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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름 Oct 30. 2024

몰입과 확장

중드 폐인에서 한자 마니아로 성장한 이야기


내가 한자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아이 키우며 지치고, 일에 치여 힘들고, 새벽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남의 편을 잊고 정신줄을 놓고 싶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 정확히는 한자가 먼저가 아니다. 중국드라마, 줄여서 중드에 미쳐서 현생을 잊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현생이 잊고 싶어서 중드가 좋았던 건지, 중드가 너무 재미있어서 현실세상, 즉 현생이 강제 리셋이 된 것인지, 그 선후 관계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만 확실한 건 난 당시 중드 폐인이었다는 것이다. 굳이 상상해 보자면 중국 강시 같은 느낌이랄까! 잠도 안 자지, 잘 씻지도, 먹지도 않아 눈 밑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앉아 있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 과도 같은…



이전까지 난 한국드라마, TV, 영화, 노래 등 그 어떤 것, 하다못해 학창 시절 좋아하는 가수도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왔었다. 맞다! 확실히 무미건조했었다!! 그러다 한 순간에 현실이 아닌 가상을 택한 것이다. 하루 중 몇 시간을 “환상의 세계, 중드월드~”에 빠져 버린 것.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 밥과 집안일, 일까지 모두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단지 내 잠시간, 내 밥시간, 내 잠깐의 쉬는 시간을 모두 이용하여 시청할 뿐. 단,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고 카톡도 읽지 않았다. 이때 친구들을 비롯한 인간관계 참 많이 정리 됐었지…


명절이나 주말이 낀 긴 휴일 밤엔 러닝타임 45분짜리 40~50편 드라마를 2~3일 만에 몰아서 본 적도 있으니 말 다했다. 눈이 빡빡하도록 봤지만 볼수록 빠져들었다. 나는 주로 학창 시절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나 판타지, 혹은 삼국지 같은 역사물만 보았는데 혹시 내가 다시 사랑이 하고픈 건가?! 아니면 시간을 되돌려 청춘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을 대리만족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잠깐씩 해보았었을 정도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으니 드라마를 보면서 현생을 잊고자 하는 시도는 아니었을까. 이 또한 짐작해 본다.




그런데 몇 시간을 주야장천 그렇게 사랑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중국드라마를 듣고, 보고 있자니 나에게 중국어는 사랑의 언어이자 속삭임의 언어였다. 거의 2년을 폐인처럼 살다가 나도 중국어로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어가 나에겐 사랑의 언어이니 중국어 공부는 너무너무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학생 때로 돌아간 것과도 같이 노트에 필기하고 단어장 만들고 냉장고에 포스트잇 붙여두고 외우고. 참 열정으로 공부했다. 만학도는 절대 졸지 않는다는 노량진 속설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다. 나이 먹어서 하는 자기 주도는 꽤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문자 I의 성향인 내가 1시간을 달려가 중국어 1대 1 과외도 받고 넷플릭스 대사 쉐도잉도 하고, 심지어는 동네 스터디 모임도 주관해서 만들어 매주 한 번씩 모여 중드 대사 리딩하는 모임도 1년이 넘게 주도해서 운영하였다. 그렇게 중드는 나에게 처음엔 현실의 도피처로 시작되었다가 겁 많은 내가 뭔가 새로운 스터디를 주관해서 이끌 만큼 여러 가지 도전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용기를 기꺼이 심어주었다. 


그 용기는 이후 새로운 도전에 대한 겁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방아쇠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렇게 나는 중국어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한자에도 쏟아붓게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한자 사랑에 빠져 즐겁게 한자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가 나에게 감동인 것도 있고 재미있는 것도 있고 깨달음을 주는 것도 있었다. 

예를 들어

건널 섭(涉) 자가 왜 한자 안에 물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강을 건너는 것이 간섭이기 때문이며, 


불쌍(不雙)하다는 글자에는 왜 새(隹)가 두 마리 인지, 새가 두 마리,
 즉 쌍이 아니라서 ‘불쌍하다’라는 뜻인 것이다. 


왜 엄지손가락 무(拇)를 뜻하는 글자에 엄마가 있는지 아는가?
가정에서 엄마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손에서는 엄지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너무 많은 글자들이 있다. 너무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를 한자가 던져주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그 한자가 온몸으로 전해주는 울림을 혼자만 알고 지나가는 것이 나에겐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의 복습의 용도와 한자를 기억하기 쉽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번에는 스터디 대신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의 한자를 풀이한 한자카드를 직접 만들어 인스타에 취미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취미는 나에게 한자를 공부하는 동기이자 이유가 되었으며 또 다른 나만의 자아를 나 안에 생성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또 다른 미래를 꿈꾸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 취미는 어느새 명심보감, 논어, 도덕경 등의 고전을 읽고 그 안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경험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제는 한자에 이어 고전에서 소중한 말씀들을 배우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단지 중드를 너무 사랑했을 뿐인데, 고구마 캐듯 줄줄이 뒤따라 나온 이토록 좋은 점들. 고전에서 인생을 깨달았고, 지혜를 글로 선물 받는 삶.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중드에 빠지는 몰입을 경험하기 전, 실은 한 가지 책에만 빠져있는 아이에게 일부러 여러 분야의 책을 강요하던 부족한 엄마였다. 그래야 할 것 같았고, 그게 맞는 줄 알았던 엄마였다. 돌이켜 생각하니 후회가 깊다. 그럴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본인이 재미있어하는 책에 푹 빠지도록 둘 테다. 누가 뭐라 해도 한 가지에 깊이 있게 푹 빠져본 사람이야말로 그것에서 다져진 기본기와 몰입의 힘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갈 수 있는 힘이 생길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한자 사랑은 여전히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런 한자 사랑이 또 어떤 경험을 앞으로 하게 만들지, 혹은 나의 인생관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여전히 한자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다른 어떤 것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한자에 푹 빠져 허우적거려 보려고 한다. 한자가 가지고 있는 그 깊이를 다 알려면 한참 더 배워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도 난 한자를 한 자 한 자 뜯어보고 그 의미를 마음속에 새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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