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9월 21일 칼럼 기고분)
명절에 되어 친인척들이 한 집에 모였습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차례상을 준비하고...
어린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또래들과 뛰어 다니며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절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우리가 어떤 오묘한 인연으로 가족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실 겁니다.
인간은 태고적부터 남녀가 결합하여 자식을 낳아 기르고 그들이 한 가정을 이루며 공동생활을 하여 왔습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서로 상대방의 ‘배우자’가 되며, 그들과 상대 배우자의 친족 사이에는 ‘인척’이라는 관계가 형성되는데, 그들이 자녀를 출산하면 수직으로는 ‘직계존비속관계’가, 종횡으로는 ‘형제자매관계’라는 혈연이 성립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친족관계는 반복․확장되어 갑니다.
친족관계를 역으로 거슬러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뿌리를 찾다 보면, 우리 민족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며, 더 넓게는 세계인들 모두가 ‘아담과 이브’로 상징되는 최초 인류의 후손일 것입니다. 따라서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현생인류 중 피가 섞이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로 혈연의 경계를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친족제도는 혈연과 혼인에 의하여 부양, 상속 등 일정한 법률관계 발생의 기초가 되어 동시대 같은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을 전제로 그 범위를 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혈연 또는 인척관계 중 일정한 범위 내에 드는 사람만을 ‘친족’이라고 하고, 그 범위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본인 또는 배우자와 혈연관계가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친족’이라 칭하지 않습니다.
다만, 혈연관계의 연결을 부계 중심으로 할 것인지 모계 중심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역사상 많은 변천을 거쳐 왔습니다.
신라시대 이후로 고려시대까지는 현재와 같이 부계중심사회가 아니라 부계와 모계 어느 한쪽으로의 귀속이 자유롭던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부계친과 모계친이 동등한 대접을 받았으며, 재산상속에 있어서도 자녀균분상속이 원칙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려 말기까지만 하더라도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당시 지배적인 종교가 불교였던 까닭에 사람이 죽으면 절에서 화장하고 제사 또한 절에서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려말 주자학의 도입과 함께 중국의 종법제(宗法制)가 수입되어 국가적으로 장려되면서부터 우리나라에 부계중심의 친족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법제는 조선의 건국 세력인 신진사대부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경제육전과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고, 특히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이후에 더욱 두드러져 동종(同宗)에 의한 동족 부락의 형성이나 종중․문중의 형성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종법제는 남자 혈통으로 혈족을 연결 유지하는 ‘남계혈통계속주의’와 동족 아닌 이족의 여성을 배우자로 취하는 ‘족외혼주의’를 근간으로 합니다. 여기에서 종(宗)이라고 하는 것은 조상의 제사를 받들기 위한 후손들의 집단을 말하는 것으로서, 공동조상인 남자로부터 갈라진 남계혈통질서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결국 조선 후기 번성하였던 종법제 문화 또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는 일제 점령기까지 이어져 내려 1960년 제정민법에서도 반영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친족의 범위에 있어서도 부계혈족과 모계혈족, 부(夫)족 인척과 처(妻)족 인척 사이에는 심각한 차별이 존재했었습니다.
1990년 민법 개정 시 양성평등의 원칙에 의거, 부모양계혈통주의에 입각한 친족범위의 개정이 있었는데, 이로서 친족의 범위가 좀 과하다 할 정도로 넓어졌습니다. 우선 친족의 범위를 넓혀 배우자를 비롯하여, 부계 모계를 불문하고 ‘8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으로 정하였습니다(민법 제777조). 또한 혈족의 개념을 넓혀 종전 방계혈족에는 자기의 형제자매와 ‘형제’의 직계비속, 직계존속의 형제자매와 ‘형제’의 직계비속만을 지칭했었는데, 누이의 직계비속(생질) 또는 고모․이모․외삼촌의 직계비속(고종․외종․이종사촌)도 혈족에 포함되었습니다.
민법 제정 당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구 민법 제778조는 "일가의 계통을 승계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인하여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는 호주가 된다."라고 규정하고, 제779조는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본법의 규정에 의하여 그 가에 입적한 자는 가족이 된다.”고 규정하여, 가족의 전제로서 ‘호주(戶主)’를 상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호주제도에 대해서는 2005년 2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 제36조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원칙으로 한 가족제도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사실상 위헌을 의미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아 결국 2005. 3. 31. 호주제를 폐지하는 법 개정이 있었습니다.
이에 2008. 1. 1.부터 호주제를 대체한 가족관계등록제가 시행되었고, 가족의 법률적 의미에 관한 민법 제779조도 가족의 범위에 대하여 “배우자, 직계혈족(조부모, 부모, 자녀) 및 형제자매, 그리고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사위, 며느리 등), 배우자의 직계혈족(시부모, 장인장모)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처형, 처제 등)”로 변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