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와 2리터의 그녀 #8

(8) 크레모아 그녀

by 최푸근

새벽 6시 반.

나는 숙취와 함께 깨어났다. 새벽까지 마신 한라산은 고결한 자태만큼이나 묘한 숙취로 나를 감싸고 있다. 주위를 보니 양빈잔과 팀원들은 폭격을 맞은 듯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장례식장 밖으로 나갔다. 밤새 보이지 않던 제주도 푸른 밤은 잔잔하게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 마음속은 차분하지만 잔잔하게 요동 친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난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현재, 제주도]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한 후 난 다시 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갔다. 맑게 갠 하늘은 내가 좋아하던 그 제주도였지만, 무거운 마음 탓이지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그때 리터에게 문자가 온다.

'선배, 오늘은 학교 꼭 와야 해요. 돈가스 먹고 싶단 말이에요.'

혼술은 커녕 혼밥조차 못하는 그녀는 홀로 학교를 다닐 때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한식을 사랑하고 밥을 복스럽게 먹는 그녀를 보면 그러한 이야기조차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기다려, 돈가스 왕.'

나는 상남자 흉내를 내며 답장을 했다. 그리고 감귤초콜릿 중 가장 큰 사이즈 선물세트를 고른 후 비행기에 올랐다. 출장 후 돌아가는 아버지 같은 모습에 난 기분이 묘해졌다.


[2년 전, 조직문화 개선의 날]

소희 대리는 우리 팀의 몇 안 되는 여성 멤버였다. 무표정한 얼굴에 단발머리의 첫인상은 다소 '건들면 폭발한다'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실제로 업무를 하면서 살가운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업무 밖의 요청에는 wrong number라는 식으로 짧게 대응했고, 몇몇 선배들은 그러한 그녀를 은근히 비난하곤 했다. 나 역시 신입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질문들을 했다가 상처를 받고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별명을 '크레모아'라고 지었다.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모두 알만한 지뢰 '크레모아'. 크레모아는 폭발하면 수천 개, 수만 개의 구슬이 온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주위를 초토화시키는 모습이 그녀 같다는 느낌에 난 그녀가 없을 때 크레모아 대리님이라 부르며 분을 삭이곤 했다.

그녀와 친해지게 된 것은 조직문화 개선의 날이 있던 금요일이었다. 매번 새벽까지 이어지는 광란의 음주문화를 바꿔보자며, 우리 회사는 새로운 액티비티를 기획하라는 공지사항을 올렸다. 그래서 일부는 영화를 보러 가고, 일부는 레포츠를 하러 갔다. 우리 팀은 기대하지 않았던 소희 대리의 주장으로 '클림트 특별전'을 관람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소희 대리는 자칭 예술과 함께 살아가는 Human being으로 불리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꼭 활용하고자 했고, 우리 팀은 그렇게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클림트 특별전이었던 그날, 대부분의 팀원들은 20분 만에 전시회를 빠져나왔다. 다들 미술엔 관심이 없었고 감성조차 말라버린 아저씨들로 구성된 우리 팀은 조깅하듯 전시회를 횡단한 것이다. 그리고 출구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었다.

"이따 저녁 장소 말이야. 확실히 맛있는 데지?"

"그럼요. 등심이 끝내줍니다."

"좋아. 이제 다 모였나?"

우리는 30분 만에 인원수를 파악했다. 단 한 명, 소희 대리가 보이지 않았다. 소희 대리는 이번 전시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인생 화가 중 한 명인 클림트를 그녀는 사랑했다. 그래서일까? 입구에서 따로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오디오 가이드까지 구입한 그녀는 그 설명들과 함께 그림들을 하나씩 감상하기 시작했다.

"소희가 그림을 좀 좋아해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사수인 박 과장님의 말에 대부분의 무지한 우리들은 짜증스러운 반응을 냈다.

"아, 배고픈데 말이야. 30분의 관람이면 우린 충분히 조직문화를 바꿔놓았어."

회사에서는 가끔 알 수 없는 기획들로 스스로를 개선하고자 한다.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필통을 만들어 보내준다던지, 쓰러진 벼를 세우러 봉사활동을 가서 오히려 탈진해 본인이 쓰러지는 등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곤 했다. 이 조직문화 개선 역시 그러한 전시행정의 일종이었다. 소희 대리가 출구로 나온 것은 2시간이 좀 지난 후였다. 그녀의 눈망울은 충혈되어 있었다.

"너무 좋았어요."

그녀의 뭉클함이 도배된 반응에 부장님은 따듯하게 대꾸해주셨다.

"자, 이동하자고."


나는 회식자리에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들은 각자의 갑옷을 입고 일을 하고 사람을 대면한다. 혹자는 거듭된 상처에 그 갑옷이 더욱 두꺼워졌고, 어느 누군가는 태생적 배경으로 인해 갑옷에 고슴도치처럼 쇠뿔이 달렸다. 그런데 회식자리에서는 다들 그 갑옷을 적당히 벗어놓는다. 일부는 모두를 벗고 활극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은 적당히 갑옷을 덜어내고 그동안의 피로나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난 평소 무표정하던 소희 대리에게 다가갔다.

"대리님, 항상 모니터에 해두시던 배경화면 그림도 유명한 것인가요?"

소희 대리는 자신의 관심사가 나오자 일일 미술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아, 그 그림은 잭슨 폴락의 그림이에요. 들어봤죠? 붓으로 미친 듯이 뿌린 듯한 그림들."

난 미술에 무지했지만 영화에서 그의 그림들을 자주 보았다. 대부분 부유한 주인공이 스스로의 재력을 뽐내는 수단으로 나왔던 잭슨 폴락의 그림들은 내게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였다.

'아니, 나도 만들 수 있겠구먼. 그냥 대충 뿌리면 되는 거 아냐.'

나는 항상 이러한 생각으로 영화 주인공들의 소비 스타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소희 대리는 계몽운동가가 되어준다.

"그림들이 보면 대충 그린 것 같거든요. 그런데 잭슨 폴락이 막상 그릴 때는 3~4주 정도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막상 그리면 작업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것이 나오기까지 그만의 고심들이 많았던 거죠."


예술이 좋은 이유는 나이를 먹으면서 그 체감이나 이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창 업무로 정신없이 살아갈 때의 나는 그림을 볼 여유조차 없었다.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세상의 다른 묘미들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그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현재, 학교 앞 카페]

"선배, 뭐 하고 있어요?"

책을 보던 나는 반가운 리터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다. 지난 면접의 상처를 조금 회복한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날 설레게 한다.

"아, 비행기 타고 오다가 갑자기 예전에 알게 된 화가가 생각나서 책을 다시 보고 있었어."

"어디 갔었는데요? 와 제주도다!"

27살의 어린이는 감귤 초콜릿을 보고 본인의 것임을 확신했다. 그리고는 좋아진 기분을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 주려고 사 온 거죠? 잘 먹을게요. 제가 초콜릿을 좀 좋아해요."

"안 사 왔으면 큰일 날 뻔했구먼."

"그런데 왜 제주도 갔다 온 거예요? 하루 동안."

나는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는 진지한 눈빛과 개구쟁이의 입모양을 한 얼굴에 담아내며 초콜릿을 먹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선배 의리가 있네요. 많이 위로해드린 거죠?"

리터는 날 토닥이듯 대답했다. 나의 불안정한 현재에서 그녀는 큰 위로를 준다. 언젠가 나도 모르게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크게 당황한 적이 있었다. 위안을 주는 사람은 흔히 볼 수 없는 인생의 보물이다. 그런데 나는 가까이 그리고 자주 볼 수 있는 그녀를 만난 것이다. 예전의 누군가처럼.

"그럼 보답으로 돈가스는 제가 사겠습니다. 가시죠!"

업된 그녀의 흥은 멈추질 않았다.




[2년 전, 회사 근처]

"자, 김주임. 이 책 보면 좋아할 것 같아서 주려고요."

소희 대리는 내게 현대미술가들의 설명이 가득한 책 한 권을 건넸다.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엇.. 감사합니다. 대리님."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자칫 말도 안 되게 반응하면 또다시 내게 구슬이 튈까 걱정도 되었다.

"뭔가를 관심 갖게 해주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제 은사님께 미술에 대해 배웠었는데 김주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순간 나는 RPG 게임에서 방탄복을 획득한 느낌이었다. 넉살 좋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나였지만 크레모아 대리와 친해질 줄은 몰랐다. 그녀에게는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울타리가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울타리의 문이 열린 듯 내 앞에 크레모아 대리는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전시회를 2번 정도 갔다. 함께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난 그녀의 손을 잡았고 우리의 비밀 연애는 시작되었다.


[현재, 돈가스집]

"선배, 원래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카페에서 내가 보던 책이 궁금했던지 리터는 돈가스를 음미하며 물었다.

"아, 이거 예전에 선물 받은 것인데 다시 읽고 싶더라고. 요즘 관심이 좀 생겼어."

리터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크크크 감성남 요즘 폭발하는 거 아니에요?"

난 멋쩍은 듯 웃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휴직 후 쓸 수 없을 정도의 시간 부자가 된 나는 다양한 공상과 감성 그리고 기웃기웃을 반복 하며 모든 지식과 감성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메마른 사하라 사막을 걸어온 느낌이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주인공은 부상당한 여인을 동굴에 피신시키고 3일을 걸어 도움을 청하러 간다. 그리고 도착한 도시에서는 그는 밀정으로 오해받아 압송된다. 난 그처럼 사막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주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사막과 따가운 햇볕 그것이 전부이다. 그래도 리터가 있어 나는 가끔의 오아시스 같은 청량함을 가질 수 있다.

"근데 선배는 연애 안 한 지 오래되었어요?"

문득 리터의 얼굴에서 소희 대리가 오버랩되는 것을 나는 느꼈다. 둘은 묘하게 닮았다는 것을 느낀 것도 바로 그때였다.


[2년 전, 크레모아의 자취방]

쾅쾅쾅.

나는 연신 못질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던 그날, 나는 그녀를 위해 잭슨 폴락의 그림 액자를 샀다. 물론 가품이었지만 미국에서 제작하는 이 액자는 꽤나 좋은 선명도를 자랑했다. 세로 60cm, 가로 130cm의 그림에 크레모아는 감동했다. 나는 이 액자를 위해 수많은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한 달 전에 주문을 했었다. 그리고 선물을 보여준 날, 그동안의 수고로움은 증발할 정도로 크레모아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Number 31 이네."

"응, 이것저것 봤는데 난 이 그림이 좋더라고."

크레모아는 말수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한 만족감을 표현해주며 즐거운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도 이렇게 인연으로 발전한 것에 대해서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몇 달 전 나는 구슬을 맞던 한 명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그녀와 함께 성탄절을 보내는 연인이 된 것이다. 나의 지인들은 내 연애를 모르기 때문에 나에게 그녀 흉을 보기도 했다. 난 속으로 난감했다. 맞장구를 치자니 미안하고, 반응을 안 하자니 어색할 것 같은 느낌에 난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으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우리의 비밀연애는 1년 동안 계속되었다. 업무 중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그녀를 위해 나는 업무와 그녀를 모두 챙겨야 했다. 그러면서 나의 짜증도 조금씩 늘어갔다. 나에게 의지하는 사람의 무게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무게가 너무 커질 때 다가오는 반발감도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같은 상황에 있어서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 오만에 불과했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가 하나씩 쌓이면서 우리의 관계는 잭슨 폴락의 페인팅만큼이나 불규칙하게 번져만 갔다.


[현재, 돈가스집]

"좀 되었지. 이제 기억도 안 나는구먼."

난 노인 같은 변명으로 대충 대답을 했다. 솔직해질 수 없었다. 내 연애사는 지금의 리터와의 관계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녀의 연애에 대해 난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가상 면접관으로 그렇게 그녀에게 질문을 했던 나인데도 말이다.

'제일 오래 만난 남자가 얼마나 지속되었나요?'

'누가 제일 멋있었습니까?'

'그놈이 낫습니까? 내가 낫습니까?!'

묻고 싶은 것은 많았다. 하지만 혼자 간직하면 그만인 것들이다. 나도 예전의 언제에는 다른 이에게 위로를 받고 감정을 키웠으니 말이다. 돈가스를 흡수하던 리터는 불현듯 내게 다시 물었다.

"선배, 나는 어때요?'

난 먹던 돈가스를 토해냈다.



(다음에 계속)


https://youtu.be/Z2DJsWjHK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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