하고 살짝 노려봤더니 녀석은 눈길을 피하긴커녕 빙긋이 웃었다. 미소를 가장한 조소에 가까웠다.
“야, 너 뭐 샀길래 그렇게 심통이냐?”
내내 옆에서 숟가락만 뜨고 있던 장 선배가 말문을 뗐다. 그에 대한 한줄평은, 평소 위아래 좌우를 막론하고 두루두루 가교 역할을 해내는 미드필더.
그런 포지션에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볼을 건넬 순 없었다. 그렇다고 곱버스를 샀다고 이실직고를 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시중에서 곱버스 보유자들은, 세상 망하길 기도하면서 본인은 돈을 벌려는 심사가 뒤틀린 벌레 취급을 받고 있었다. 곱등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커밍아웃하면 뭇매를 맞을 게 분명했다.
“뭔 뜬금없는 주식이야 주식은. 주식은 밥이지 밥. 자, 저기 기다리는 사람들 많은데 밥이나 드십시다들.”
다행히 잠시 정적이 흐른 뒤에 대화 주제는 육아 얘기로 넘어갔다. 그러고 보니 참석자 중에 미혼은 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 자산가들이었다. 근데 부조리하게도 밥값은 가장 헝그리인 내가 부담하게 됐으니... 좀처럼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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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주식은 오늘도 오르네!”
폐장 무렵, 팀장님의 탄성이 터졌다. 주식은 위험하다며 손사래를 칠 거 같은 성실하고 근면한 근로소득자. 그런 팀장님마저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대상승장.
이렇듯 미증유의 상방 분위기가 펼쳐지는 시국에 나는 호기롭게 하방에 올인한 것이었다. 점심부터 적체된 스트레스로 인해 솔직히 그냥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어머 팀장님! 팀장님도 주식하세요?”
이번엔 차석인 윤 차장님이었다. 골드미스로 투자에 관심도 많고 배짱도 있는 걸 크러시. 주변 전언에 따르면 코로나 초기 패닉세일 때 테슬라에 꽤 큰 금액을 투자했다고 했다. 나와는 정확히 대척점에 계신 분이었다.
“김 대리, 김 대리도 주식 좀 한댔지? 돈 많이 벌었겠네?”
어이없는 상황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팀 내 서열 1,2위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짐짓 유머러스한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길 시도했다.
“허허, 돈을 벌었다뇨, 버렸습니다..."
어딘지 수상한 냄새를 맡으신 걸까. 팀장님께서 꼬투리를 잡으셨다.
“뭔소리냐 너는. 그냥 눈 가리고 아무거나 사도 다 올랐다더만.”
“그러게요. 차리라 눈을 가리고 샀으면 낫을텐데 제가 눈을 너무 시퍼렇게 뜨고 샀나 봅니다...”
치열한 공방에 윤 차장님이 가세했다. 다들 창만 안 들었지, 흡사 호로관 전투를 방불케했다.
“야, 김 대리! 너 우리가 돈 벌었다 그러면 한 턱 쏘라고 할까봐 무서워서 거짓말하는 거지? 안 그렇게 봤는데 보기보다 쩨쩨하구만.”
사지에 힘이 쭉 빠졌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고 패색이 짙었다.
'그래, 오명을 쓰고 비참하게 죽느니 차라리 장렬하게 전사하자.'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아... 그게 아니라... 곱버스라고...”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괴감도 들어 말끝을 얼버무리는데 내가 가여웠는지 팀장님께서 마무리를 해주셨다.
“으이구 자식... 근데 곱버스? 너 버스 회사를 산 거야?”
그렇게 눈시울이 불거진 채 실소가 터진 나와 깔깔 대며 웃는 윤 차장님. 그리고 영문을 몰라 겸연쩍은 웃음을 짓고 계신 팀장님까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