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이 글은 2022.9월 작성했습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은 2022년 1월 책을 소개하는 한 영상을 보고 꼭 사서 읽어봐야지 마음먹었다.
'이어령’이라는 이름에 ’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이었나 보다. 설 연휴 전에 책을 사기는 했는데 왠지 모르게 다른 책들에 밀려서 읽을 시기를 놓치고 있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라 불리는 분의 책을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읽어봐야지 다짐한 순간 이어령 선생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직접 뵌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한 생명의 죽음은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김지수 작가가 이어령 선생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암 투병 중으로 힘드신 와중에도 정갈하게 차려입으시고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달해 주시려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죽음은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며, 탄생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의연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책에도 나와 있듯이 인터뷰의 핵심 내용이다. 살면서 죽음을 기억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평소 죽음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살고 있기에 생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담고 있는 책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누구나 태어나고 삶을 살아가다 죽는 것이 당연한데,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춘기였을 때 나, 삶, 죽음 등에 대해 꽤 많은 생각을 한 이후로는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지나갔던 단어였다.
죽음이라는 것이 내게 갑자기 훅 다가온 적이 있다. 20대 중반 친한 친구의 죽음. 심장마비로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난 친구였기에 더 충격이 컸다. 갑자기 허망하게 떠난 친구는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죽을 테지만 아직은 누리고 싶은 삶이 더 많다고, 마지막 인사는 제대로 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암치료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마지막을 살다가신 이어령 선생님과 따님을 보면서 생의 마지막에도 저렇게 의연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내 삶의 마지막이 언제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혼돈과 미련으로 발버둥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지인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이 꽤 들리는 요즘, 계속 보던 사람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그 허망함. 잘해 주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 그런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니 평소에 잘하라는 말도 참 많이 듣고 사는데 그것 또한 왜 그렇게 어려운지. 한 번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인생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다고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도 않다. '죽음'에 대해서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게 정말 많다.
죽음에 관한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어려운 숙제를 내 준 기분이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나 그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 현실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인 것 같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그 과정들이 켜켜이 쌓여 나중에 죽음 앞에서도 미련이 없지 않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해본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한참을 머무른 문장이다. 내가 나로, 나만의 이야기로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없다.
나는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고, 내 의견을 말하기보다 그냥 수용하고 듣는 편에 속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생각하고 그냥 다수 중의 한 명으로 존재하려고 했다. 책에 나온 아흔아홉 마리의 양처럼. 나름 한다고 한 생각도 어른들이 틀에 짜놓은 것을 그대로 답습하려고 했고,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꿈과 직업을 혼동한 채 살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몇 번씩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질문하지 않고 충분한 답을 내리지 않은 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냥 흘려보냈다. 그런 시간이 이어지다 보니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의문이 생겼다.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다움을 찾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살아왔던 지난 세월의 내가 모여서 한꺼번에 터진 시기가 결혼 후 두 아들을 양육하면서이다. 가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치고 우울한 감정은 있었지만, 현대인들은 모두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니 다 그런 거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기간이 조금씩 길어질수록 나도 지치고 주변 사람들도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삶이 아닌데 왜 이러고 있을까 생각하다 무엇이든 해보자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예전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육아서적만 가끔 볼뿐 책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조금씩 읽고, 읽은 책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리뷰를 남겨서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년 정도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렸던 리뷰 기록이 지금은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끼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6년의 시간 동안 절실하게 느꼈기에 공부도 조금씩 하고 있다. 두 아들을 육아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나지 않아 새벽 기상도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보는 중이다. 지금은 캘리그래피를 조금씩 해보고 있는데, 꽤 재미있다.
나를 찾겠다고 3개월 정도 공부에 손을 놓고 책만 조금씩 읽었는데, 답은 나지 않고 게으름만 늘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부지런하게 움직이려고 노력 중이다. 서둘러서 급하게 하려다 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조금은 여유 있게 천천히 하려고 한다. 단기간에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고 나를 부딪쳐보려고 한다. 가끔 힘겨워 숨고 싶고 피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런 시간의 나도 나이기에 자책하지 않고 그 상황의 나를 받아들이면서. 이런 노력이 하나둘 쌓이면 언젠가는 이어령 선생님의 질문에 “네! 저답게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저만의 이야기로 존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한 번 읽은 것으로 그분의 지성에 1퍼센트도 못 미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야기 흐름을 뒤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매우 벅차서 숨을 헐떡거린다.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꺼내어 읽어서 조금이라도 그분의 생각을 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9월에 다시 한번 꺼내 들었다. 여전히 어렵고 숨이 차지만 내게 울림을 주는 책임에는 분명함을 다시 느꼈다.
책으로 이어령 선생님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배울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