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와 2리터의 그녀 #5

(5) 유체이탈

by 최푸근

[2년 전, 회사 사무실]

"영석아. 오늘 부장님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

그날 부장님은 팀장님께 산산조각 났다. 성격이 급해 점심도 도시락으로 먹던 팀장님은 그날따라 유독 예민한 상태였고, 인사보고서에서 오타를 발견하자마자 부장님을 향해 대포동 1호를 발사시켰다. 사실 보고서는 대부분 과장/대리급이 작성한다. 부장님은 우리를 신뢰하는 리더십을 보유한지라 따로 오탈자까지 보지는 않는다. 대략의 맥락이 맘에 들었던 부장님은 그대로 보고를 들어갔고 폭격을 당한 체 돌아오셨다.

"애들아. 아무리 그래도 오타는 좀 확인하자."

대인배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모두 죄송스러워졌다. 그래서 평소 분위기 메이커로 이용당하던 나는 대표로 회식을 하자고 여론을 몰아갔고, 그렇게 우리는 저녁 회식을 갖게 되었다.

"엇. 부장님 어제 첫째 아드님 수능 잘 보셨나요?"

학교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조카처럼 귀여워하시는 부장님을 위해 난 화제를 전환코자 했다. 첫째 아들은 부장님께 훈장과도 같았다. 항상 전교에서 놀며 의대는 무조건 갈 수 있다는 세간의 평을 받은 그였다. 그래서 난 자식 자랑을 유도하며 부장님의 기분을 바꿔드리려 했다.

"어제 수능보고 집에 안 들어왔어...."

난 그 순간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현재, 학교 도서관]

'지금쯤 면접을 보고 있겠구나.'

나는 도서관에 앉아 시계를 보았다. 리터가 면접을 보러 간 날,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던 나는 걱정과 기대로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리터는 많은 준비를 했다. 나와 두 번의 모의면접도 보았고 미용실도 다녀옴으로써 자신의 상태를 만랩까지 끌어올렸다. 어제 머리를 하고 카페로 들어오는 리터를 바라보며 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만큼은 설현과 수지조차 내게 의미가 없어졌다.


[어제, 학교 앞 카페]

"선배. 어때요?"

"어.. 깔끔하네."

리터는 비상식적인 대답에 당황했다. 보통 여자에게는 '깔끔하다'라고 하지 않는다. '정말 이쁘다. 나와 결혼하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놈의 주변머리는 역시나 가출한 상태였고, 나는 머리를 밀고 온 후임병에게 말하듯 대답한 것이었다.

"전에는 엉망이었어요?"

리터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고, 나는 급격한 코너링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자. 이제 준비가 되었나. 결전의 날이 내일이다."

"휴우~ 모르겠어요."

모두가 그러하듯 리터는 긴장하고 있었다. 대기업의 자회사였던 그 기업을 리터는 꼭 가고 싶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는 회사로서 세간의 평도 좋았다. 그래서 그녀는 욕심이 났고, 그 욕심은 걷잡을 수 없는 긴장감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우리가 꼭 말하고 싶었던 아이템들만 기억해. 어떤 질문이 나와도 그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그 아이템들을 활용하는 거야. 잘할 거야. 걱정 마."

'아이템'이란 리터가 가진 경험과 자격들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활용하는 것을 논의했고, 어떤 질문이 나와도 그것들만큼은 말하고자 했다.

"고마워요. 선배. 근데 이렇게 챙겨줬는데도 못하면 어떡하죠?"

"걱정 마. 말했잖아. 될 놈들은 뭘 해도 되는 거야.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현재, 학교 앞 카페]

저녁 6시가 지났다. 리터는 연락이 없다. 어떤 기업도 야근을 하며 면접을 하진 않는다. 그것만큼 기업 이미지가 최악으로 가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4시면 끝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리터에게 보낸 카톡의 1은 아직 그대로다. 난 책도 집어던지고 즐겨 듣던 음악도 꺼버렸다. 초조해진 나는 곰팡이에게 전화를 했다.

"팡아. 리터가 연락이 없는데. 어떡하지?"

"합격과 함께 차인 거 아냐?"

난 내 인생의 가장 상스러운 욕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둡고 습한 것을 좋아하는 내 친구 곰팡이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저녁 7시가 되자 혼돈의 나는 급기야 스타벅스를 거닐기 시작했다. 파고다공원처럼 카페를 거닐고 다니는 나를 손님들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때 카톡이 왔다.

'선배. 망한 거 같아요. 술 한잔 할래요?'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학교 앞 지하 맥주집으로 달려갔다. 리터는 부당해고를 당한 사람처럼 맥주 한잔을 시켜 앉아있었다. 멀리서 보면 맥주와 대화를 하듯 맥주잔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안주라도 하나 시켜놓지. 처량한 모습에 내 마음이 아팠다.

"이 사람아. 연락을 좀 해. 걱정했잖아."

리터는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망한 것 같은데 차마 선배 못 보겠더라고요. 뭐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


[몇 시간 전, 면접실]

그녀의 면접은 다대다(多對多)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리터는 4명의 경쟁자들과 함께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면접관들은 5명의 자기소개를 들은 후 한 명씩 지목하며 질문을 했다. 리터의 첫 질문, 문제의 그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지혜 씨. 성격이 좀 있을 것 같은데, 평소에 주위 사람들이 본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해요?"

리터는 당황했다. 성격이 좀 있을 것 같다니. '뭐 책상 한번 엎으라는 이야기인가' 싶었던 그녀는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굴복은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평소 오고 싶었던 회사에 지원해서 약간 긴장한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사람 좋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래요? 평소에는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합니까?"

리터는 인성에 집중된 질문들에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의 나처럼.

"좋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잊으려고 합니다."

그녀는 이러한 대답들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면접관의 웃음도 유도하지 못했고 특색도 없었다. 준비한 아이템을 활용하기에는 너무 다른 차원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개별질문의 전부였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말 조차 기회를 주지 않고 면접은 끝나버렸고, 그녀는 축 처진 어깨와 함께 면접장을 나왔다.




[학교 앞, 맥주집]

"선배. 제가 그렇게 얼굴이 차갑고 사납게 생겼어요?"

리터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에게 물었다. 그녀에게는 웃음이 묻어있는 눈이나 보조개 같은 것이 없다. 무표정하게 있으면 약간 차갑게 보이기도 한다. 난 그것에서 외로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바로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관들에게는 '일할 때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준 듯했다. 나는 이런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난 친한 친구들만 알고 있는 비밀을 털어놓으며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심정을 잘 알아."

"선배가 어떻게 알아요. 선배는 지나가던 행인이 돈 달라고 하면 집문서라도 팔 것처럼 생겼어요."

리터의 맹비난에 나는 놀랐지만 말을 이어갔다.

"우리 팔 집문서도 없어.. 암튼 나 사실 시력이 양쪽 다 1.5야."

그녀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두 손가락으로 내 안경의 안경알이 있는지 확인했다.

"알이 있는데.. 뭐예요. 그럼 이 안경은?"

"하도 대학교 신입 때 선배들이 '4가지' 없게 생겼다고 해서 그때부터 안경을 썼어. 그러니까 없던 여자 친구도 생기더라고. 그때부터 내 친구들은 안경을 절대 벗지 말라고, 나사로 귀에 고정하라고 했지."

그녀는 반쯤 삼키던 맥주를 용가리처럼 뿜어냈다. 그리고 폭소했다. 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안경을 벗는 한이 있어도 그녀의 걱정은 덜어주고 싶었다. '그저 한 번의 면접일뿐이다. 너를 제대로 평가할 그 무엇조차 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나를 팔았다. 안경을 벗은 내 모습을 보며 리터는 안정을 되찾았다.


"유체이탈이 되는 줄 알았어요. 왜 그런 것만 묻는지 납득이 되질 않았어요. 분하기도 하고 자괴감이 엄청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선배 생각이 나더라고요. 볼 낯이 없었어요.."

리터의 눈망울은 충혈되어 있었다. 씩씩한 그녀는 눈물까지는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력적이라 느꼈던 그 외로운 표정에 더욱더 마음이 아파왔다. 좀 더 배려있게 면접을 봐주면 안 될까? 안 뽑아도 좋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가볍게 질문을 안 던지면 안 될까? 그것이 그 순간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다음에 계속)




https://youtu.be/hAIwzrlD9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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