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눈뜨자 마자하는 고민
“엄마, 오늘 반찬은 뭐예요?”
“엄마, 아침엔 뭐 먹어요?”
“반찬 맛 괜찮았어?”
“짜진 않아?”
“너무 싱거워?”
우리 집에서 가장 자주 오가는 대화는 다름 아닌 ‘밥’ 이야기다. 오늘 밥은 뭔지, 맛은 어땠는지.
아이들은 편식을 하지도 않고 까탈스럽지도 않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뭐든지 맛있게 먹어주니, 매일 새로운 메인 요리를 하나 정도만 해두고 출근을 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저녁이면 퇴근한 애들 아빠가 식세기 이모님까지 돌리고, 설거지통마저 뒤집어놓으며 주방 마감을 선언한 이후이니 제일 퇴근이 늦은 나는 내 늦은 저녁만 챙기면 되는 상팔자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인생 최대의 난제는 바로 ‘내일은 뭐 해 먹지?’이다.
때때로 기분이 좋지 않거나 피로한 하루 끝에서 듣는 아이들의 “엄마, 저녁 뭐 먹어요?”라는 단순한 질문은 나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나에게 이 난제는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내가 잘 못 먹여서 그러나', 혹은 아이의 키가 작은 이유도 전부 내가 잘 못먹여서 그런것만 같은 이상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마음속에 죄책감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다. 일상이 너무 바쁜 어느 날, 아이들은 잘 먹이고 싶고, 몸은 하나고, 그러다 보니 작고 하찮은 불평들이 내 안에 쌓이고 있음이 느껴진다.
왜 우리는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 걸까.
왜 꼭 밥에 반찬을 곁들여야 할까.
왜 사온 반찬은 그렇게 안 먹을까.
왜 냉장고는 자꾸만 비는 걸까.
하지만 그 불평과 짜증 너머의 진실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 아이들과 남편이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 집은 평일 저녁에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 일이 거의 없다. 작은 아이가 혼자 저녁을 먹고, 큰 아이 먹고, 아빠 먹고, 마지막이 나. 잠깐 스치듯 마주치기만 할 뿐이다. 이는 우리 가족이 전부 각자의 삶에 얼마나 충실히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게 밥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비록 엄마가 식탁의 맞은편에 앉아 있지는 않지만 엄마의 정성과 관심이 담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증표라고 생각하면 너무 과장일까.
매일 저녁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밥을 챙겨 먹고, 또다시 자신의 일을 위해 집을 나선다. 학원을 다시 가기도 하고 공부를 하러가기도 한다. 같은 식탁에 마주 앉지 못한다는 것이 일하는 엄마로서 마음 한편엔 늘 미안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도 투정 한 번 없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들. 메인 메뉴 하나에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는 우리 집 보물들. 어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없을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잘 먹이고 싶은가 보다. 잘 먹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인생 최대의 난제가 되었나 보다.
오늘 아침엔 어젯밤 미리 꺼내둔 돼지 목살로 김치찌개를 끓였다. 학교 가기 전, 보글보글 끓는 찌개 냄비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둘째를 보니 '김치찌개엔 계란말이지. 어묵볶음도, 감자채볶음도 있으면 딱인데.'
나도 모르게 냉장고를 다시 열고 다른 식재료들을 뒤적인다.
엄마니까, 비록 속으로는 투덜거릴지라도 아이들 입에 조금이라도 더 맛있으라고, 한 입이라도 더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밥을 짓는다. '스팸도 구울까' 다시 또 냉장고 문을 연다.
그리고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며 내가 제일 먼저 하는 말.
“저녁밥은 맛있게 먹었어?”
내 사랑의 방식은 어쩌면 고작 김치찌개와 계란말이일지 모른다. 공부하느라, 학교 다니느라 바쁜 아이들에게 그게 얼마나 큰 의미일진 몰라도, 나는 오늘도 냉장고를 탈탈 털어 이것저것 솜씨를 부려본다.
인생은 밥심이라 믿으니까.
설령 식탁 위에 놓인 게 식은 계란말이와 다 식은 스팸일지라도, 그걸 각자 잘 데워 먹고, 잘 정리한 뒤 다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족들을 보며, 나는 오늘도 자기 전 냉장고 문을 연다.
'내일은 고등어랑 불고기를 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