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괜찮지 않아서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요양원 생활이 어느덧 3개월째가 되었다.
어제 시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에 다녀왔다. 많이 야위고 전보다 더 작아진 몸을 보니 어머니의 살아가는 동안의 치열함과 힘겨운 싸움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잡았다. 야윈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그동안의 그리운 마음이 갑자기 몰려왔다.
시간은 이렇게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가 보다 생각했다.
남편이 떠날 때 나는 그 또한 신의 뜻이겠거니 했지만, 한편으로 주체 못 할 원망이 함께 있었다.
아직 인생의 반도 살아보지 못한 그에게 어째서
이제 그만 생을 이렇게 잔인하게 끝내라 하시는지 묻고 싶었다.
정작 남편은 그런 물음조차 없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원망을 그저 삼키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어머니의 치매는 환청과 환시로 왔다.
자꾸만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아이를 좀 달래주면 안 되겠느냐고 한다.
어느 아이의 울음소리일까. 어머니는 지금 어떤 기억으로 스스로를 데려가는 중일까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는 결혼 후 평생을 자식을 돌보며 보내야 했다.
내가 결혼을 하기 전 시댁에는 중학생 고등학생 조카들이 살고 있었다.
자식을 다 키워놓았더니, 그 자식의 자식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어머니는 칠순이 지나서까지 보호자 역할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러나 내가 본 어머니는 돌봄으로 인해 스스로를 돌보는 것처럼,
돌본다는 것에 대한 충실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치매는 미래부터 잊는 병이라고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잊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의지를 잃고
현재의 기억을 잊고,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오늘을 잃고
기억은 자꾸만 지켜야 하는 그곳으로, 지키고 싶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자신이 써 온 사람의 역사를 현재시점부터 지워나간다.
어머니에게 남겨지는 기억은 끝내 돌보는 일인 것일까?
그도 아니면 돌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까?
어느 순간, 내 삶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
놓아버린 오늘이라는 시간이 원망으로도 기억되지 않는,
망각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의가 아닐까 하기도 한다.
그저 잊음으로 스스로를 편안의 상태로 놓아두고 싶은 최소한의 의지.
어머니는 아무래도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던 그날로 가려는 모양이다.
밥 챙겨주고, 빨래해 주고, 학교 보내고 또 하교하면 간식 챙겨주고.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그 하나의 기억이란
가난한 집안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과 책임감이 응집되어 가슴속 깊은 곳에 한(恨)처럼, 응어리 되어 남아 있었던 것을 아닐까?
짐작만 할 수 있는 우리들은 꺼져가는 생의 뒤안길에 놓인 어머니를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나는 어떤 것이 마음 안쪽으로 응집되고 있는 중일까?
어떤 아쉬움이 이성과는 상관없이 내 안으로 쌓여가고 있는 중일까?
어머니에게 다녀와 그것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가족에 대한 애증,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 내 꿈의 대한 미련.
아니면 내가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그래서 나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그 어떤 슬픔.....
그것이 무엇이 되건, 내 삶이 나를 떠나갈 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괜찮았으면 좋겠다.
비록 완전하게 이루지 못한 어떤 것이 남았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괜찮지 않은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길 바란다.
내가 만들어내는 오늘은 먼 미래, 혹은 멀지 않은 미래의 나일테니
오늘이 괜찮아지도록 살아 내서, 나의 삶의 끝은 부디 괜찮았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을 담아 월요일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