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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3. 2017

102 위험과 해악

(2014년 2월 10일 칼럼 기고분)


법은 사회 구성원 간의 이익을 조정하는 기능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나 개별 구성원에 대하여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고 그와 같은 위험이나 악결과를 야기한 자를 제재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형사법에서는 주로 후자의 경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이용의 두 가지 사례


사람을 해칠 때도 쓰이고 사람을 살릴 때도 쓰입니다. 다이너마이트 또한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물건이므로 ‘어느 곳에서 다이너마이트에 의한 폭발이 일어났다’고 가정할 때, 그 결과만을 두고 해악(害惡) 또는 악결과(惡結果)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즉, 누구의 손에 들려졌고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느냐가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폭발이 주요 시설에 대한 테러일 경우에는 인명살상, 재산침해, 교통마비 등 중대한 악결과를 초래한 불법행위이자 중대 범죄이지만, 그 폭발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시행된 터널공사 발파작업이라면 불법행위가 아닙니다. 만, 그 발파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위험물 안전관리책임자의 부주의로 현장 인부가 사망했다면, 사업주 또는 관리책임자로서 작업자에 대한 안전배려 의무 등을 소홀히 하여 사망의 악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불법행위로 평가받게 되고, 사업주 또는 책임자는 그 ‘인명사고’에 대하여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또는 행정상의 제재는 물론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인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해악의 예방     

법학에서 해악은 ‘악결과’이고, 해를 끼칠 우려는 ‘위험’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테러 또는 인명사고라는 악결과가 발생하기 1시간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터널공사현장에서는 위험물을 취급하게 되므로 그 관리책임자 A는 장차 발생할지도 모르는 인명사고 등의 해악을 예방할 의무가 있으나, 폭발물 사용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테러범 B가 주요 행사가 열리고 있는 시설에 폭발물을 소지한 채 출입하고 있는 단계라면 '금지된 폭발물의 소지' 또는 '테러 예비 단계'이므로 어떻게 해서든 이를 막아야 합니다. 해악의 발생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테러 발생 1시간 전 B가 테러범인지 미리 알고 있는 자는 거의 없으며, 1시간 후의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자가 ‘B가 테러범이니 잡으라’고 꼭 집어 말해줄 리도 만무합니다. 따라서, CCTV, 보안요원, 폭발물 탐지견을 총동원해서라도 거동수상자의 동태를 살피던지, 행사 참여자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 공동체에 해악을 가져올 위험이 있는 경우, 해악을 미리 예방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고 그에 따른 규제나 처벌도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위험에 대한 단계적 규율


그러면 어느 단계까지 해악을 방지할 규제나 처벌이 정당화되는 것일까요. 민사법의 경우에도 사전예방․금지청구권 등의 제도가 존재하긴 하나, 해악의 정도가 비교적 중한 형사법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의도적인 고의․작위 행위라고 하더라도 결과 발생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칠 수 있습니다.


내심적 공상이나 계획에 머무는 단계가 있으며, 음모․예비 등의 인적․물적 준비행위가 있을 수 있고, 결과를 의도한 ‘실행의 착수’가 있으며, 보호법익을 침해한 ‘결과 발생’ 단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법행위자를 처벌할 때 그 머릿속의 생각을 투시하여 위험이나 결과가 발생하기도 전에 미리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위험성의 표지가 머릿 속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세계로 그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위험성의 정도나 보호법익은 각양각색이므로, 사회생활상 중요한 법익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될수록 처벌권이 우선적으로 발동합니다. 단계적으로 보면 '예비․음모'는 범행에 대한 머릿 속 생각이 준비행위로 나아가든지 몇 명이서 그 계획의 실행을 결심하는 것이며, '실행의 착수'는 범행이라 볼 수 있는 행위표지가 현실에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며, '기수(旣遂)'는 그 결과 보호법익에 손상을 입힌 것입니다.


① 따라서, 범죄의 음모․예비행위는 원칙적으로 벌하지 않되 법익의 중대성 등을 고려하여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형법 제28조), 내란․외환 등 ‘공안에 관한 죄’와 폭발물․방화․교통방해 등 ‘공공안전에 관한 죄’, 통화․유가증권 등 ‘공공경제에 관한 죄’, 도주․살인․강도․인신매매 등 ‘강력범죄’가 그 대상입니다.


② 한편, 범죄의 실행에 착수했으나 의도한 악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미수의 경우에도 장애미수․중지미수․불능미수 여부를 따져 감경 처벌할 수도 있는데(형법 제25조~제27조, 제29조), 미수 처벌은 중급 이상 대다수의 범죄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③ 더 나아가, 보호법익을 침해하는 악결과가 발생해야 기수로 인정하는 ‘침해범(결과범)’과 달리 ‘보호법익에 대한 위험상태의 야기’만으로도 기수로 처벌하는 ‘위험범’도 있습니다. 대체로 신체적, 재산적 법익에 관한 범죄는 ‘침해범’이 많은 반면, 사회 공동체의 안전을 법익으로 하는 범죄는 ‘위험범’이 많습니다. 다만 그 위험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성을 요하느냐 아니면 일반적인 위험성의 존재만으로도 가능하냐를 놓고 ‘구체적 위험범’과 ‘추상적 위험범’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전자는 위험 발생에 대한 일반인의 객관적 인식을 주된 기준으로 한다면 후자는 행위자의 주관적 인식을 주된 기준으로 삼는 측면에서, 후자의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위험 발생이 다소 불가능해 보여도 그 불법 의도의 위험성을 중시하여 처벌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백과사전] 프리 크라임(Pre-Crime)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사건을 예측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이다. 서기 2054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범행이 일어나게 될 시간과 장소, 잠재적 범인을 예측해서 살해 동기가 포착되면 즉각적으로 체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구글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실시간 인터넷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앞으로 발생할 일까지 분석할 수 있는 레코디드 퓨처스(Recorded Futures)란 회사를 지원하며 프리 크라임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천 개에 달하는 웹 사이트, 블로그, 트위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가진 레코디드 퓨처스는 사람과 조직, 행동, 사건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프리 크라임 시스템을 현실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Minority Report(2002)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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