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을 만드는 마음으로 사는 인생
책을 읽기 전에는 한 점과 그 반대편에 존재하는 다른 한 점만을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이 모순이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 점과 점 사이에 놓인 수많은 점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이를 이어주는 그 수많은 점들. 인생이란 점에서 점으로 가는 또 다른 점의 연속이 아닐까 하고는 말입니다.
멀리서 보면 어느새 선으로 보일 찰나에 불과한 점들로 인해 우리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그곳을 지나 '불행'을 경험하기도 한다고 말이지요. 고로 영원히 행복이라는 '점'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말입니다.
3D프린트로 공을 만들듯 무수히 많은 점과 점이 연결되어 가는 과정. 아직은 불완전 하지만 그때그때 그럭저럭 굴러가면서 사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은 후 발전된 생각의 궤도라고 짧은 후기를 남겨봅니다. 어차피 인생은 "모순으로 연결된 점의 공 덩어리"라고 말이지요.
아직 더 연결해야 할 점들이 많이 남은 관계로 오늘도 굴러가느라 참 힘이 많이 듭니다. 아직 채 연결되지 못한 그 반대로의 여정, 그 도중에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찰나의 점이 만들어지길 기다리며 터널을 통과 중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공의 완성은 모순의 매듭이자 생의 마지막 일지도 모르고요.
조금 더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위로였을까, 아님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덮었을까, 이도 아니라면 아무 감흥이 없었을까.
구르다 멈춤, 또 구르고 멈춤을 반복하여 생긴 굳은살 덕분에 딱 적절한 시기에 이 책을 읽고는 많은 생각에 잠겨봅니다.
읽다가 좀 더 많이 머물렀던 페이지를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11
삶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씹을 줄만 알았지 즐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에도.
15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17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22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75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62
지칠 대로 지쳐서 지푸라기처럼 늘어져 있는 어머니를 대할 때는 짜증이, 태엽이 감긴 후의 생생한 어머니를 대할 때는 적의가 치솟는 어머니에 대한 나의 대응법 또한 그 못지않게 변환이 신속한 것이긴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힘만으로 상대하기 버거운 문제와 직면하면 마지막 수단으로 동네서점에 달려가 해결법이 들어있을 것 같은 책을 고르곤 했다.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와 한참 씨름하다 문득 뒤페이지의 해답 편을 반짝 떠올리는 수험생처럼.
127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173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184
내가 나를 장악할 수 없어 스스로를 방치해 버리는 순간을 맛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결단코 '나'를 장악하며 한 생애를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186
어떤 일이든 닥쳐서 견디고 나면 스스로가 대견해지는 법이었다.
188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226
이제 겁날 것 하나도 없는" 어머니의 세상 경력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243
빙판길보다 그런 날의 살얼음이 더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법이었다.
291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293
어머니는 여전히 행복했다.
우울도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준다.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295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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