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은 기억 지우개인가?
건강검진, 추가 문진표 재조명
2025년 12월 10일은 정기 검진을 받는 날이다. 검진 전 문진표를 작성하다 추가 문진표가 눈에 들어왔다. 재작년까지는 보이지 않던 내용이었다. 만 66세부터 2년마다 작성하게 되어 있다. 노인 기능 평가 도구(신체적인 기능이 얼마나 노화되었는지 확인하는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와 인지기능장애 평가 도구(1년 전과 비교해서 현재 상태에 대한 질문이다)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갱춘기를 견디며 신체적인 노화를 받아들이는 노년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했지만, 인지기능장애는 도외시하고 있었기에 올해 유독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적인 노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생각과 감정의 틈이 힘들게 하는 갱춘기를 견뎌내고 있었는데, 신체 노화와 더불어 인지기능장애까지 겹친다면 노년기는 최악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마음속으로 점수를 주었다. 다음 평가 문항을 읽기가 두려웠다.
함께 평가 문항에 대한 점수를 매기며 자신의 인지기능장애 정도를 평가해 보자. (6점 이상이면 병원에 가야 한다.)
기준: 아니다.(0점), 가끔(조금) 그렇다.(1점), 자주(많이) 그렇다.(2점)
1. 오늘이 몇 월이고, 무슨 요일인지 잘 모른다. - 아니다.(0점) 공직에 있는 관계로 매일 출근하며 월과 요일은 잘 기억하고 있다. 다만, 퇴직한 선배님들을 만나보면 무슨 요일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선배님들 중 일부는 기억 지우개가 작동한 듯하다. 이것이 내 미래 모습이겠지?
2. 자기가 놔둔 물건을 찾지 못한다. - 가끔(조금) 그렇다.(1점) 대수롭지 않게 여긴 물건들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을 못 한다. 특히, 블루투스 이어폰의 경우가 심하다. 운동을 하고 나서 바구니에 잘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필통에서 찾거나 옷 안주머니에서 찾는 빈도수가 많아지고 있다. 이것이 치매인가?
3.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한다. - 아니다.(0점) 상대방이 집중해서 듣지 않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질문해서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편이다. 다만, 동일한 질문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상대방의 대답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술을 마셨을 때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편이라고 한다. 아마 알코올성 치매가 있는 듯하다. 이 질문은 멀쩡한 상태에서 질문하는 것을 말하겠지?
4. 약속을 하고서 잊어버린다. - 가끔(조금) 그렇다.(1점) 가끔 약속을 하고서는 장소를 잘못 찾아가거나 시간이나 날짜를 잘못 알아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주 새까맣게 잊고 있는 경우도 있다. 최근 경험으로는 형의 아들(조카)의 결혼 날짜를 다이어리에 기록해 두고서도 잊고 있었다. 기억 지우개가 발동하지 않게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도 술 약속은 시간과 장소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ㅎㅎ
5.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잊어버리고 그냥 온다. - 가끔(조금) 그렇다.(1점) 점점 빈도수가 늘어난다. 냉장고 앞까지 가서 문을 열었는데 왜 열었는지 기억이 없다. 화장실에 갔다가 찾으려는 물건이 무엇인지 몰라 되돌아 나오는 경우도 많다. 찾으려 했던 물건은 생각했던 자리에 오면 다시 생각이 나서 냉장고와 화장실에 다소 우울한 마음으로 다시 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가끔 우산 찾으러 술집에 갔다가 술만 마시고 우산은 다시 두고 온 경험이 있지 않은가?
6. 물건이나 사람의 이름을 대기가 힘들어 머뭇거린다. - 가끔(조금) 그렇다.(1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할 때 특정인의 모습은 떠오르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아.. 그 있잖아... 음...." 친구가 그때 말한다. "아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친구도 나와 똑같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기억 지우개의 역습을 막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현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래도 마누라와 아들 이름은 잊지 않고 있죠?
7. 대화 중 내용이 이해되지 않아 반복해서 물어본다. - 아니다.(0점) 휴... 다행이다. 아직은 대화에 참여해서 웃고 울며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내 모습이 대견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반복해서 물어보겠지?
8. 길을 잃거나 헤맨 적이 있다. - 아니다.(0점) 술을 마셔도 집은 똑바로 찾아온다. 희한한 일이다. 하지만 아내를 따라 쇼핑할 때는 항상 길을 잃고 헤맨다. 왜 그렇지?
9. 예전에 비해서 계산 능력이 떨어졌다.(예: 물건값이나 거스름돈 계산을 못한다.) - 아니다.(0점) 단순한 계산은 암산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계산은 휴대전화의 계산기 기능이나 최근 AI에 물어보면 즉시 계산을 해준다. 이 평가 문항은 살아오면서 누적된 학습(계산 기능)이 가능한 직군에게 유리하고 그렇지 않은 직군은 불리한 질문이므로 바꾸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난 지금 계산을 제대로 한 후 물건 값을 치를 카드를 제시하고 있는 건가? 상대방을 너무 믿어 계산을 하지 않고 카드를 아무 생각 없이 제시하고 있지는 않나?
10. 예전에 비해 성격이 변했다. - 아니다.(0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아내에게 자주 듣고 있기 때문에 성격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아이를 키울 때는 바쁘고 조급했다. 아이들이 사회인으로 모두 성장하여 분가했기에 조금 여유롭고 너그럽게 변한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아내와 의견이 다를 때도 그대로일까?
11. 이전에 잘 다루던 기구의 사용이 서툴러졌다.(세탁기, 전기밥솥, 경운기 등) - 아니다.(0점) 노년기를 대비하여 가정에서 다루는 가전제품을 더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다만, 못질, 삽질 등과 같은 노동이 들어가는 기구의 사용은 서툴러지고 있다. 도시인이 되어 가는 건가?
12. 예전에 비해 방이나 집안의 정리 정돈을 하지 못한다. - 아니다.(0점) 11번 문항과 동일하다. 노년기를 대비하여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생존 본능에 따라 최선을 다해 집안을 정리 정돈한다. 그래서, 가끔은 귀에 환청이 들린다. "설거지의 완성은 개수대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거야"라는 아내의 목소리 말이다. 당신도 아내의 목소리가 가끔 들리는가? 술 마시고 있을 때 듣지는 않는가?
13. 상황에 맞게 스스로 옷을 선택하여 입지 못한다. - 아니다.(0점) 아직은 상황에 맞게 옷을 입는 편이다. 때로는 억눌렸던 나 자신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롭고 싶을 때를 제외하고는 외출복, 조문복, 축하 의례복 등 상황에 맞춰 옷을 입는다. 하지만, 집에서는 자유롭다. 아무도 없을 때는 팬티 바람으로 집에서 돌아다닌다. 이것도 상황에 맞게 옷을 입는 거겠지?
14. 혼자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목적지에 가기 힘들다.(신체적인 문제로 인한 것은 제외됨) - 아니다.(0점) 2020년에 차를 버렸다. 그 이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네이버 길 찾기는 나와한 몸이 될 정도로 자주 사용한다. 이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써 탄소도 줄이는 효과뿐만 아니라 내 건강도 찾아가고 있다. 대중교통을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이용하고 자가용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목적지가 아닌 낯선 곳에서 하차해도 그 또한 삶의 즐거움 아닐까?
15. 내복이나 옷이 더러워져도 갈아입지 않으려고 한다. - 아니다.(0점) 사회적 체면이 있는 상황이라 옷은 속옷, 겉옷 모두 깔끔하게 입으려 노력하고 있다. 다만, 긴 휴가 기간 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고 똑같은 옷만 입고 생활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귀찮아서 갈아입지 않는 것뿐이다.
내 점수? 4점이다. 휴... 다행이다. 당신은 몇 점인가?
6점 이상이라도 병원에 가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평가 문항의 공통점은 기억이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장애 현상이다. 하지만, 갱춘기를 견뎌내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가끔은 위 1번부터 15번까지처럼 살고 싶은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