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포장의 미학
[현재, 학교 앞 카페]
"저기요. 안녕하세요."
잔뜩 움츠리며 다가간 내가 2리터의 그녀에게 처음 내민 말이었다.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며 낯선 이를 쳐다보았다. 묘한 표정의 그녀는 경계심보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네."
4년간의 사회생활과 정상범위를 벗어났던 광활한 대학생활, 군 시절의 경험을 무색하게 하는 이 대답은 내게 당혹감을 주었지만 난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시간 괜찮으면 커피 한잔 할래요?"
"저 커피 마시고 있는데... 괜찮으면 여기 앉아서 그냥 이야기하세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요청에도 이러한 답변은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자리에 앉아 앞에 놓인 책들을 보니 많이 익숙한 녀석들이 보였다. 인적성 모의고사, 면접 관련 조언을 담은 책들은 그녀가 취준생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혹시 그쪽도 취업 준비하세요?"
뚫어져라 책을 살피던 내게 그녀는 궁금한 듯 물었다. 그때부터 나는 왜인지 모르게 내 장황한 현재를 이야기했다. 휴직을 했으며, 회사에서는 무슨 일을 했기에 지금 준비하는 과정을 이해한다는 전형적인 배려남 모드로 스스로를 포장했다.
"아 그럼 선배님이시네요. 요즘은요. 취직이 더 어려워졌어요. 저도 하나 붙은 데를 잠시 다니다가 나왔는데 이게 잘하는 짓인 건지 모르겠어요."
순간적으로 우리의 대화는 아침마당의 고민상담 시간으로 변모했다. 난 분명 수작을 걸고자 하였지만 그녀에게 난 이금희의 푸근함처럼 마음의 토로가 더 알맞게 보인 듯했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회사생활을 하며 수없이 되새겼던 이 말을 나는 기억한다. 흘러가는 회사생활들과 무의미한 지시 속에 사라져 가는 개인 시간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했던 말. 그녀는 취직이라는 고비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인사팀이면 제가 왜 면접에서 자꾸 안 되는지 봐주시면 안 돼요?"
"아.. 제가 면접관은 아니어서.. 그래도 괜찮다면 모의면접 같은 거나 자소서 봐드릴게요."
"와. 감사해요."
처음으로 웃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트로이의 헬렌이나 당나라의 양귀비가 이런 느낌이었을 거라고 난 생각했다. 은근한 고뇌 속에 묻혀있던 그 웃음은 모든 것을 정당화시켰다. 우리는 좀 더 대화를 했다. 나는 취업을 하기 직전 취업스터디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통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흥미를 당긴 듯했고, 나는 유재석을 만난 박명수처럼 깨방정을 떨며 모든 것을 털어놨다.
[5년 전, 학교 스터디룸]
"자. 그럼 모의 면접한 평가를 한 사람씩 이야기해볼게요. 제일 먼저 스터디 장인 영석 씨부터 할게요."
그날은 학교에서 연결해주는 취업 컨설턴트 2명을 만난 밤이었다. 스터디원 8명은 4명씩 나누어 그들에게 면접을 보게 될 실제 회사를 말했고, 그들은 그에 맞게 개별적으로 질문을 하며 우리들의 면접스킬을 평가하는 자리였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긴장한 적이 없었다.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며 히로시마 폭격하듯 질문하는 면접관들이 나는 어려웠다. 특히 별다른 장점이 없어 보이는 스펙과 많은 나이로 나는 벌거벗은 듯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 스터디원 중에는 정말 열심히 살아온 녀석들이 많았다. 어떤 질문을 하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면접관들에게 흥미를 주곤 했는데 내겐 그런 무기가 없었다. 군생활 동안 사격을 만발했다는 것을 쓰고 싶은 정도로 내게 가진건은 어떻게든 취업해야 한다는 절규뿐이었다.
"영석 씨는 일단 두괄식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세요. 너무 장황한데 별로 흥미가 가는 내용은 없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 같은 소소한 경험들은 말하지 않는 게 좋아요. 다른 경험들을 정리해서 언제나 나올 수 있게 무기화시켜야 해요. 그리고 자기소개도 너무 평범해요. 다대다(多對多) 면접이면 묻히기 딱 좋겠어요."
나는 람보가 비효율적으로 총알을 낭비하며 죽이는 수많은 나쁜 사람 중 1명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마이 묵었다 아이가'를 속으로 외쳤지만 냉철한 평가들은 계속되었다.
"회사에서는 29살이나 돼서 입사를 지원한 이유를 궁금해할 거예요. 그런 것도 대비를 해야 하는데 아까 대답은 아무런 수긍도 안되고 변명 같았어요."
난 말문이 막혔다. 강남에 땅은 없지만 정직하게 살자는 집안의 가풍처럼 난 솔직히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1년간 유럽여행 등으로 방황하며 시간을 보낸 것을 난 검찰 조사받듯 성실히 이야기한 것이었다. 면접관이 검사였다면 '이 녀석 참 시원시원하구먼. 네 형량을 줄여주지' 했겠지만 면접관에게는 '모두를 당혹시킨 답변'이라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마치 모 영화평론가가 이 영화는 별을 줄 수도 없다는 평가와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늘 그렇듯 즐겨보던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씁쓸함을 시청하며 맥주 한잔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연습하면 나아지겠지'라는 희망과 불현듯 쏟아지는 고민들의 밤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현재, 학교 앞 카페]
"맞아요 선배. 뭔가 내 이야기를 해도 듣는 사람들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이에요. 그들이 원하는 답이란 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다시 우수에 젖은 눈망울을 꺼내보였다. 나는 119 구급대원처럼 치유의 말을 토해냈다.
"면접이라는 게 준비를 하면서 보니까 다 포장인 것 같아. 별거 없는 이야기도 약간의 과장을 붙여서 재밌게 하고 실제로는 없던 이야기지만 충분히 구연 가능하다면 지어내기도 하지. 말을 어떻게 포장해서 괜찮은 나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 그들도 포장된 우리를 좋아하고 그렇게 사람들을 뽑을 거야."
스스로 그녀의 조자룡인 듯 나는 헌창을 휘두르며 말을 이어갔다.
"사회생활도 하다 보면 똑같아. 팀원들은 날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해. 그냥 단순한 에피소드들이 묶여서 내 캐릭터가 나오고 그 범위 안에서 내게 기대를 하지. 언젠가 문득 나 스스로도 그런 기대치에 맞게 움직인다는 걸 알게 돼. 그리고 이래서 부모님들께서 '돈 벌기 힘들다는구나' 하셨는지 느끼지. 우린 다 포장된 삶을 사는 것일지 몰라. 그러니 조금 더 뻔뻔해져. 연출력도 실력일지 몰라."
그녀는 수긍하듯 고뇌하듯 묘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친가의 DNA로 인해 푼수 짓을 좋아한다. 너무 시무룩해지는 분위기를 어떻게든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에 드립을 힘차게 날렸다.
"근데 목이 많이 마르니? 항상."
빵 터지며 웃는 2리터의 그녀는 설명을 시작했다.
"아뇨. 물을 많이 먹긴 하는데 작은 거 사면 돈이 아까워서요. 무거워도 들고 다녀요."
이미 나는 1시간 남짓의 대화를 통해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이에 더해진 이러한 수수함은 내 귓가에 검정치마의 <Everything>이 들리는 듯 환청을 연주했다.
그녀는 27살이었다. 작년에 외국계 제약회사에 취업하였지만 본인이 원하는 직무가 아닌 영업직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하루하루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돌아온 학교에서 더욱 불안감과 고독이 쌓여가는 그때, 키는 크지만 움츠린 듯 다가오는 내가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스펙은 완벽했다. 어학연수 1년의 기간 동안 상당한 영어실력을 갖추었고, 금융권 취업을 위해 흔히 말하는 '금융 3종 세트 자격증'을 모두 따냈다. 비가 오면 학교를 가지 않던 나와 내 친구 '우천취소'와는 근본이 다른 삶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면접에서 번번이 고비를 마셨다. 누구는 그녀가 너무 어리숙하다고 했고, 어떤 이는 평소 고집이 좀 있냐고 물으며 그녀를 강한 인상의 소유자로 치부했다. 수십 번의 면접을 통해 그녀의 내상은 점점 깊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뭐가 하고 싶은 거야? 감이 오는 게 있니?"
나는 궁금한 듯 물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워낙 취업이 안되니까. 되기만 하면 모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영업은 성격에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금융권도 지원은 하는데 번번이 안되고.. 일부 은행은 숙박 면접까지 하는데 다녀와서 떨어지니까 더 충격이더라고요. 내가 밥 먹을 때 너무 잘 먹었나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우리는 답답했던 참에 자리를 옮겨 좀 걷기로 했다. 가을과 겨울을 연결하는 지금의 풍경은 아름답다. 떨어진 낙엽들은 삭막한 아스팔트를 단장시키고 바람 불면 날리는 모든 것들은 환상의 세계를 연출한다. 평소 발업 된 질럿처럼 빠르게 걷는 나는 병든 소처럼 그녀의 걸음을 맞춰갔다.
"근데 오빠 왜 수첩에 '만사'라고 적혀있어요? 별명이에요?"
그녀는 내 수첩에 적힌 '만사'라는 글씨는 본 듯했다. 나의 회사 사번은 우연히도 10004번이었다. 들어온 정규직의 숫자에 따라 차례대로 부여되는 시스템 내에서 인사직무를 하는 내게 10004라는 숫자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누구나 한 번은 들었을 이 말은 인사직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격언이었다. 인사쟁이들에게는 나름의 사명감을 주는 이 말을 기억했던 내게 사번이 10004라는 것은 스스로를 인사 직무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운명론과 결부시키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래서 노트에도 인터넷의 닉네임에도 항상 만사는 즐겨 쓰는 별명이 되었다.
"와. 진짜 인사 직무랑 잘 맞는 운명인가 봐요."
"그렇진 않은 것 같아. 그래도 그런 사번을 받았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어."
나는 그때부터 그녀를 '리터'라 부르기 시작했다. 친근한 관계만 가능하다는 애칭을 통해 난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가고자 했다. 연륜이 느껴지는 더러운 수작이었다.
"리터도 잘 생각해봐. 지난 회사생활이 시간낭비는 아니었잖아. 영업이라는 것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으니 이제 그 경험을 헛되지 않게 응용하는 거야."
"저도 인사직무 지원해볼까요? 선배처럼."
"그러다 나처럼 휴직해."
리터는 호기롭지만 바보같이 대답했다.
"그럼 이렇게 또 누군가를 위해 상담해주죠 뭐."
답이 없는 두 인생의 콜라보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