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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Oct 23. 2017

101 범죄 성립 3단계

(2008년 05월 02일  칼럼 기고분) 


정부는 형사재판에 일반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평균적인 정의감을 반영할 수 있는 절차를 도입하기 위하여 배심재판과 참심재판을 절충한 ‘국민참여 재판’을 도입하는 내용의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하여 국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이후 2007년 4월 30일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법은 크게 공법과 사법으로 나눌 수 있고, 공법 중에는 죄를 지은 사람을 국가가 처벌하는 형사법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우리나라에도 시행되면서 국민 누구나 배심원으로 형사법정에 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이번 호에서는 다음의 사례를 통해 기초적인 형사 지식을 쌓아볼까 합니다. 


질문 1. ‘A가 자기 송아지인 줄 알고 B의 송아지를 데리고 왔을 경우 A는 절도죄로 처벌이 될까요?’

질문 2. ‘A가 흉기를 든 강도 B를 만나 대항하던 도중 강도에게 중상을 입힌 경우 A는 상해죄로 처벌될까요?’

질문 3. ‘7살짜리 아이 A가 옆집 아저씨 B의 지시(과자 사 줄 테니 훔쳐오너라)로 C의 집에 침입하여 귀중품을 훔쳤다면 A는 주거침입절도죄로 처벌될까요?’ 


위 세 가지 경우, 독자께서는 A의 죄책에 대해 어떠한 답을 내리셨는가요.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위 세 가지 물음에 대해 모두 ‘A는 처벌되지 않는다’고 답하셨다고 하면 독자께서는 배심원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국가가 범인을 처벌하는 데 있어 기본 원칙도 없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나라 형법은 ‘이 사람의 죄가 성립하느냐’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단계 여과장치를 두었습니다. 물론 이 3단계 여과장치는 ‘상식’을 논리적으로 체계화시켜 놓은 것에 불과한데, 법률용어로는 이를 <범죄 성립의 3요소>라고 하고, 그 내용으로는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이 있습니다. 이 3단계를 모두 통과해야 비로소 범죄가 성립되어 형벌을 받게 됩니다. 다시 위 세 가지 사례로 돌아가 A가 죄가 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답변 1. ‘구성요건해당성’이란 말이 생소하실 겁니다. 풀이하자면, 행위 자체를 놓고 볼 때 ‘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일정한 위법행위의 유형으로,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법률에 규정되어 있습니다)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형법 제329조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것’을 ‘절도’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범인의 행위가 절도에 해당하는지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객관적 구성요건이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생각하고 인식하며 행동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행위는 있으나, 주관적으로 그 행위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이 또한 범죄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범죄에 대한 고의나 불법영득의사라는 주관적 구성요건도 충족되어야 비로소 절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된다고 결론지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위의 질문 1.의 경우엔 절도죄의 구성요건인 ‘타인의 재물’이란 대상과 ‘절취’하는 객관적인 행동은 있지만, 주관적으로 타인의 재물임에도 자신의 것으로 오인하였기 때문에 이때는 타인의 재물을 훔친다는 ‘고의’나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즉 객관적 구성요건인 ‘타인의 재물’ 중 타인성에 대한 오인, 즉 내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다만 현실적으로는 송아지 구별이 어렵지 않음에도 오인하였다면 착오에도 불구하고 실무상 착오의 불가피성이 인정되지 않아 오히려 미필적 고의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답 2. 다음은 ‘위법성’ 단계입니다. 이는 거시적 관점에서 법 전체적으로 볼 때, 과연 그 행위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만한 행위로 볼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단계입니다.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위법성을 추정되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당행위,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피해자의 승낙 등의 사유가 있으면 전체적인 법질서의 관점에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아, 다른 말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형법 제20조~제24조).     

 

질문 2.의 사안에서 A의 행위는 형법 257조에서 정한 상해죄의 구성요건(①사람 신체에 대한 침해, ②그것을 인식하고 행위한 것)에는 해당되지만, 이 경우엔 정당방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과잉방위 등에 대해 검토가 필요합니다. 


제20조 (정당행위)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1조 (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 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2조 (긴급피난)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③ 전조 제2항과 제3항의 규정은 본조에 준용한다.     

제23조 (자구행위) ① 법정절차에 의하여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능한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 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 곤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전항의 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제24조 (피해자의 승낙)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
※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8조(정당방위 등) ① 이 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이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 등으로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거나 가하려 할 때 이를 예방하거나 방위(防衛)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제1항의 경우에 방위 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한다.
③ 제2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이나 그 밖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경악·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행위인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대답 3. 마지막 범죄 성립의 요소는 ‘책임’입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범죄를 판단함에 있어 범죄자의 개인적인 측면에 입각하여 미시적으로 고찰하게 됩니다. 즉, 법질서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죄가 되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 행위자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적격, 즉 책임이 있는가를 물어 형사미성년자 등의 경우에는 죄가 되지 않게 하거나, 형을 경감시켜 주게 됩니다. 물론 선도 차원에서 보호처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질문 3.의 사안에서 A의 행위는 주거침입절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합니다. 그러나 A는 책임능력이 없는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이므로 책임이 조각되어 범죄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다만 교사범의 경우에는 피교사자의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만 충족하면 성립되고, 책임문제는 교사범 자신의 문제이므로, 사주한 B는 주거침입절도교사죄로 처벌됩니다.


제9조(형사미성년자)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10조(심신장애인) ①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③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11조(농아자) 농아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제12조(강요된 행위)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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