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춘기와 동행하며 생각·감정 관성 탈출기 #11

2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나는 내가 무엇을 진짜 좋아하는지 모른다: 갱춘기 극복 놀이


나는 서예와 서각 작품 활동을 최근까지 멈추고 있다. 초대작가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도,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던 미련마저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다. '멈춤'과 '비움'은 왠지 불안함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찾아 주었다. 나를 아는 지인들은 아쉬워했지만 '멈춤'과 '비움'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기 위한 시작이었기에 개인적으로 아쉽지 않았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긴 고민 끝에, 생각에서만 머물면 안 된다고 결심했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남들도 다 하고 있지만 나 자신에게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놀이'('놀이'는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즐거운 시도이므로 불편한 것을 억지로 하지 않아서 선택한 단어다.)를 찾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무작정 시작했다. '

'어쩌면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는 것은 무작정 행동으로 실천하는 행위 자체와 의미 부여 방식일 수 있다.'


놀이 하나: 불편한 감정, 낯선 상황에서의 감정 탐험과 일기글 쓰기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먼저 무엇을 싫어하는지 파고들라는 심리학 강의가 생각났다. 그래서 파고드는 방법으로 '쓰기'를 선택했다. 2018년부터 나는 매일 밤 컴퓨터를 켜고 에버노트에, 그날 나를 지치게 했던 순간, 낯선 순간, 동일한 직장임에도 관계에 따라 변하는 생각들을 기록했다.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이끌려 억지로 할 때, 엉켜버린 관계의 실타래를 욕구와 연관 지어 풀 때, 정답이 없는 복잡한 계획서 작업을 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났다. 내 일기글 속에는 나름의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반복적이고 답답한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 '남의 인정만 쫓았다는 사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뒷전이고 내 욕심에만 집중했다는 사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지금도 일기글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 상황이다.) 마음속에서 끄집어냈고, 그 빈자리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려고 노력 중이나 아직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못 찾았다. 솔직히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체도 의문이다. 다만, 7년간의 일기글 속에서 먹구름 같던 마음을 환하게 비쳐줄 햇살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기글은 내게 하루의 기록을 넘어서 내 마음의 빈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자유로운 생각과 감정을 채울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일기를 쓴 이후로 나의 부족한 부분마저 인정하기 시작했고, 관계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었으며,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최근 들어, 이런 장점이 있는 글쓰기를 주변에 알려주고 싶었다. 마침 연수원 재직 시절에 '꿈'에 대한 유명한 강사님의 말씀인 '적어라.' 그리고 '주변에 공개하라.', '매일 실천해라.'가 떠올랐다. 교원대상 강의를 통해 공개하던 중에 브런치스토리에 응모하여 운이 좋게 작가로 인정받았고, 이 기록들을 브런치스토리에 올리며 공개하기 시작했다.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반응이 남달랐다. '갱춘기'의 솔직한 고민과 나만의 '놀이'를 글로 풀어내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의 공감과 위로가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 글쓰기는 솔직한 나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생각과 감정 사이의 틈을 만드는 도구(가끔은 솔직한 내면을 위장해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이자, 타인과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외부의 시선으로 나를 탐험하고 그 긍정적인 경험을 글로 공개하며, 나누는 과정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 둘: 낯선 관계 속에서 나를 찾기


나는 2014년에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했고, '맨발 걷기'는 2023년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서예와 서각이라는 고독한 작업을 하며 수많은 전시회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며 외롭게 나를 지켜왔다. 이제는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낯섦 속에서의 나를 만나기로 몇 번을 망설이다 어렵게 결정을 했다. 주변의 지인들은 갱춘기부터는 핸드폰에 있는 전화번호 중 최근 3년 이내에 통화하지 않은 사람 목록을 지워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노년기에 지속적으로 만날 사람 중심으로 관계를 좁혀야 정신건강에 좋다고 조언했다. 맹꽁이 심보가 작용했는지 오히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하는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금의 내 생각가 감정을 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는 동호회에 가입했다. 처음엔 어색했다. 기존에 만들어진 관계에 내가 들어갈 틈이 있는지 살피며, 공감될 만한 공통 대화를 찾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운동을 하고 나서 지친 이유는 기존 관계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 염탐과, 자연스러게 끼어들 말을 연습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줬다. 몇 차례 함께 뛰고,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공감의 부분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낯선 야외 환경과 계속 변하는 주변 환경이 마음속 깊은 대화를 쉽게 끄집어냈다. 또한 매 월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면서 연습 기간 내내 '부상없이 완주'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걷고 뛰는 이들과의 교류는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게다가 동호회에 젊은 친구들이 없고 나이가 비슷한 이들과 함께 '갱춘기'의 고민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초대작가', '예술가'가 아닌, 그저 마라톤을 즐기고, 맨발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역시. 관계에서 형성된 혼란은 새로운 관계를 통해 풀어내는 것이 해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활동을 함께 하며 생각이 든다. 동호회 회원들이 나를 마라토너로 키웠고, 맨발 걷기 전도사로 키웠다는 생각 말이다.

'초대작가'라는 타이틀이 나 스스로 만든 존재감의 벽이었다면, 마라톤과 맨발 걷기는 나 외의 사람들이 만들어준 존재감의 울타리여서 갱춘기를 견뎌내는 바탕이 되었다.


놀이 셋: 오감과 저축으로 주체적인 나를 발견하기


나는 평소 먹고 싶었던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나름대로 '엄마 맛 찾아 삼만리'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내 입맛의 근원은 엄마의 맛이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레시피도, 거창한 재료도 필요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했던 엄마의 손 맛을 찾아 좋아하는 재료를 썰고 볶으며 오롯이 그 순간에 집중했다. 물론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겪었고, 지금은 제법 맛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맛있는 냄새와 소리, 눈앞에 펼쳐지는 색감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엄마의 손 맛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해 아직도 어머니와 통화하며 레시피를 캐내기 바쁘다. 오감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어머니와의 잦은 통화는 추억의 맛 MSG를 가미하게 충분했고 어떤 성취감보다 컸다.

그리고 현실적인 노후 준비도 병행했다. 노후 대비 저축을 시작했다. 보험보단 저축의 양을 늘렸다, 동산과 부동산을 어떤 비율로 구성할지 고민하며 노후대비 경제학 특강도 찾아 듣고 있다. 단순히 돈을 모으는 행위를 넘어, 이는 불안했던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나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다짐은 내게 새로운 안정감과 자신감을 주었다.


'무작정 시작할 놀이'를 찾았으면 만족해도 돼. 조급해하지 마.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100%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찾아가는 중이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빨리 성과를 내거나 결론이나 해결책을 찾겠다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낯선 길 위를 걷는 '갱춘기'이다. 나의 모든 낯설고 새로운 시도들은 불완전에서 완전을 향해 가는 소중한 놀이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놀이기에 놀이로 끝날 수 있고, 놀이지만 진정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불완전을 떨쳐버리고 완전을 추구하는 노력에마 그쳐, 완전에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나만의 놀이를 통해 선택했던 생각과 감정을 내 편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마치 내가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보다 더 큰 의미가 될 것이다. '과정'을 통해 나는 '성장'했고 그 결과로 '행위'의 타당성을 인정받았다.
언젠가 다시 붓을 들고 서각 칼을 잡고 작품을 한다면, 초대작가로서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고백이 될 것이고 완성도가 높은 미완성 작품에 만족하며 지속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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