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북동 언덕
[현재, 성북동 카페]
가파른 언덕길을 차들이 힘겹게 올라간다. 카페에서 보이는 성북동 언덕은 내게 넘을 수 없는 힘겨움으로 느껴진다. 리터와 친해진 후 지겨운 캠퍼스를 떠나 우리는 성북동으로 왔다.
성북동.
서울 토박이인 내게 성북동은 참으로 좋아하는 서울 동네 중 하나이다. 이미 너무 유명해진 연남동과 효자동에 비해 성북동은 아직 본연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상권들이 자리 잡았지만, 사람 사는 옛 냄새가 남은 이 곳을 난 대학시절부터 좋아했다. 특히 성북동 입구 스타벅스는 학교의 그곳과 다르게 항상 자리가 여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창가 자리에 앉아 언덕길을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오늘은 리터가 함께 앉아있다. 리터는 자기소개서를 몇 장 프린트해서 내게 검토를 부탁했다.
자기소개서. 몇 천자의 글자로 내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이 비상식적인 문서를 나는 싫어한다.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고난을 극복했는지 적어보라는 기업들의 요구가 답답시럽다. 각자가 다른 배경과 삶을 살아간다. 다름의 최선도 있었고 부족함도 있었을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이러한 질문들로 지원자를 평가해도 되는 것일까? 평가자들은 그러한 역량이 있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생각들로 항상 자기소개서를 거만한 편법이라 비난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조차 입사지원 시 팔만대장경을 만들 듯 몇 번을 수정하며 글을 써갔던 기억이 있다.
"음. 내가 생각하기엔 수정을 조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담당자들이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정말 공들여서 읽지는 않아. 빠르게 속독하듯이 훑는다고 보면 되는데 그럴 때 키워드나 눈에 띄는 문구들이 보여야 해. 그러면 다시 그 부분을 읽어보게 되거든. 물론 기업마다 다르겠지만 뭔가 딱 눈에 집히는 게 있으면 좋겠어."
짧은 시간 알게 된 사이지만 리터의 눈엔 어느새 신뢰가 가득하다. 나는 속으로 이러한 믿음에 불안해진다. 난 고작 4년을 일했고 인사전문가라 말할 수도 없다. 습자지 같은 조언을 쏟아내지만, 과연 도움이 될까 고민할 때도 많다. 적어도 리터에게는 회사 간부들이 흔히 하던 영혼 없는, 존중 없는 조언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키워드로 뽑을 걸 한번 적어볼게요. 선배."
[4년 전, 인성면접 당시]
"자. 김영석 지원자 입실하세요."
내 입술은 이미 바짝 말라있었다. 고위 임원과 간부로 구성되어 있다는 인성면접실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무역회사인 그곳의 면접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인성면접은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6명의 면접관이 단 한 명의 지원자를 평가하는 이 무자비한 면접은 내게 큰 부담이었다. 나는 크게 숨을 한번 고르고 면접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으니 임원들은 하나같이 험상궂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영화 <신세계>의 주주총회를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은 모니터에 나오는 나의 신상명세서와 그동안의 면접평가 등을 살피는 듯했다.
"영석 씨. 넥타이는 누가 골라줬나요?"
난 당황했다. 갑자기 넥타이라니. 난 패션회사에 지원한 것도 아니었다. 모래알 같던 내 모든 역량을 이곳저곳에 기입하고 물어봐주길 기대했지만 어이없게도 첫 질문은 넥타이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네. 어머니가 골라주셨습니다."
당황했지만 나는 검찰 조사받듯 사실대로 대답했다.
"어머니가 왜 그 스타일을 골라주셨을까요?"
나는 다시 당황했다. 내게 그렇게 궁금한 게 없는 것일까? '전화 걸어드릴 테니 통화 한번 해보실래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나는 작가적 기질로 맞대응했다.
"이곳 전진상사의 상징은 빨간색입니다. 그 색에 하얀색을 저라 생각하셔서 두 조합을 골라주신 것 같습니다."
'이 놈 보게'라는 듯한 면접관은 다시 물었다.
"왜 영석 씨가 하얀색이죠?"
"지금은 머릿속이 하얀색이라 별 도움을 못 드리겠지만 기업문화와 업무역량을 칠해주신다면 누구보다 빨리 완벽한 빨간색이 될 거라는 뜻일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회상해도 스스로 자결하고 싶은 이 임기응변으로 난 면접관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분명 어머니는 마트에서 세일 품목 중 하나를 사셨겠지만 내게는 픽션이 필요했다. 그 이후 정상적인 질문들 몇 개로 난 인성면접을 마치고 방을 나갔다.
내가 입사 후 면접을 지원할 때 느꼈던 면접관들의 인상은 처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임원이거나 주요 보직의 팀장급 인력이다. 그들은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하루 종일 면접을 보는데 불성실한 태도가 보이기도 한다. 일부는 식사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어떤 분들은 과도한 점심식사 후 졸음을 참지 못하고 반쯤 졸음에 빠진다. 인사팀은 교육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본적 태도와 중요 포인트를 말씀드리지만 막상 면접이 시작하면 모두 비슷하고 천편일률적인 질문들 뿐이다. 그들에게 성과와 당장 관련 없는 면접은 일상 업무의 그때처럼 간절하지 않다. 회사의 미래보다는 현재의 실적. 이것이 그들에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현재, 성북동 길상사]
카페에서 나온 우리는 성북동 길을 따라 올라간다. 이곳에는 법정스님이 계셨던 '길상사'라는 절이 있다.
"선배. 원래 불교예요?"
"아니 난 무교인데. 이상하게 절에만 가면 맘이 편해지더라고. 조용하고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크크. 선배 답네요."
정말 그랬다. 난 불교의식이나 절차를 잘 모른다. 그러나 과거엔 요정이었다는 이 절을 좋아했다. '상막한 도시 한가운데 아주 보물 같은 절이 있다'라는 것이 길상사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소박한 동네의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갑자기 드라마에서 보던 회장님들의 집들이 나온다. 주차장이 우리 집만 한 이곳들은 주로 대사관저가 많지만 가정집도 적잖이 들어차 있다. 우리는 저질체력을 짜내며 계속 길을 올라간다.
"여기 엄청 가파르네요. 아니 선배는 이런 데는 어떻게 안거예요?"
"법정스님 책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어. 절에 막상 오니 딱 스님을 떠올리게 하던 이미지 같더라고. 크지는 않아. 근데 엄청 운치 있지."
리터의 얼굴이 하얗게 될 무렵 우리는 길상사에 도착했다. 주로 평일에 오면 길상사는 크게 붐비지 않는다. 항상 약간의 방문객들은 있지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딱 좋다.
"합격 발표날에 여기를 왔었어. 집에만 있으니 다들 내 눈치 보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떨어지면 면목없을 것 같아서 혼자 여기를 왔지. 불교의식을 잘 모르는데 그냥 108배를 했어. 제발 붙여달라고. 이 회사 떨어지면 희망이 없을 것 같다며, 일면식도 없었던 부처님께 졸라댔지. 그리고 몇 시간 후 핸드폰으로 확인하니 진짜 합격했더라고."
면접 당시의 이야기를 남에게 해줘도, 그동안의 입사사례를 보더라도 난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다른 입사지원은 접어두고 한동안 결과 발표만 기다렸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를 확인한 순간 나의 불심은 폭발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다시 108배를 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감사의 108배를 했다. 몇 시간 전의 108배는 힘들기 짝이 없었는데, 이번 것은 느낌이 달랐다. 마이클 조던의 유연성과 무릎 반동을 이어받은 듯, 나는 한 마리 학처럼 108배를 했다. 부처님께 정중한 감사의 인사를 마치고 보니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카톡이 와 있었다.
"영석아. 어찌 되었냐?"
"영석아. 괜찮아?"
"영석아. 다른 기회도 있을 거야."
발표가 났지만 침묵으로 일관되었던 나를 모두들 떨어졌다 생각한 것이다. 난 그때부터 대화를 시작하며 합격의 기쁨을 나눴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이후의 삶이 어떻게 바뀔 거라는 것을.
"그런데 전 회사에서는 어땠는데 그만두게 된 거야? 물어봐도 될까?"
리터는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전 그렇게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에요. 혼자 보내는 시간도 많고. 학교 때는 그렇게 지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회사를 들어가서 보니 남에게 부탁을 해야 할 일들이 많더라고요. 특히 영업은 낯선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하잖아요. 취업만을 목표로 하다 보니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저도 잊어버렸나 봐요. 그래서 회사 선배에게 일을 배우면서도 소극적일 때가 많았어요. 제가 보기에는 좀 쌔보이잖아요. 그래서 뽑았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무르기 짝이 없었어요."
나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타나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과장된 리액션으로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벽이 있다고 생각된다. 리터는 편하게 자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쯤은 잃어버린 자신감, 자신에 대한 솔직한 평가 그리고 불안함. 이러한 리터의 모습은 과거의 나를 상기시키면서 보호본능을 자극시킨다. 스스로의 운명도 불안한 남자에게 대담한 용기를 뿜어내게 한다. 성북동의 가파른 언덕 조차 도전하고 싶어 진다. 리터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선배. <위플래시>라는 영화 봤어요?"
"응. 나 이래 봐도 영화광이야."
'뭐래' 하는 표정으로 리터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 팀장님 거기 나오는 빠박이 아저씨 같았어요. 단순한 대화에도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리 지르고. 저는 막내라 크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선배들은 항상 죽으려고 했죠. 외근이 많으니까 팀 전체가 모이는 자리가 많지 않았지만 항상 회의나 회식이 생기면 일장연설을 했죠. 더 웃긴 건 팀장 스스로 팀원들을 독려한답시고 서로를 이간질시키는 발언이 많았어요. 그러니 다들 견제하고 누구 하나 마음을 터놓지 않았죠."
듣기만 해도 답답함이 느껴졌다. 회사에서는 다양한 리더십을 경험할 수 있다. 가끔은 이것도 리더십으로 분류해야 하나 싶을 만큼 거부감이 드는 경우도 있다. 리터의 전 팀장이 딱 그러한 느낌이었다. 길상사의 시원한 바람이 가득한 오후, 나는 방해하지 않고 깊게 경청을 이어갔다.
"한 번은 제가 소극적으로 업무를 한다고 팀장님 귀에 들어갔나 봐요. 회의가 끝나고 부르더라고요."
[어느 날, 그 망할 팀장과]
"지혜 씨. 요즘 배울만한가?"
그녀는 여느 사회 초년생과 다르지 않았다. 사실대로 '못 해 먹겠다'라고 말하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그런 웃음을 지으며 긍정의 시그널을 날렸다.
"네. 아직 서툴지만 김선배가 잘 해주셔서 버틸만합니다. 빨리 배우겠습니다."
"듣기로는 고객들한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데 그런 자세로는 여기서 못 살아남아."
<위플래쉬>의 그 빠박이처럼 마음을 향한 그의 채찍질은 가슴을 강하게 후려쳤다.
"이제부터 지혜 씨가 메인으로 일을 진행해봐. 해도 안될 거라면 빨리 포기하는 게 서로에게 좋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가는 걸 봤으니까 하는 얘기니 너무 서운해 말라고."
서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굳이 왜 하는지, 그날부터 리터는 계속 백팔번뇌에 사로 잡혔다. 그리고 혼자서 찔끔찔끔 울기도 했다.
[현재, 길상사]
"그리고 한 달 만에 그만두었어요. 해도 안 될 사람이란 것을 스스로 너무 잘 알았던 거죠."
늦가을의 해는 짧아진다. 서둘러 사라지는 햇살만큼이나 급작스런 침묵이 우릴 감싸고 있었다. 짧은 사회생활 동안 느낀 것 중 하나는 위로라는 것의 어려움이었다. 어느덧 쉽게 쉽게 상대를 위로하려는 나를 느낀다. 그의 아픔에 대한 동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생각도 배려도 없다. 순간의 호응 같은 위로를 남발하는 내가 싫어지곤 했는데 그래서 리터에겐 더욱 조심스럽다.
"가자. 그 망할 팀장이고 뭐고. 돈가스 사줄게. 여기 엄청 유명한데 있어. 내 얼굴만 해."
"엄청 큰가 봐요. 돈가스가."
이러한 호응은 개나 주라며 비난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메롱 같은 웃음을 띄고 있었다. 살다 보면 우리는 과거의 고통과 시련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게 된다. 당시에는 꿈에도 몰랐을 '역경 후 시간'을 우리는 살아간다. 얼마나 많은 성북동 언덕 같은 시련이 우리에게 남아있을까? 그리고 누구와 함께 그것을 넘어갈까?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