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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Jun 02. 2020

단기 비정규직 노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63세 임계장의 4년 간 노동일지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임시 계약직 노인장, 임계장.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 고다자. 이 땅의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노령 인구의 다른 이름이다.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친구 혹은 나의 가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들이지만 한 번도 깊게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한 평생 공무원으로 살아오시다 얼마 전 퇴직하시고 빌딩 관리 일을 다시 시작한 내 아버지가 있음에도 말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후- 하고 한숨을 이리도 많이 쉬어본 적이 이 책이 유일할 듯 하다. 이 책의 활자가 단순한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라는 점에서 책으로 가볍게 읽고 넘기는 것마저도 죄송스럽다. 자식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당신들이 비정규직 일을 택한다는 대목이 있다. 은퇴 후에도 자식 뒷바라지를 하느라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찾아가 견딘다는 것이었다. 내 가슴 한 켠을 쿡 찔렀다. 우리 아빠 얘기였다. 그리고 우리 엄마 얘기였다. 장시간 노동, 비인간적 대우, 비위생적인 환경이 단순 노무직 특히 고령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일자리라고 했다. 그들은 그 환경을 노인이라서 잘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견디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견디는 것이라 했다. 그 말은 나를 쓰리게 했다. 나는 부모님의 피와 살과 그리고 청춘을 갉아먹으며 자라온 것 같다.


나 또한 많은 장,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보았다. 20살이 되고부터 현재까지 직종을 막론하며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젊음의 패기와 이 또한 경험이다 라는 생각으로 해온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노인 일자리는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이 적용되지 않았다. 아니 적용될 수 없었다. 단순히 소일거리가 아닌 그게 아니면 생계의 위협을 받기에, 필사적으로 그리고 살기 위해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또한 경험이다'라는 마인드는 사치였다. 아마 얼마 전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신 최희석 경비원님 또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을 하셨을 것이라 감히 짐작해본다. 그 기사만 보면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쓰리다.


터미널 배차요원부터 경비원, 빌딩 관리, 그리고 터미널 보안요원까지. 노령 인구를 위한 일터와 그 사회적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어떠한 지 이 책은 정말 생생하게 전해준다. '경비원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대목을 읽으면 어이가 없고 울화가 치밀지만,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이었다. 이 책이 사회 요직에 올라가 있는 고위 관료, 예컨대 국회의원이나 판사 등에게 꼭 보여졌으면 싶다. 그들이 바로 잡을 정의가 있다면, 법의 사각 지대에 놓인 이들의 삶을 책을 통해 꼭 간접 경험해 봤으면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나라를 보면 당장에 이 책을 읽고 감명 받아 뭔가 크게 바뀌기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말이다.


내 가슴 속에 남은 책의 수 많은 문장에도 이 책을 읽은 후 감상 내지는 생각을 딱 하나 꼽으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회의 사각 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고민하며 살아야겠다."


누군가는 피켓을 들고 울부 짖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들을 위해 법정에서 변호할테고 또 누군가는 그들을 위한 법을 제정할 것이다. 막상 내가 되보지 않았기에 어떻게 그들의 문제를 공감할 수 있냐며 그것이 너의 사명감인 양 살아가는 게 혹자는 위선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인간 본성, 즉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맞는 논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대다수의 이기적인 사람이 있기에 소수의 이타적인 이들이 빛난다고 믿는다. 때문에 내가 존경하는 인물 상 또한 위대한 발명이나 개인의 입신 양명을 이뤄낸 사람이 아닌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정말이지 나는 이게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현 코로나 시국에 목숨 걸고 밤낮으로 고생하는 의료진 같은 분들 말이다. 나는 비록 그들처럼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희생 정신이 강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내 일말의 감수성이 아마 이 책을 읽고 그런 다짐을 하게 해준 것 같다. 변화는 작은 발걸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사람은 못 될 지 모르지만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정말이지 그렇게 살아야겠다.


끝으로 나는 이 책을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쓴 조정진 작가님께서도 이 책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것을 바랄 것이다. 이 책과 씨리얼(CBS의 디지털 콘텐츠)의 11분 짜리 그의 인터뷰 영상을 꼭 보길 권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작은 발걸음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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