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 베를린

슬퍼할 겨를도 없이, 베를린-서울 긴 비행길에 오르다

by 어나더씽킹

# 테겔공항에서 떠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2020년 11월 29일.

밤새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얼핏 잠이 들었는가 싶으면 여지없이 꿈을 꿨다. 한국인 것도 같고 독일인 것도 같은, 알 수 없는 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으로 시간을 가늠해가며 수많은 생각을 하고 기억을 떠올렸다. 아침이 밝으면, 우리는 정말로 떠나는 것일까. 왜 여태껏 믿어지지 않는 것인지, 믿고 싶지 않은 것인지,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아침 8시는 되어야 해가 뜨는데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여전히 어둠이 세상을 지배 중인 그 시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날 밤 미리 끓여둔 죽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마지막 정리를 하고 늦어도 8시에는 공항에 가는 택시를 타야만 했다. 서울까지 직항이 없어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여정의 항공편을 예약한 우리는 환승 시간까지 합해 17시간 이상을 밖에서 버텨야 했는데, 코로나 와중에 긴긴 비행에 대한 걱정과 긴장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베를린과 작별하는 날 아침의 슬픔을 덜어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알트 바우(alt bau, old building) 1층(한국의 2층에 해당)에서 아래층으로 이민가방을 포함한 캐리어 6개를 옮기고 나니 시작부터 기진맥진. 콜밴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30여분 내내 나는 한 장면이라도 놓칠 세라 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동쪽에 있는 도시-가령 드레스덴 같은-나 인근의 나라들을 갈 때면 반드시 지나가던 도로에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약하게 비까지 흩뿌리는 잿빛의 도시 풍경은 전형적인 베를린의 겨울 풍경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역시 창밖에 시선을 고정해둔 아이는 내내 말이 없었다. 마스크에 페이스 실드까지 하고 있어서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는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기를 반복하는 아이를 보면서 스스로 감정을 다독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분위기를 환기해야겠다 싶어 나는 말을 걸었다.

"테겔공항에서 떠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집에서 15분이면 도착했을 테니까. 우리가 여행 갈 때마다 오갔던 테겔공항 하고도 인사할 수 있었을 테고.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새로 생긴 공항을 구경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그치? 역시 모든 일에는 항상 좋은 면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나쁜 면만 있는 것도 아니야."

베를린 테겔공항은 크기가 너무 작아서 늘 붐비는 곳이었지만, 도심에 위치해있어 편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 집에서 차로 10~15분이면 가는 곳이라, 심지어 한 번은 출장 가는 남편을 테겔까지 데려다준 후, 여권을 놓고 왔다는 남편 말에 집까지 다시 가서 여권을 가져다준 적도 있다. 누군가를 공항으로 마중 갈 일이 생겨도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출발해도 충분했고, 인근 나라에 당일치기 여행을 갈 때도 공항에 오가는 시간을 허비할 일이 없어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었다. 그런 테겔 공항이 10월 말로 문을 닫고 그 역할은 베를린 외곽 쉐네펠트에 생긴 브란덴부르크 신 공항이 대신하게 됐다. 독일의 전 총리인 빌리 브란트의 이름을 딴 빌리 브란트 브란덴부르크 공항이 그것. 귀국일이 늦춰진 덕분(?)에 신공항에서 출발하게 됐으니 새로운 공항을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넓은 공간에서 붐비지 않고 여유롭게 출국할 수 있게 된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빌리 브란트 브란덴부르크 공항의 외관은 거의 인천 국제공항 같았다. 와, 여기가 베를린의 신공항이라니, 테겔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가 어색했다. 널찍한 내부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오픈한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승객보다 직원이 더 많은 것 같은 공항 내부는 아직 미완인 곳도 있고 문을 열지 않은 숍들이 대다수였지만,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신경 쓰이는 상황이라 그 적막함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공항.jpg 베를린의 신공항인 빌리 브란트 브란덴부르크 공항.

# 길고 긴 비행,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무려 5시간 40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은 각오를 했음에도 쉽지만은 않았다. 정상적으로 공항 이용이 가능했다면 면세점 구경도 하고 카페에도 커피도 마시며 그 시간을 즐겼겠지만, 한 순간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과의 거리를 신경 써가며 기다리야 하는 일은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탑승구 앞의 대기석이 굉장히 넓었고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점.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최대한의 거리 유지가 가능할 수 있었던 터라 안심이었다.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독일의 친구들에게 문자를 남기고, 글을 쓰고, 인터넷 검색 등을 하며 꾸역꾸역 5시간 넘는 시간을 버티고 나니 드디어 탑승. 노트북으로 쓰던 소설을 쓰기도 하고, 친구들과 온라인에서 만나 게임을 즐기는 동안 아이도 오늘의 작별이 주는 슬픔은 잊은 듯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탑승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3-3-3 좌석 배치에 가능한 멀리 떨어뜨려 두 명 정도가 앉아서 가는 식. 그나마도 우리 줄 앞으로는 5~6열 정도가 비어 있어서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항공기에 오른 아이는 이륙 때까지 긴장하는 듯하더니 이내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이용하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3년 전 독일에 가는 비행 편 상황도 비슷했는데 그때의 기억은 까마득히 잊은 모양. 유럽 내에서 여행 다니는 동안 늘 작은 비행기만 타고 다녔던 아이는 이렇게 큰 사이즈의 비행기며 제공해주는 모든 서비스들이 신기하고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아무리 기내 환경이 좋고 서비스가 편리했어도 10시간이 넘는 비행은 끝이 없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잠을 자도 줄어들지 않는 시간은 서울과 독일의 물리적 거리를 새삼 깨닫게 했다. 아이에게 2년 후에는 꼭 베를린을 방문하자고 약속했는데, 정말 멀긴 멀다, 베를린.


# 막힌 도로에 접어들어, 비로소 돌아왔구나.

한국 시각으로 하루를 넘겨, 긴 비행을 끝내고 비행기가 착륙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서류를 작성하고, 발열 체크를 하고,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그걸 확인받고, 한번 더 안내를 받고, 또 확인받고, 입국 심사를 하고... 도대체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쳤는지 한국이 정말 빈틈없이 꼼꼼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찾고 밖으로 나가는 과정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입국자들의 동선이 따로 마련돼 있어서 순간 모르고 벗어나기라도 할라치면 그 라인을 지키고 있던 누군가가 와서 제지했다. 솔직히 불편했지만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연일 2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쏟아지던 나라에서 안전한 내 나라로 돌아왔다는 안정감.

평일 낮, 막히는 서울의 도로를 보니 돌아온 것이 실감 났다.

집으로 가는 길, 막히는 서울의 도로를 보자 그제야 돌아왔다는 실감이 제대로 들었다. 평일 낮 시간인데 이렇게 막히다니, 베를린은 주말에도 웬만하면 막히는 걸 볼 수가 없는데. 그래, 이게 서울 풍경이지. 한강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빌딩들과 새로 솟은 빌딩들, 한글로 적힌 도로의 이정표, 한 명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쓰고 길을 걷는 풍경도 서울다웠다.

막상 돌아오니 복잡했던 감정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이제는 눈 앞에 있는 현실을 생각해야 하니까. 그래도 순간순간 문득문득 베를린의 풍경과 기억이 머릿속을 마음속을 후벼 판다. 하다 못해 한적한 숲길을 달릴 때마다 들었던 애드 쉬런의 'perfect'만 들어도 마음은 베를린을 향해 있다. 나는 떠나왔지만, 마치 또 하나의 나를 그곳에 두고 온 것처럼, 어떤 날은 동네를 산책하고 어떤 날은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는 나를 상상한다. 언젠가는 그곳의 나를, 다시 만나러 갈 일이 있겠지. 그때까지 잠시만 안녕,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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