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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Feb 12. 2017

거지 같은 사랑에 대한 그녀의 계획

영화 <매기스 플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남자의 사랑에 대해 논하시오.


대학시절 강의명 조차 생각나지 않던 교양과목의 중간고사였던 이 문제는 당시에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남자의 사랑은 이론으로 정립화하기 쉽지 않다. 혈액형에 대한 인간의 분류처럼 비과학적 이론으로 맘 편히 구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남자의 입장에서도 이 놈들의 사랑이란 종잡을 수 없는 망아지와 같은 느낌이다. 나는 XY의 조합으로 태어나 30년을 넘게 살아오며 다양한 남정네들의 사랑을 지켜봤다. 가까이에는 50대에 뜬금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셨던 이모부부터, 10년을 연애했음에도 와이프를 보면 여전히 설렌다는 회사 과장님까지, 이들은 남성이라는 성적 구분 외에는 사랑에 대해 어떠한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로서 피해받는 것은 물론 여성일 것이다. (여성에게 상처받는 남자에 대해서는 나중에 누군가 글을 써주실 거라 믿는다) 이 영화도 그 피해자인 한 여성이 그려가는 삶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부터 그 남자의 거지 같은 사랑에 대해 살펴보자.


※ 글 중 스포가 될만한 사항은 최소화하였습니다




Maggie's Plan, 2015



매기(그레타 거윅)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소위 배운 뉴요커이다. 그녀는 사랑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아이가 갖고 싶은 마음에 동창인 피클 맨에게 정자 기증을 요청한다. 그러던 중 같은 대학에서 인류학자로 강의를 하며 소설을 쓰는 존(에단 호크)을 만나면서 끌리게 된다. 이미 결혼을 하여 두 명의 자식을 둔 존은 평소 '쎈 여인'이라는 아내(줄리안 무어) 보다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편한 감정을 들게 하는 매기에게 역시 빠지게 된다. 하지만 불같았던 사랑도 잠시, 매기는 자신에 대해 소홀해져 가는 존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그를 전부인에게 돌려보내겠다는 황당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렇게 간단한 줄거리를 써보니 우리나라의 아침 드라마보다 더 막상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남자로서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존(에단 호크)이 보여주는 남성의 한분류에 대해서였다. 나는 앞으로 서술적 편의를 위해 이 같은 남자들을 '에부형(E.B.U.) 남자'이라 칭하겠다.


E.B.U. : Easy But extremely Unthoughtful


에부형 남자은 굉장히 사랑에 빠지는 접근 공식이 단순하다. 거의 1+1=2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딱히 좋아하는 유형이 분명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변명들로 사랑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에 대해 그다지 심도 깊은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가져오는 책임감에 대한 무게에 대해, 알지도 못하며  알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사랑에 대해 어느 순간 내 감정이 식어버려서 어쩔 수 없다는 전자레인지 전자파 터지는 소리나 하며 다음 사랑을 향해 또다시 질주한다. 남자가 보기에 이러한 유형은 생각보다 도처에 존재한다. 인문학이 갈수록 천대받는 현대사회에서 남정네들은 생각보다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시간이 없어졌다. 그들이 배운 사랑이란 스스로 도깨비가 되어 김고은이 안타깝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거나,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자라 소개팅을 나가기 전 국정원 신분 조사하듯 사람을 가리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하루하루 얇은 자신의 감정을 쫒아 살아간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존도 이런 '에부형 남자'에 불과했다.


빌 헤이더(Bill Hader)가 만들어주는 주인공의 친구역은 꽤나 매력적이다


내 친구 중에도 이런 '에부형 남자'가 있다. 족제비라 불리는 그는 작년 나와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던 도중 들어온 한 여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몇 분이 지난 후 재킷을 다시 입은 족제비는 정중하게 걸어가 그녀에게 자기소개를 하며 전화번호를 요청했다. 평소 보이스피싱보다 성공률이 저조하던 족제비는 하늘이 도운 듯 전화번호를 받아왔고, 그의 얼굴에서는 행복함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그들은 1년을 사귀었다. 햄버거집에서 만났다는 이유로 '매기(Mc → Maggie)'라 불리었던 그녀는 꽤나 상냥하고 털털했다. 평소 소주를 좋아하던 족제비와 소주를 대작해주며 각자 2병씩 마실 만큼 주량도 쌨다. 우리는 그녀를 '족제비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칭할 정도로 그들은 완벽해 보였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족제비가 '에부형 남자'의 전형적인 짓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를 비롯한 친한 친구들이 술을 먹는 자리에서 항상 그의 사랑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그리고 다소 화려하게 생긴 여성분이 주위를 지나가면 자석에 끌리듯 그들을 쳐다보곤 했다. 우리는 꽤 많이 그를 만류했다. 매기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을뿐더러, 네가 원하는 것이란 일시적인 감정을 쫒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족제비는 매기와 헤어졌다.


족제비는 그 후 아직도 누구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주선을 쏘아 올리듯 무수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를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사람도, 관심을 가지려 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다. 나는 가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물론 '거울을 좀 보라'는 싸우자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그냥 이쁘면 좋고 아름다우면 사귀고 싶다. 그녀의 삶 속 존재하는 여러 존재들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가벼운 그의 방식은 하나하나의 몸짓과 언행에서 묘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말이다.


물론 더 환장하는 것은 매기의 선택이다. 차라리 친절하지 않았던 금자 씨처럼 칼부림이라도 벌이면 좋았겠지만, 그녀는 다시 그를 그가 있던 가정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너희들이 요즘 만들어내는 지극히 가벼운 사랑에 대해 내가 내릴 수 있는 조언은 이런 병맛 같은 결론밖에 없다는 자소적 태도였을까?




현부인과 전부인의 만남


그래도 영화에서는 꽤나 재밌는 요소가 많다. 누구나 꿈꾸는 뉴요커들의 삶이 너무나도 이쁘게 귀염귀염 하게 진행되어간다.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 배우들 역시 꽤나 인상적이다. 이런 씁쓸한 사랑 이야기가 핑크색 포스터를 통해 표현될 수 있는 것은 주인공들의 친구 역할을 통해 우리가 하고 싶은 소소한 반문들을 코믹하게 소화해준 그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혹자는 무슨 이따위 스토리가 있냐며 흥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 삶에는 이러한 병맛 같은 사랑들이 넘쳐난다. 오늘 소개한 '에부형 남자'는 그중 일부에 불구하다. 물론 사랑은 세월과 경험을 통해 발전하기도 한다. 매번 산에서 도를 닦듯 사랑을 연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느꼈던 것은 현재의 우리는 좀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사랑에 대해 접근할 필요가 조금은 있지도 않냐는 것이었다. 지금 당신이 이와 같은 진지함으로 고민이 많다면 조금은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의 깊이만큼 나중도 더 달콤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https://youtu.be/tb8jkjlP89M

영화 중 매기가 춤을 췄던 그장면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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