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4일 칼럼 기고분)
한가로운 휴일 아침 신문 전단지를 보던 길동 씨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치킨 한 마리가 단돈 5000원! 그것도 꽤 큰 놈이!'
전단지만 보고도 길동 씨는 입에 침이 고여 쩝쩝댑니다.
옆에서 가관이라며 쳐다보는 아내 향단 씨는 “도대체, 뭘 보고 그러는 거야?”며 전단지를 넘겨받고는 머릿속을 계산해봅니다. “그러니까 동네 배달치킨이 15,000원꼴이데, 맛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굉장한 걸. 어차피 마트 가는 김에 사면되니까 배달이 안 되는 건 문제가 아니겠지.”하고 계산을 끝낸 다음, “여보. 뭐해. 빨리 마트 갈 준비 해”라며 길동 씨를 재촉합니다.
같은 시각, 동네 치킨집주인 몽룡 씨는 근심입니다.
“체인 본점에 내야 할 돈도 많은데, 이렇게 해서 동네 영세업자 다 죽으라는 거 아니야.”
얼마 전 대규모 유통업체의 5,000원짜리 치킨판매에 대해서 전 국민이 갑론을박하였고 급기야 청와대까지 개입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1주 천하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너무 값싼 치킨은 시장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자, L마트는 출시 1주일 만에 5,000원 치킨의 판매를 중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파장은 계속적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SSM(Super Super Market)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중소시장 잠식 문제가 2010년 가장 뜨거운 핫이슈였습니다. 가뜩이나 대기업 재벌 2세의 ‘매값 논란’으로 서민들의 반기업 정서는 더욱 격화되었구요.
논객에 따라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 치킨과 피자의 차이점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고,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지만, 근원에 접근해가면 인류의 계속된 고민거리인 ‘자유와 평등(=배분적 정의)’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① 자유주의적 입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과 같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판단하면 족하지, 소비자가 원하는데 굳이 이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고, ② 배분적 정의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무한경쟁, 자유방임주의가 내포한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수정한 ‘약자 보호의 원리’가 가미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현재 우리나라 경제헌법의 근간은 배분적 정의를 가미한 자유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사적 자치의 원칙을 수정한 ‘사회법’이란 것이 존재하며, 그 대표적인 것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입니다. 특히, SSM 논쟁에 대해서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2010. 12. 7. 일정요건하의 SSM 가맹점도 사업조정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이 통과됨)에서는 중소기업에 적합한 사업영역 보호에 관한 사항이 규정되어 있기도 하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2010. 11. 24.)으로 전통시장이나 전통상점가를 전통상 업보 존 구역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점포 및 준대규모 점포 등의 등록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금번 치킨 논쟁은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문제라고 할 것이며, 결국 국민과 입법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법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까요? 현재는 배분적 정의에 입각한 법률들이 건재하지만, 국제적 무한경쟁시대에 신자유주의나 국가주의(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대기업 지원 등)도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므로 법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시 국지적인 문제인 ‘치킨 논쟁’으로 돌아가서, 대기업의 행위가 ‘공정거래법’등 현행법에 위반한 것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기업의 염가 치킨․피자 판매는 ‘공정거래법상 부당염매 또는 유인 염매’에 해당될 소지는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등에 따를 때, ‘부당성(不當性)’이 인정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프랜차이즈 업체가 대기업을 비난하자, 대기업은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격담합(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 원산지허위표시 등을 걸고넘어집니다. 하지만, 이는 프랜차이즈 업체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자업체의 LCD 패널․DRAM 가격담합의 예와 같이 ‘대기업 - 중소기업 - 영세자영업자’에 이르는 먹이사슬 관계의 각 단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므로 이 사건 논란의 핵심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번 치킨 논쟁은 염가치킨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대기업의 중소시장 잠식에 대해서 일반 영세사업자나 중소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공포가 표출된 사건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치킨 사태와 함께 ‘치킨게임’이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치킨은 영어로 닭을 뜻하기도 하지만 겁쟁이를 뜻하기도 합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다시피 '치킨게임'은 자동차를 타고 마주 달리면서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패자가 되는 게임이지요.
'TV 동물의 왕국’을 보며,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철저히 약육강식의 법칙이 관철되는 정글사회에서, 강자는 물론 약자 또한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으로 생명과 종족을 유지해오는 것이 대견하고, 더 나아가 신비롭고 경외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자가 전력을 다해도 먹이를 놓칠 때가 많다던데, 초대형 덤프차과 소형차가 서로 돌진하는 치킨게임의 승패는 매번 처참하여 그 결과를 눈뜨고 지켜보고 싶지 않네요.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노는 상상은 한낱 낭만주의로 치부되겠지만, 적어도 '배부른 사자는 사냥하지 않는다'는 이치가 인간사회에서는 통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