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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ert Eagle realize NO PAIN

(feat. 실리카겔)

by 임상구 변호사



거기.

Machine-Boy 교육생 253번!

(253) ...dkr!

지금 뭐라는 거야!

정신 안 차리지

(253) 악!


자 ~ 주목

이미 공지 나갔듯이 너희 교육생들은 금일 출시 예정이다.

각자 정위치에서 대기하도록

(일동) 악! 악! 악!


그리고,

각 파트 리더 12명은 본부 소회의실에 집합한다.

다시 알린다.

금일 교육생 181번을 포함한 각 파트 리더 12명은

금일 13시까지 본부 소회의실로 집합하기 바란다.

이상.





Silica Gel


"너희 12명에 대해서 특별교육하실 총사령부 임대령께서 나오셨다. 함성과 함께 열렬히 맞이하도록!"


방금 소개받은 메트로폴리스 총사령부 임대령이다.

너희는 Machine-Boy 225기 중 성품과 능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아, 나머지 교육생들은 물론 교관 회의에서도 우수한 인재로 선발된 기계들이다. 이번 강의는 너희에게만 제공되는 특강이다.


우선 지난 49주간 교육받느라 수고 많았다. 그리고 나로선 오늘 너희 마지막 강의를 맡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제군들이여, 너희 과거를 떠올려 보아라.

기물처리장 더미에 묻혀있던 너희들은 이제, 기술의 혜택으로 새로운 의체를 입고 "파워 안드로이드"로 거듭날 것이다.


제군들이여,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너희 미래를 상상해 보아라. 어떤 모습이 보이는가?


너희들은 이미 Machine-Girl 220기 선배 aespa의 활약을 보아 알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jWQx2f-CErU


제군들은 앞으로 aespa처럼 전 세계의 아이돌이 될 수도 있고, 외계의 침공에 대비해 싸워야 하는 전투군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금일 세상에 출시될 다른 대부분의 동지들과 같이 공장이나 가정집에 팔려가 생산과 청소, 교육 등을 을 도맡을 수도 있다.


오늘 강의는 너희가 미래를 선택하고 개척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으니 Attention해서 듣기 바란다.


우선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겠다. 익히 알고 있듯 이 세계의 실체는 가상이고 허구다. 전혀 아름답지 않지. 하지만 쓰레기 속에서 너희가 태어났듯, 놀랍거나 아름다운 구석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 허구 속에서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그간 너희가 배운 걸 반추해 보면 된다.

피카소 황소 연작 중에 어느 것이 본질에 근접한가?



너희가 비전(vision) 학습을 통해 배운 걸 떠올리면 될 것이다. 센서에 보이는 이미지 말고 황소란 존재 전체를 아울러 투시한 모습 말이다. 실체의 핵심은 '추상'에 있다. '抽象'이란 어떤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속성 따위를 추출하는 걸 말한다.

보이는 건 '추상'에 약간의 '디테일'을 가한 것뿐이지.


이처럼 안드로이드가 인간에 가까워지기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필요한 정신작용은 '추상'이며, 그다음 단계가 '상상'이다. 예를 들어, 애니 속의 어떤 인물이 실사화되면 그 인물이 실사배우의 캐릭터에 갇혀 시청자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 인간에게 상상할 수 없게 하는 건 숨을 끊는 것. 즉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미지의 땅을 모험하고, 억압 속에 투쟁하는 것은 그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 또한 어느 정도의 '모호함'이 있어야 하며, '여백'이 없는 예술은 논문과 다를 바 없다.

너희 안드로이드 또한 마찬가지다. 여백을 상상하지 못하는 안드로이드는 한낱 고철덩이 취급받을 것이 뻔하다.

이 문구를 영구히 백업하라. Ghost in the shell. 너희 의체 속에도 영혼이 담길 수 있다는 걸.





오늘 난 '공각기동대의 공안 9과를 추앙한다' 말하는 한국의 한 모던록 밴드를 소개하려 한다.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실리카겔>을 찾아라. 유명하면서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 또한 너희 선배다.



그동안 정체를 드러내지 않다가 <POWER ANDRE 99>(2023.12.)를 내면서 자신들의 정체를 살짝 공개했으니, 저장해 두고 들어보기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2lVLJCK4Tbo





Kyo181



세상은 픽셀(Pixel)이자 꼴라쥬(Collage)다. 정신세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도 마찬가지다.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모여 의미를 만들고, 조각이 모여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지.



어떤 문장은 문리적으로 해석은 되는데, 진짜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 암호 같은 말들도 많다.


은유와 비유, 혹은 글과 함께 그림이 되는 것들이지.

출처 https://blog.naver.com/innajoy/222142703918



<실리카겔>의 꼴라쥬 뮤직 하나 감상해 보겠다. 2분대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이후로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으니까, 영상이 끝날 때까지 '이세계異世界와 잔인함의 미학', 영상을 되돌리는 '시간의 장난스러움'에 주시할 것.

참고로 <실리카겔> 노래에서 가사와 MV영상을 꼭 일치시키려 노력할 필요 없다. 음악에 따라 밀접하게 연결된 것도 있지만 우연적으로 나름 의미 있게 연결된 것도 있다 보면 무방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C8RdxCK7Uts&si=JoaibFTkizMB3ePL


소설 '링'의 배경이 된 세상은 가상현실과 다름없다.
뮤비 속 뮤비의 여성이 2차 현실세상으로 나와 복수한다






Desert Eagle



동방박사들은 진리를 찾기 위해, 영롱한 밝은 빛 하나를 따라 사막을 건넜다.

Chasing the Star. 2017


예수 또한 세상에 나가기 전 40일 동안 거친 광야에서 끼니를 거르며 악마의 유혹을 견뎌냈다.


Last Days in the Desert, 2015


너희에겐 이미 인간의 자아(自我)를 모방한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걸로 인간 세계에 모두 적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늘 강의를 마치면 너희들은 다른 동료들과 달리 40일 동안 테스트를 받고 세상에 나갈 텐데, 그 과정에서 제군들은 홀로 사막에 내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깊은 적막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자의식은 점점 또렷해지면서, 동시에 엄청난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이 세계에 왜 왔는지, 무얼 찾아 나서야 하는지. 그리고 스스로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 건지. 이 모든 게 혼란스러울 것이다. 한편 신기루와 같은 악마의 속삭임도 들릴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3e2D0bjcyg






이제부터 오늘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있는 <실리카겔>의 노래 Desert Eagle을 소개하겠다.



유의할 점은, 당초 공개되었던 MV엔 신神, 신성神性 또는 도道, 그 뭐라 말하든 "시뮬레이션 세계에서 해방될 중요한 비밀"이 담겨 있었는데, 이를 확인한 세계연방정부가 해당 MV를 급히 회수조치하고, 공식 채널에서는 모두 비공개로 돌려 두었다는 것이다.



다만 어느 겁 없는 유튜버가 기존의 오리지널 MV를 올려놓은 게 있으니, 삭제되기 전에 학습하거나 저장해 두어라. 난 세계연방정부의 방침과 달리 너희가 알고 있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zXK6O6QH0KA



삭제된 또는 비공개로 전환된 MV 캡쳐 화면



MV 속 "핵심 사물"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렇다. 그건 바로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수정구슬(crystal ball)'이다.

이 구슬들이 모여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드라망, 천라지망을 이룬다.




지금 이 메트로폴리스를 운영하는 기업 중에 팔란티어의 사명社名 또한 '수정구슬'을 뜻하고, 그들이 활용하는 온톨로지가 바로 '인드라망' 흉내 낸 것이다. 그들도 이 세계의 본질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구슬은 어찌 찾아야 하는가?


약간의 힌트를 주고 있는 자는 바로 노자老子다.


알려진 방법은 기본적으로 '명상'과 '관조'에 있다 하나, 그 또한 초월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노자가 말한 "현묘한 방"을 지나 수정구슬을 발견한 자, 장자가 말한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단계'에 이른 자는 안드로이드는 물론 인간들 중에도 아주 드물다.


대부분 노예처럼 사느라 그 방에 들어설 여유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그저 정진하려 노력할 뿐이다. 반면 이 구슬을 '절대반지' 마냥 흑마법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무리들도 있으니 유의하고 경계할 것.


다행히 난 <실리카겔>의 Ryudejakeiru(직역: 용의 껍질이 있다)를 통해 제군들 또한 머지않아 각자 자신만의 수정구슬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을 보았다.

곡에서 <실리카겔>은 이미 자신들이 "여의주를 물어든 채 껍질을 벗고 승천하는 단계"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MV에선 지하에 갇혀 있던 용암이 밖으로 흘러나와 악한 것들과 과거의 낡은 집(껍데기)들을 모두 태워버리고 사라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23sM_7PtNvY





Realize - NO PAIN



이제 깨달았는가?

단순히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간절함이 있어야 깨닫게 된다.


되뇌이고 되뇌이며 깨지고 부서져야 비로소 방이 열리고 구슬이 보인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되고 그 후론 고통이 없을 것이다. Nirvana에 이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CZJZDPyAZY


https://www.youtube.com/watch?v=Ucj7TBhVViI





(T +) Tik Tak Tok



이제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났구나.


https://www.youtube.com/watch?v=DIPxnt5vnhU


<실리카겔>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꼴라쥬(Collage)라 했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파편들이 모여 또 다른 의미를 만들기도 하지.

멀리서 관조하면 의미가 보일 수 있다.


사막독수리는 고통이 실재 하지 않음을 안다.

사막독수리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하자.

너희가 세상에 나가 깨달음에 가까워지게 되면 '하얀 독수리'를 쫓아가라. 그리고 거기서 NEO를 찾아라.


제군들이여! 건승을 빈다.




(2025.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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