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장애인에겐 '희망', 청년에겐 '직업'... 예술로 자립하는 길,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글 ㅣ 최봉혁 칼럼니스트 ㅣ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예술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는가. 재활을 위한 미술치료 과정, 혹은 역경을 극복한 감동적인 개인사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낡은 프레임을 넘어, 장애예술을 한 명의 독립된 직업인이자 우리 사회의 문화 자산을 창조하는 주체로 바라봐야 할 때다.
최근 박수현 의원이 발의한 "장애예술인 지원법" 개정안은 그 중요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전담부서라는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안을 채울 "소프트웨어", 즉 공정한 기회와 접근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단체 중심의 폐쇄적인 지원 구조를 허물고, 누구나 예술가로 성장할 기회를 얻는 개방형 생태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우리가 왜 시스템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는 통계가 냉정하게 보여준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발표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예술인의 월평균 개인 수입은 95만 원에 불과했다. 특히 예술 활동을 통한 수입은 월평균 35만 원으로, 최저생계비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응답자의 60.9%는 지난 1년간 작품 판매 경험이 전무했으며, 창작 활동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창작 및 발표 기회 부족"(55.4%)과 "작품 활동 비용 마련의 어려움"(52.8%)을 꼽았다.
이 통계는 장애예술인 대다수가 예술을 직업으로 영위하지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과 제한된 기회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낸다. 이는 개인의 재능 부족 문제가 아니다. 재능을 발굴하고, 키우고,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통로 자체가 극도로 좁고 막혀 있다는 구조적 문제의 증거다. 특히 많은 발달장애 청년들이 복지관이나 발달지원기관의 미술치료 과정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이지만, 그곳이 종착역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치료와 교육의 과정에서 발견된 재능이 전문적인 작가 양성으로 이어지는 "공정한 다리"가 부재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소중한 지원과 기회가 소수의 특정 단체나 기관에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 사업, 주요 전시회 기회가 몇몇 유명 단체나 그 소속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면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네트워크에 속하지 못한 개인은 소외되기 십상이다. 이는 신진 작가의 등장을 가로막고 장애예술계의 다양성을 해치는 심각한 병폐다.
이러한 폐쇄적인 구조는 기회의 불공정을 낳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본질마저 왜곡할 수 있다. 지원을 받기 위해 특정 단체의 색깔에 맞춰 창작 활동을 하거나, 자율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진정으로 장애예술 생태계의 발전을 원한다면, 이러한 기득권적 구조를 해체하고 누구나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로 평가받고 지원받을 수 있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해결의 실마리는 미국과 같은 해외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장애인차별금지법(ADA)을 기반으로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성을 "권리"로 보장하며, 매우 다양하고 개방적인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 센터(Creative Growth Art Center)"다. 1974년에 설립된 이곳은 발달장애, 정신장애 등을 가진 성인들에게 단순한 치료가 아닌 전문적인 "작업 스튜디오"를 제공한다.
이곳의 핵심 철학은 장애인을 "작가"로 대하는 것이다. 전문 장비와 재료가 갖춰진 환경에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고, 완성된 작품을 갤러리를 통해 판매하며, 수익의 50%를 작가에게 돌려준다. 이곳 출신 작가인 주디스 스콧, 댄 밀러 등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무대에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는 치료실에 머물렀을지 모를 재능이 "열린 시스템"을 통해 세계적인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또한, 케네디 센터 산하의 "VSA(Very Special Arts)"는 특정 단체에 의존하지 않고 전국 단위의 "공모(Open Call)"를 통해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 기회를 제공한다. 연방정부, 주정부, 민간재단의 다원화된 지원은 특정 세력의 독점을 막고 건강한 경쟁을 유도한다. 이처럼 미국 모델의 핵심은 "투명성", "개방성", 그리고 장애인을 "보호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철학에 있다.
이러한 개방형 시스템이 구축될 때, "미술 작가"라는 개념은 장애인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준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청년들에게 예술은 선택지가 부족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재능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매력적인 "개방형 직업"이 된다. 자신의 독창적인 시각을 작품에 담아 세상에 내보이고,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존감의 원천이다.
한편, 사고나 질병으로 삶의 중반에 장애를 갖게 된 중도장애인에게 예술은 무너진 삶을 재건하는 "희망의 동아줄"이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붓을 드는 행위는 자신을 치유하고 내면을 표현하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된다. 예술 창작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아를 되찾고,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예술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며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
박수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충남 공주·부여·청양)이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전담부서 설치를 골자로 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27일 대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