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입찰과 M&A에 숨은 인간의 욕망
최근 국내 건설업계를 뒤흔드는 지각 변동의 이면에는, 철근과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인간의 심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LS와 대한전선의 공방, 중견사들의 대형 M&A, 그리고 '벌떼입찰'이라는 기이한 현상까지.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돈의 흐름이 아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이 빚어낸 거대한 심리 드라마입니다. 오늘은 딱딱한 경제 뉴스 너머,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신도시 택지 입찰마다 수십 개의 유령 같은 계열사를 동원하는 '벌떼입찰'. 이는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영리한 전략으로 보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책임감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효과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한 개인이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를 때 느끼는 죄책감과 부담감은, 여러 사람(혹은 법인)이 함께할 때 N분의 1로 줄어듭니다. 수십 개의 페이퍼컴퍼니 뒤에 숨어, 의사결정자는 ‘내가 아니라 시스템이 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쉽습니다. 또한, 경쟁사들이 모두 이 방법을 쓰기 시작하면 ‘다들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 없다’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이는 비윤리적인 관행을 업계의 '생존 규칙'으로 둔갑시키는 강력한 기제가 됩니다. 결국 '나쁜 일'이라는 인식은 희미해지고 '스마트한 전략'이라는 자기기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벌떼입찰로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쥔 건설사들은 대우건설, 대한전선과 같은 거대한 기업을 사냥하는 M&A 시장의 포식자로 등장했습니다. 이는 성공이 더 큰 성공을 낳는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심리학적으로는 ‘몰입 상승(Escalation of Commitment)’의 함정에 빠질 위험을 내포합니다.
작은 성공(택지 낙찰)에 대한 보상은 뇌의 쾌감 회로를 자극하고, 이는 더 크고 위험한 베팅(대규모 M&A)으로 이어지게 만듭니다. 과거의 성공 경험은 미래의 실패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과신 편향(Overconfidence Bias)’을 낳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는 비합리적 믿음이 수조 원대 베팅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시장 지배를 통해 영향력을 확인받고 싶은 창업주의 강력한 ‘성취 동기(Achievement Motive)’와도 연결됩니다.
한편, LS, 호반, 하림 등 여러 그룹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방어 움직임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바로 행동경제학의 핵심 개념인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입니다.
사람은 100만 원을 얻는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는 고통을 약 2.5배 더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기업 총수에게 ‘경영권’은 단순한 부나 권력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습니다. 이를 잃을 수 있다는 위협은, 잠재적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자사주 소각, 백기사 유치 등 복잡하고 때로는 손해처럼 보이는 전략들은, 이 ‘상실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심리적 방어기제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