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와 2리터의 그녀 #9

(9) Nighthawks

by 최푸근

"도대체 나는 어딨는 거야?"

소희 대리를 사귄 지 일 년이 되던 어느 날, 그녀는 백화점 한가운데서 소리치듯 말했다. 각자의 업무로 정신없이 바쁘던 시절, 나는 주말 동안 적어도 하루는 출근을 해야 했다. 그 때문일까? 오롯이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늦은 퇴근과 동시에 이어지는 데이트가 반복되는 평일의 밤들이 계속될수록 난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했다.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의 마음도 배려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스스로 갖고 싶었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말했다.

"내일 하루는 좀 집에서 쉴게."

그녀의 반응은 차가웠다. 내 삶에 자신의 공간은 어딨냐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나는 스스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과 연애가 공존하는 곳에서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은 사라져만 갔다. 그렇게 스트레스는 일 년 동안 축적되었고 나는 못난 마음을 먹게 된다. 나를 위해 살고 싶다. 그것이 내 이별을 위한 변명이었다. 그렇게 소희 대리와 나는 헤어졌다.




[현재, 학교 근처]

"선배, 나는 어때요?"

갑작스러운 리터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과거 소희 대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누군가를 상처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현재의 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휴직 후 무엇을 얻은 체 나는 복직하여 회사생활을 할 것인가? 스스로 이 중요한 질문에 아무런 답도 찾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리터와 나 사이에는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리터는 나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야지."

나는 바보 같은 삶의 컬렉션에 추가될만한 또 하나의 대답을 했다. 리터의 얼굴은 다소 굳어졌다. 그녀가 나에게 요즘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게감 역시 좋았다. 하지만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이 서로 만난다면 그 이후는 또 어떻게 바뀌고 변할까? 사랑에 서툰 나이는 지났지만, 많은 과거들은 내게 머뭇거리는 그림자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계속 내 발걸음은 잡아당긴다. 생각보다 우울하고, 생각보다 답답한 내 세계로 그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 결론은 이렇게 허무하게 결정되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잘 알잖아. 너에게 바보 같은 모습만 보여줄 것 같아."

"선배는 진짜 멍청이예요."

리터는 쿨하게 대답을 하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사회에서 패잔병처럼 떠돌던 나는 용기까지 상실한 멍청이가 되어버렸다.


[작년, 회사 사무실]

"영석아, 들었어? 소희 대리 그만둔다던데?"

"네?!"

나는 충격을 받았다. 헤어진 지 한 달이 좀 안 되던 그 날, 난 그녀의 퇴직 의사가 승인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부장님은 만류했다. 하지만 그녀의 의사는 확고했다고 한다. 누구도 우리의 연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워낙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그림이었고, 우리 스스로 조심하기도 했다. 이별 후에도 우린 평소처럼 업무를 하려 애썼다. 나는 실없는 농담을 하며 팀원들과 어울렸고, 그녀의 업무 스타일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소희 대리가 어느 때보다 메마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사내 메신저를 켰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갑자기 왜 그만둔다는 거야?"

"하고 싶은 공부를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아. 알잖아. 이렇게 사는 게 내 목표는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유학을 통해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 했다. 한창의 연애에는 그 계획에 나도 동반되어 있었다. 나는 지사에 파견을 가고, 그녀는 그 나라에서 유학을 하는 달콤한 계획들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꿈은 온전히 그녀만의 계획이 되어버렸다.


며칠이 지나고 그녀의 책상은 거짓말처럼 비워졌다. 그리고 인사담당인 내게 퇴직서가 전해져 왔다. '퇴직서, 이소희.' 나는 말없이 그녀의 퇴직서를 바라보았다. 이미 해가 저물고 몇몇은 퇴근을 했던 황량한 사무실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사내 파우치로 나는 소희 대리에게 한 권의 책을 받게 된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내가 좋아하던 화가의 작품집이었다. 쓸쓸한 당시 사회의 모습을 담백하지만 무한한 상상이 지속되게 그렸다던 그 작가. 나는 왜 그녀가 이 책을 주고 갔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녀도 나도 다시 외롭고 황량한 존재로 남게 되었다. 추억이 얼마나 쌓였던 그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짙은 후회감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2주 후 나는 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현재, 학교 앞 카페]

나는 한동안 리터에게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함께 했던 동지가 사라지니 나의 쓸쓸함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책도 그림도 들어오지 않았다. 우울한 기분을 달래보고자 영화를 혼자 보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카페에서 나는 멍하니 노트북 만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쓸쓸한 김 노인님."

난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리터였다. 여전히 들고 있던 2리터의 생수가 어찌나 정겹던지, 나는 뭉클함까지 느꼈다. 리터는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아 말을 이어갔다.

"선배는 이 그림 보면서 자신이 여기 홀로 앉아있는 남자 같다고 했죠?"

내 노트북 배경화면인 에드워드 호퍼의 <Nighthawks>를 가리키며 리터는 말했다. 그랬다. 그림의 가운데 그는 홀로 앉아있다. 반대편에는 한 커플이 나란히 앉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그 주변은 적막하다. 길에도 건너편 상점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난 그 고독한 남자가 나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모두가 쓸쓸한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좀 더 고독한 존재라는 것이 내 인생의 운명이라고 느끼곤 했다.

"이제는 혼자 앉아있지 말고 건너편 커플처럼 같이 앉아요. 그러면 좀 나을 거예요."

리터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난 아무 말 없이 리터를 바라본다. 그녀는 눈빛 속 깊이가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끌리듯 그녀의 손을 잡았다.


Nighthawks_by_Edward_Hopper_1942.jpg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출처 : 위키피디아)



(끝)



https://youtu.be/ZINqzZi2S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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