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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May 05. 2022

30대의 잘못된 만남

오미오와 줄리엔강

예전 회사의 부서에는 재미난 선배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오미오와 줄리엔강은 잊을 수 없는 선배들이다. 오늘은 우연한 만남으로 새삼스럽게 되살아 추억을 조심히 풀어보고자 한다.




오미오 과장은 해외 유학파 출신의 모던한 남성이었다. 일본 순사에게 당근으로 산 것 같은 동그란 안경, 무인양품스러운 옷들, 그리고 젠틀함. 그는 이 시대의 지성인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바로 작은 키였다. 그피셜의 키는 170, 모두의 추측은 160, 너무나도 큰 간극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당시 39살 미혼이던 그는 늘 모두의 관심병사였다.


한편, 같은 부서의  차장은 170cm의 당찬 커리어 우먼이었다. 지역 천재라 불리며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본인 피셜) 잘못된 전공 선택으로 지금의 회사를 오게 되었다는 푸념을 하던 인물이었다. 당시 3년 발탁으로 벌써 차장이었던 주 차장 선배는 소위 회사와 결혼한 여인으로 불리었다.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지만, 39세의 나이에 아직 미혼이라는 현실 때문이었다. 그녀의 삶은 보통 야근과 주말 출근 그리고 잠깐의 휴일 숙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녀는 늘 일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았고, 개인의 사생활은 존재할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Edward hopper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대충 모두가 아실 것 같다. 문제의 중심은 이 노총각, 노처녀가 같은 부서라는 것에서 출발했다. 두 부서원의 행복을 빌었던 동료들은 그들에게 누군가를 소개해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에너지와 정성을 쏟고 싶지 않았 그들은, 쉬운 길을 선택하며 오미오와 줄리엔강을 연결해주려 했다.


우리들은 그 둘을 보통 오미오와 줄리엔강으로 통칭했는데,  이유는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를 표현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오 씨 성을 가졌던 오 과장을 로미오 대신 오미오로, 줄리엣이라 보기엔 키가 너무 컸던 차장 선배를 줄리엔강으로 바꿔 부르며 우리들은 그들의 잘못된 만남을 이야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의 발단은 한 회식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휴가였던 오미오 과장은 굳이 저녁 회식자리에 뒤늦게 합류했다.


"아니, 휴가라도 저녁에 잠깐 올 수 있지 않나?"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꼰대력을 발산한 P부장님 덕분에 그는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회식장소에 나타났다. 평소 나를 비롯한 부서원들의 미혼 상태에 극도의 불안감을 나타냈던 부장님은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 듯 발언을 시작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오 과장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지 않나? 이렇게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주 차장이 근처에 있는데 말이야."


평소 나이스 하던 오미오 과장은 당일 삶의 굴곡과 쓴 맛을 겪었는지 나이스 따위는 개라도 준 듯 뜻밖의 대답을 했다.


"괜찮습니다."


영어로 It's ok. 일어로 다이조부데스의 이 답변은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무엇이 괜찮다는 것일까? 하지만 확실했던 것은 줄리엔강 차장은 괜찮지 않다는 것이었다.


"저기요."


 차장은 평소 나에게 보고서의 줄 간격이 프리스타일이라며 타박하던 모습으로 말을 이어갔다.


"저는 괜찮지도 않고 굉장히 거북하네요."


거북한 것은 줄리엔강 차장뿐만이 아니었다. 부서원들 모두는 소화불량에 걸린 듯 표정이 굳어졌다. 이럴 때 화제 전환을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P부장님은 연쇄방화범처럼 불난 곳에 시나를 뿌리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아니, 주 차장. 오 과장이 얼마 전에 아파트도 계약했고 독일차도 타고, 이런 남자가 어딨나?"


부장님이 기껏 어필했던 독일차는 내게 굉장히 기억에 남는 차량이다. 독일차도 18만을 뛰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했던 기억. 개구쟁이 같았던 모 후배는 이 차를 독일 경운기로 부르곤 했다.


아무튼 어느 순간부터 줄리엔강 차장은 말이 없어졌고, 오미오 과장은 방금 전 괜찮다던 사람답지 않게 지속적인 곁눈질로 눈치를 살피며 술만 마시고 있었다. 방화범이었던 P부장님은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고기에서 돼지고기 맛이 난다는 대장금스러운 발언을 하며 우리의 울화통을 터지게 하고 있었다.


Edward hopper


그렇게 재만 남게 된 회식이 끝나고 우리는 2차를 갔다. 이쯤 되면 오미오와 줄리엔강 중 한 명은 집에 갔어야 하는데, 그들은 여전히 맥주를 마시며 부장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부장님은 굳이 두 사람 모두와 친한 사람을 찾다가 결국 나를 불러 테이블 4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촌극을 시작했다.


"최대리, 우리 주 차장과 어울리는 남성 스타일은 뭐라고 생각하나?"


난 난감했다. 가뜩이나 곧 기관총을 난사할 것 같은 주 차장이 앞에 있었다. 난 신중해야 했다.


"음.. 키가 크시니 좀 체격이 좋으신 남성적인 스타일이 어울리시지 않을까요?"


나는 오미오 과장과의 거리를 두기 위해 그와 반대되는 남성 스타일을 언급했다. 그때 줄리엔강 차장님은 무심히 한마디 보탰다.


"남자는 어깨죠."


그 순간 부장님은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처럼 오미오 과장을 보며 말했다.


"내일부터 헬스 나가."


평소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하던 오미오 과장은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고, 그 때문인지 체격이 왜소했다.


"괜찮습니다."


오미오 과장은 소설 광장의 주인공이 '중립국'을 외쳤던 것처럼 다이조브데스만 연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쯤 되면 반항처럼 보일까 걱정스러웠던 그때, P부장님은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 자네는 뭐 다 괜찮다고만 해. 뭐가 괜찮아? 이 양반아."


결국 P부장은 둘을 이어주지 못했던 분노 때문인지 잠시 후 귀가를 했고 그렇게 회식은 종료되었다. 이후에도 그들은 지속적으로 같은 회식과 같은 대화와 같은 반응들을 겪었던 것 같다.


나는 최근에 길을 가다 우연히 줄리엔강 선배를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여전히 일에 진심인 그녀는 시간이 멈춘 사람처럼 여전히 당차고 시원시원했다.


"선배, 이제 소개팅도 하고 그러세요. 아님 제가 나는 솔로라도 대신 신청해드릴까요?"


"죽을래? 됐어."


그녀는 관심 없다는 듯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 얼마 전에 오 과장이 연락이 왔어.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에 잘 지내냐고 물었는데 뭐라는 줄 알아?"


'괜찮습니다. 차장님은 어떠세요?'


"나 그때 깨달았어. 이 사람 괜찮다를 정말 많이 쓴다는 걸. 그게 아니라면 정말 지독하게 나를 엿 먹이려는 인간이겠지. ㅎㅎ"


난 가끔 주변에서 그렇게 안달 내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이 두 사람이 잘 되었을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누군가 그때의 그 야단법석이 정말 필요했을까 묻는다면 내 대답도 같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https://youtu.be/Jw4rvrjmm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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