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와 선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주는 자꾸만 자리가 불편하다 느껴진다.
은주처럼 정성을 다해 요리하는 일엔 익숙하지 않았고, 사실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맛있고 훨씬 잘 만든 음식이 세상에 널렸는데, 왜 굳이 어묵을 직접 만들어야 할까. 그럼에도 유주는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오랜 친구라고 해서 생각까지 모두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른 판단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또 선희처럼 아이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쏟아붓는 삶. 그것 역시 유주에게는 낯선 방식이다. 엄마도 사람인데, 자기의 일, 자신만의 시간이 있어야 엄마도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그게 유주의 솔직한 감정이었다. 그렇지만 유주도 항상 고민이 많다. 어느날 모임에선 유주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내어 보여주었다.
유주는 대기업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가 어릴 땐 친정어머니의 도움이 절실했고, 덕분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매일 새벽 여섯 시. 유주의 친정 엄마는 잠옷 위에 외투 하나 걸치고, 반쯤 감긴 눈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유주네 집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잘 잤냐"는 인사는 아주 간단하게 , 그리곤 밤새 아이의 상태를 주고받는 짧은 보고가 오간다. 몇 번을 깼는지, 아프진 않았는지, 열은 없는지. 그리고 이내 엄마는 잠든 아이를 자신의 외투로 감싸 안고 집으로 간다. 아이는 외할머니 침대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나머지 잠을 이어서 잘 것이다. 아이는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는다. 하루종일 할머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매일 새벽 6시, 친정엄마는 딸네 집으로 출근을 한다.
“내가 준비하고 데려다줘도 돼, 엄마.”
하지만 엄마는 말한다.
“너 덜 바쁘라고. 잘 다녀와.”
오늘도 잠든 아이가 업혀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서둘러 나머지 출근 준비를 한다. 아이가 깰까봐 조심할 필요도 없이 두 부부는 아침도 대강, 서둘러 집을 나선다.
유주의 직장은 출퇴근에 왕복 두 시간이 걸린다. 7시에는 집을 나서야 여유로운 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다. 도착해서는 업무 준비를 하고, 동료들과 차를 마시며 잠깐의 수다를 떤다. 그 모든 루틴은, 아이를 맡아주는 엄마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엄마가 봐주니, 유주는 일하는 동안 오롯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중간중간 아이에게 걸려오는 영상 통화를 사무실 복도에서 받는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길 유주는 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놀이터에 가기도 하고 할머니랑 집근처 미용실에 마실을 가기도 한다.
퇴근 시간은 6시 반이지만, 사무실은 여전히 분주하다. 유주를 제외한 팀 내 여성들은 모두 미혼. 저녁 7시쯤 팀장을 포함한 야근을 하는 동료들이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유주는 그 틈에 조용히 말한다.
“먼저 가볼게요.” 팀장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내일 회식에는 빠질 수 없겠군, 유주는 속으로 생각한다.
퇴근 전쟁을 치른 지하철 속 1시간. 아이에게 가는 길은 늘 시간과의 전쟁이다. 아무도 빨리 오라고 재촉하지 않는데 유주 마음만 늘 바쁘다. 하루 종일 육아에 지친 엄마도 빨리 가서 돕고 싶고, 1분이라도 일찍 도착해 아이도 안아주고 싶다. 그렇게 지하철 환승구간 뛰고 하차해서 달려 친정집으로 퇴근을 한다. 그래도 밤 8시. 덕분에 유주의 하이힐 굽은 늘 벗겨져 있다. 오늘도 아스팔트 홈에 두 번이나 굽이 박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서면, 아이가 “엄마!” 하고 달려온다. 친정엄마는 퇴근한 딸을 위해 시간 맞춰 저녁까지 준비해 두셨다. 하지만 유주의 눈엔 밥상보다 아이가 먼저 들어온다. 9시 정도면 잠드는 아이. 그런데 아이는 엄마가 오면 그때부터 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을 아이. 유주는 밥보다 아이가 더 중요하지만, 친정엄마는 뛰어다니는 딸이 굶는 게 더 안쓰럽다.
저녁을 빠르게 먹고 유주는 아이와 자기 집으로 두번째 퇴근을 한다. 엄마도 쉬셔야 하니까. 하루에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하지만 유주는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놀아줘야 할지 늘 막막하다. 대화가 되는 나이도 아니고, 기차놀이와 자동차놀이, 그림 그리기 그리고 책 읽어주기뿐. 초보 엄마가 분명하다. 책 한 권이 끝나면 또 한 권. 오늘도 아이는 그림책 몇십 권을 쌓아두었다. 책보다는, 그냥 엄마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겠지. 어쩌면, 잠들기 싫은 마음일지도. 아이를 재워야 나도 쉴 수 있을텐데. 고작 1시간 놀아주고 이런 생각을 한다. 10시가 다 되어가자 이제 유주도 피곤하다. 목도 아프다. 이럴 땐 일하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남편은 오늘도 야근. 늦게 오는 남편도 야속하다. 내일은 남편이 일찍 퇴근해 주어야 할텐데. 주말에 실컷 자고 싶다는 욕심은 있지만, 평일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니 주말엔 더 많이 놀아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선다. 이번 주는 동물원에 갈까, 미술관을 갈까.
유주는 일하는 엄마로서의 늘 미안함과 죄책감에 작아진다. 직장에서도 1등으로 퇴근하며 눈칫밥, 아이에겐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 게다가 엄마에겐 시집가서도 기대기만 하는 철없는 딸.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자신은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인 것만 같아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는 자신은 친정엄마와 아이 둘 모두를 희생시키는 욕심쟁이일까. 언제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다음 달에 희망퇴직을 받는다는데 희망퇴직을 신청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유주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네가 하고싶은 일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은 두가지를 다 갖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라고 말해야 할까.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데 그정도 힘듦을 예상도 못했냐 이야기 해야할까.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으며 넌 그래도 복받은 아이라며 그 불평마저 사치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 또한 다 뱉지 말아야 할 말들임을 왜 나라고 모를까.
유주에게 주변에서 무어라 말한들 도움이 될까.
때로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 그냥 가만히 들어주는게 최고의 위로겠지.
비록 네 생각에 모두 동의할 순 없지만 네 상황도 이해가 되고 네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된다.
오늘은 조용히 네 손 잡아주고 조용히 들어주고싶다.
그렇지만 널 비난하는 건 아니야.
조금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야. 다 쥐고 다 놓고 싶지 않은 마음때문에 사람은 때로 힘든 것이니까.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니. 나도 늘 알량한 쥔것을 붙듣고 동동거리며 살고 있는걸. 단지 난 네 마음이 조금 편한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란다.
네 친정엄마처럼 널 너무 아끼는 마음이기에. 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그걸 조금만 내려놓아보자.
내 사랑하는 친구 유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