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주도와 양빈잔
[현재, 학교 근처]
"영석아, 김대리 아버님이 돌아가셨어."
급작스러운 회사 과장님의 전화 한 통에 난 할 말을 잃었다. 김대리는 우리 팀 사수이다. 남자답고 시원스러운 성격의 그를 난 형처럼 따랐다. 물론 욕을 먹을 때도 많지만, 그에겐 후배를 아낀다는 진심을 전달하는 힘이 있었다. 난 생각조차 필요 없다는 듯 물었다.
"빈소가 어디인가요? 과장님. 당장 가겠습니다."
"제주도야. 너무 멀고 평일이라 일부만 갈 것 같아. 평소에 둘이 친했으니 연락했지만 무리는 말거라."
전화를 끊고 나는 바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2년 전, 회사 사무실]
두두두다다다다두두두다다다
김대리의 키보드는 여느 때처럼 부서지듯 쳐진다. 김대리는 팀 내 엑신(엑셀의 신)으로 통한다. 군대 행정병을 시작으로 그의 엑셀 경력은 한편의 서사시와 같았고, 어떤 이들은 그가 엑셀로 그림도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4시까지 사장님께 보고하러 갈 거야. 그전에 수정해와."
성격이 급한 나머지 와인조차 포도주스 마시듯 드시는 팀장님의 이 같은 발언을 듣고 시계를 보니 3시 33분이었다. 우리는 모두 김대리를 본다. 김대리는 엑셀로 수정된 수치를 계산해내고 그것을 워드에 다시 입힌다. 그는 마우스 우클릭을 키보드로 한다. 그 때문인지 그는 마우스를 쓸 일이 거의 없다. 처음 이 팀에 왔을 때 김대리는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영석아, 지원팀은 보고서를 급하게 쓸 때가 많아. 속도가 생명인 거지. 웬만하면 마우스 안 쓰고 작업해. 그래야 빨라진다."
엑신의 이러한 조언은 진심 어린것이었다. 난 그때부터 보는 이를 답답하게 하는 '마우스 안 쓰기' 작성을 연마했고 실력은 늘어갔다. 그러나 엑신을 따라갈 수 없었다.
3시 55분에 팀장님께 보고서를 가져다 드리고 김대리는 드디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영석아, 죽자. 이게 사는 거냐. 으하하하하"
그의 동네 바보형 같은 웃음은 내게 회사생활을 이어가는 큰 힘이었다.
[현재, 김포공항]
언제나 설레던 공항에 나는 맥없는 표정으로 도착했다. 평일 한적한 김포공항은 쓸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조사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장례식 가는 길은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티켓팅을 위해 줄을 서는데 리터에게 카톡이 왔다.
'선배, 어디예요? 오늘 돈가스 먹을래요?'
우리는 언젠가부터 학교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나는 은근히 그 시간들을 기다리곤 했다. 4년이 지난 학교 앞 식당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 생각했지만, 요즘은 젊은 사장님들이 하는 맛집이 늘었다. 그 때문인지 하루하루 리터와의 저녁식사가 즐겁기만 했다.
'나 잠시 어딜 다녀와야 해서.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
장례식장을 간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근심 가득한 그녀에게 우울함을 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오면 감귤초콜릿을 주며 이야기하는 느끼한 계획을 짜며 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제주도에 나는 조의를 표하러 간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행기는 무거운 공기만 가득한 듯 답답하게 느껴졌다.
[2년 전, 회사 사무실]
"영석 주임님, 질문 좀 하려고요."
새로 온 통번역 담당사원이 내게 첫 말을 건 순간이었다. 나는 아침회의 때 간단한 그녀의 자기소개를 들었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고 이번엔 인사팀 통번역 담당으로 온 양사원은 시트콤 'LA 아리랑'에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였다.
"예, 사원님. 무슨 일이세요?"
"제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한자를 잘 몰라요. 어느 봉투가 장례식 때 내는 거예요?"
그녀는 祝結婚(축결혼)과 賻儀(부의)라 적힌 두 봉투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이러한 뜻밖의 질문이 좋았다. 한자를 모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이런 것을 순수하게 물어보는 그녀가 난 재밌었다. 몰라도 아는 척 버티고 버티는 것이 사회가 아닌가. 그 속에서 이런 순수함은 신선한 바람과 같다. 나는 친해도 질 겸 정성을 다해 대답했다.
"세 글자짜리가 결혼식이고, 두 글자 짜리가 장례식 때 써요. 결혼은 축하하는 거니까 한 글자 더 보태는 거죠."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Awesome. 주임님 천재!"
난 그 순간 '또 하나의 인물이 들어왔구나' 싶었다. 그랬다. 그녀는 손흥민만큼이나 센세이셔날 했다. 가식 따위는 박멸한 듯한 솔직함과 엉뚱함에 어느덧 팀 내 분위기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술 또한 잘 마셨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의 청춘은 지나가고 있어요. 마셔야 해요. 부장님 잔이 비었어요. My bad."
뇌에 스쳐가듯 사고하는 양사원은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부장님은 특히 여자 직원이 부족한 우리 팀에서 양사원을 유독 챙겼다.
"양사원 술잔은 항상 비어있구먼. 이제부터 양사원을 '양빈잔'이라 부르자고."
양빈잔은 새로운 별명이 맘에 드는 듯 말했다.
"크크크크크 맘에 들어요. 근데 그게 뭔가요?"
[현재, 제주도]
역시나 다를까 공항에 도착하니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다. 날씨는 구름이 좀 있었지만 맑은 편이었다. 휴직으로 인해 가벼워진 지갑 사정으로 나는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여행할 때 렌터카에서 봤던 바깥 풍경은 버스 안에서는 또다시 새롭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말소리, 기사님의 푸념, 할머님의 힘드신 듯한 기침소리. 모두가 정겹고 편하게 지나쳐간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왜 누구를 보내야만 하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걸까? 난 얼마 살지도 않은 인생의 개똥철학을 읊조리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중에 이런 곳에서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주변 환경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러한 감탄도 잠시, 1층부터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난 무거운 마음으로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야 인마, 이 먼데까지 어떻게 왔어?"
'와줘서 고맙다'는 뜻의 제주도 상남자 말에 난 말없이 김대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예를 갖추고 인사를 다시 드렸다.
"늦어서 죄송해요. 대리님."
김대리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래도 얼굴 보니 좋다. 인마."
전우의 정 같은 감정이 김대리와는 있다. 2년 동안 성격 급한 팀장에게 시달리며 밤새 야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김대리는 나 대신 와이프와 저녁을 먹고 싶다며 푸념을 했고, 나도 설현 사진을 보이며 김대리에게 응수하곤 했다. 시간의 정은 말없이 쌓여갔던 것일까. 그의 상한 얼굴에 마음이 아팠다.
"다 일찍 오셨다가 가시고 몇 분만 오늘 밤에 함께 있어주신데. 아 맞다. 양빈잔 사원 여기 와있어."
[현재, 제주도]
"김주임! 쉬더니 얼굴 좋아졌네요."
누군가 내 등을 툭치며 말했다. 양빈잔이었다. 평소 할리우드 배우처럼 입고 다니는 그녀는 장례식장에서도 혼자 런어웨이를 거닐듯 몸에 딱 맞는 검정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메트릭스를 찍는 듯한 그녀를 보니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빈잔사원, 혼자만 시상식에 오면 어떡해요."
"크크크크 그리웠어요. 김주임 없어서 혼자 분위기 메이커 하느라 짜증 났어요. 한라산 한잔해야죠."
다짜고짜 술을 권하는 그녀를 보며 역시 양빈잔은 변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나는 빈자리에 가서 양빈잔과 함께 앉았다. 그리고 나오는 음식들은 날 놀라게 했다. 성게 미역국, 회무침, 수육, 오메기떡 등 서울촌놈인 나에게 제주도 맛집을 온듯한 광경은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크크크크 저도 그런 표정이었어요. 어서 먹어요. 배고플 텐데."
나는 밥을 먹으며 양빈잔과 이런저런 회사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혹시나 했지만 여전했다. 다들 힘들게 일한다는 이야기, 누가 또 업무를 하다가 성질을 부렸다는 이야기. 변하지도 끝나지도 않을 것 같은 우리 회사의 무용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쉬니까 좋아요? 다들 김주임 그리워해요."
빈말 인지도 모르는 이 말에 난 속으로 울컥했다. 누군가 나를 그리워해 준다는 것. 방향성을 잃고 불안한 감정으로 가득한 내게 고향에서 온 편지를 본 기분이었다. 나는 공식적으로 만든 답변 같은 대답을 하며 의연함을 유지하려 했다.
"그냥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서 좋아요. 놓쳤던 것도 많이 살피게 되고요."
"누구 만나는 사람은 없어요? 이럴 때 연애나 좀 해요."
양빈잔의 핀잔에 나는 리터가 떠올랐지만 우린 아직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를 만났으니 후회가 되는 시간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에게 쉽게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너무 늙어서 인기가 없어요. 양사원 님은 좀 어때요?"
그녀는 한라산을 한잔 마신 후 세상 다신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Boys aren't very nice."
"그러니까 얼굴만 보지 말라고 말했잖아요."
오빠 같은 마음으로 나는 잔소리를 시작한다. 우리 팀의 장점이자 단점은 이것이다. 다들 정으로 묶여있다. 단, 팀장님은 예외이다. 아무튼 우리의 수다는 한라산 빈 소주병만큼이나 빠르게 늘어갔다.
나는 그날 저녁 11시 비행기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추가로 도착한 팀원들과 양빈잔의 협박으로 아침 비행기로 일정을 변경했다. 그리고 리터에게 카톡을 했다.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이 연락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잠깐은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잠시 밖으로 나갔다. 깊은 어둠은 제주도 바다를 사라지게 한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 나는 내 미래와 같은 어둠을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카톡을 보내본다.
'리터야. 뭐하니?'
제주도의 밤공기와 한라산 소주의 취기가 만드는 감성 가득한 카톡에 대한 리터의 답변은 신속했다.
'센빠이~ 지금 TV에 박보검 나오는데. 레알 멋지네요.'
사형선고를 받은 듯한 나는 내일 저녁에 학교에서 보자는 카톡을 남기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그날따라 한라산 소주가 혀에 착착 감기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