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작가의 말 중-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무지개 모임의 25년도 마지막 책으로 읽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우리에게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이 소설은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며 읽기 딱 좋았다.
25년을 되돌아보며 행복했던 일 이면에 슬픔과 아픔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 행복을 알아챌 수 있는 일도 있었고, 여러 실패와 좌절의 시간을 쌓아 단 한 번의 성공을 경험하는 시간도 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안진진.
처음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에 대해 설명할 때 '아 이래서 책 제목이 모순이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고민 끝에 참진. 자를 써서 외자로 안진이라고 지으려다가 출생신고를 하러 가던 길에 즉흥적으로 진자를 두 번 써서 안진진이 된 이야기. 결국 참진을 두 번이나 써서 강조했지만 안 씨라는 성자가 붙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게 되어버린 이야기.
인생은 의도한 바와 달리 다른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예측에서 벗어난 일들을 경험함으로써 진정한 인생의 맛을 알아가게 되는 것도 진실이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본문 中-
안진진의 엄마와 엄마의 일란성쌍둥이 이모. 같은 얼굴이지만 극명하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여인의 삶을 통해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의 모순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야기에 몰입하며 아껴읽었다.
이모는 언니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사는 인생'이라며 부러워했고 엄마는 동생의 인생을 '걱정하나 없이 사는 인생'이라며 질투 어린 비아냥을 쏟기도 한다.
살아보지 않고 바라만 보는 인생은 당사지로서는 견디기 힘들지라도 서로의 인생이 더 좋아 보이게 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나도 아이의 장애를 알고 가장 힘들 때 나의 보이는 모습만 보던 후배가 해맑게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언니처럼 사는 게 제 워너비예요! 결혼해서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아들도 딸도 키우며 여유롭게 오전에만 일하면서 용돈벌이 하는 삶이요"
아이 치료비를 벌기 위해 오전에만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오후에는 치료실 뺑뺑이를 돌다가 아슬아슬하게 둘째 아이를 픽업해서 전쟁 같은 저녁을 보내고 다음날 출근하던 나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후배의 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난 결혼 안 하고 애도 없고 일하다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훌쩍 유럽여행을 다녀오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라고 말했던 것도 말이다.
책의 제목처럼 모순되지만 이야기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었다가도 너무 단숨에 읽기에는 아깝다고 느꼈다. 그런데 작가의 말에서 독자가 천천히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한다는 문장을 읽을 때 작가의 의도에 잘 반응했다는 것에 슬쩍 기뻐했다.
안진진은 진지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 나영규와 김장우 사이에서 이리저리 고민을 하던 안진진의 태도에서 과연 안진진은 누구를 선택할까 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안진진이 정말 사랑한 사람은 김장우였다. 그의 냄새나는 양말을 빨아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안진진. 그리고 그가 형을 위해 전재산을 쓰고 빈털터리가 되었어도 그와 당연히 단칸방에서라도 시작하고 싶다는 안진진은 결국 나영규를 선택한다.
아마도 아버지와 이모부를 통해 결혼으로 인한 쌍둥이 자매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몸소 체험했기에 하게 된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김장우에게 이모가 엄마라고 거짓말을 하고, 동생과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 하지만 나영규에게는 모든 것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안진진. 그것을 통해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감추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 하고 싶지만, 때론 사랑하기때문에 숨기고 싶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는 사랑의 모순적 태도 또한 보여주었다.
언제나 남편과 자식들의 뒤치닥 거리를 하느라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엄마와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설계된 기찻길로 지나가기만 하면 되는 인생을 사는 이모의 삶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삶의 모순은 무엇이었을까?
풍요와 결핍, 자유와 안정,지배와 저항,도전과 안주 속에서 사람은 각자 해석한 만큼의 선택을 한다.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하려 하지만 결론적으론 아닐 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차선의 선택을 하지만 되돌아보니 최선이었던 순간도 있을 것이다. 삶이 힘든 만큼 삶의 경험과 연륜이 늘어난다. 하지만 경험과 연륜을 위해 힘든 삶을 선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결국 정말로 사람은 자신이 해석한 만큼의 삶을 산다는 것을 안진진을 통해 진하게 알게 해 준 책 모순이 이 겨울 내 마음에 깊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