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전남대교수)'장애예술인'으로서의 치열했던 삶과 철학
글 ㅣ 최봉혁 칼럼니스트 ㅣ(사) 지속가능과학회 상임부회장 ㅣ 허진(성곡,전남대학교 교수)가 제20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에서 영예의 대상(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남농 허건의 손자이자 독창적인 현대 한국화의 계보를 잇고 있는 그는, 이번 수상을 통해 화려한 예술가적 이면 뒤에 감춰져 있던 '장애예술인'으로서의 치열했던 삶과 철학을 세상에 드러냈다. 장애인인식개선신문은 허진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의 예술 세계와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먼저 제20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대상(대통령 표창)이라는 큰 상을 받으신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A.미술작업으로는 이런저런 상을 몇 번 받았는데, 장애인이라는 점에 특화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이 상이 저에게, 또 제가 살아온 삶에 어떤 의미인지 여운이 큽니다. 장애인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또 지금까지 제가 미술작업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더 좋은 작가가 되라는 격려로 알고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Q. 수상 소감에서 "먼저 간 아내가 많이 지원해줬는데 이번 수상도 도와준 것 같아 더 생각난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께 아내분은 어떤 존재였으며, 이번 수상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아내는, 흔히 하는 말로, 더 좋은 혼처를 찾을 수 있었는데도 장애가 있는 저와 결혼했으니 보통 용기가 아니었을 겁니다. 1994년에 결혼했는데 202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 27년을 함께 지냈지요. 아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늘에 있는 아내의 보이지 않는 힘에 기대며 지난 4년을 버틴 것 같습니다.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작업도 힘들었을 겁니다. 처가 식구들도 저를 잘 이해하면서 받아주었습니다. 처가 식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Q "장애를 딛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말씀처럼, 장애예술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으신 것이 교수님의 오랜 예술 여정에 어떤 의미를 더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저는 두 살 무렵에 병을 앓다가 그때 먹은 약의 부작용 탓에 청력이 약해졌습니다. 워낙 어릴 때였으니 이후 말을 배우는 것도 힘들었을 테고 그 때문에 아직도 정교한 발음을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에요. ‘내가 운 나쁘게도 남보다 못한 장애를 안고 있구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냥 나인 거죠. 이렇게 태어난 나. 이렇게 되어버린 나.
그림의 세계는 청력이 약한 제가 시각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장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미술이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요. 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미술의 세계로 들어왔고 제가 느낀 것, 그리고 싶은 것을 화폭에 쏟았습니다. 작품을 처음 발표한 때가 1988년이니 이제 37년이 흘렀네요. 저 스스로 장애인이라고 움츠리기보다는 주위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사람들, 이런저런 사건들과 마구 소통하려 노력하며 살아온 것, 그것이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의사소통의 많은 부분이 불완전했겠지만, 이번에 이런 상의 영예를 얻었으니 이것도 일종의 소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2. 예술 세계와 철학 ]
Q '묵시'에서 '유목동물'에 이르기까지 '인간·자연·문명'의 관계를 깊이 탐구해 오셨습니다. 교수님께서 화폭을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인지요?
A. 청년 시절에는 근현대사 인물들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의 치열했던 삶이 강렬하게 와닿았죠. 과거와 현재가 만나 토해내는 외침 같은 것을 인물 형상으로 표현했습니다. 초기작을 보면 그림 속에 시간이 보입니다. 조선시대 벼슬아치의 시간, 동학군의 시간, 서태지의 시간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서로 뒤섞인 채로 지속되는 현재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저는 우리가 겪은 과거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 그 혼융과 폭발 같은 걸 그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점차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탐구하는 쪽으로 관심이 나아갔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런 질문은 초보적으로 보이지만 거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지요. 제가 그린 인간은 앙상한 뼈로 표현된 몸으로 갔다가, 노동시장에 고용되어 헐떡거리는 직장인으로 갔다가, 지금 그리는 ‘동물’ 시리즈에서는 실루엣으로 표현되고 개별화되어 있죠. 저는 어떤 경향성, 대표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늘 이렇게 흘러 다니고, 영향받고, 그러면서도 뭔가를 하려고 애쓰는 인간의 경향성이죠. 그리고 그런 경향성은 우리가 놓인 자연이라는 조건과 맞닿아 있습니다.
Q "전통 한국화의 고답적 엄숙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으셨습니다. 남농 허건 선생의 손자로서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교수님께서 지향하시는 '현대 한국화'의 방향성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가 유명 화가라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목포 할아버지 댁에 가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고 화실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웠죠.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대 진학을 마음먹었는데,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해 동양화 전공을 택하면서 당연히 청년다운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화면을 꽉 채우고 싶었어요. 전통 한국화는 여백을 강조하는데, 저는 비우는 게 아니라 넘치게 하고 싶었죠. 그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크고 작은 패널을 여러 개 짜서 이미지를 그려 넣고 조합했는데, 당시에는 혁신적인 방식이었죠. 소치(小痴)와 남농(南農)은 저에게 친숙한 존재이자 한편으로는 시간 너머의 존재입니다. 제 마음속엔 분명히 동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또 현대 교육을 받고 대학에서 계속 교육자로 일하면서 만들어진 글로벌적인 체계 또한 세워져 있습니다. 그것이 함께 만나며 저에게 작업의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화는 무한히 열려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울림이죠.
Q. 38회의 개인전과 650회 이상의 그룹전을 열며 쉼 없이 활동하셨습니다. 그중 교수님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거나 애착이 가는 작품(혹은 전시)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전시 위주로 설명하겠습니다. 저에게 가장 의미가 큰 것은 첫 번째 개인전 <묵시>입니다. 1990년 미술회관에서 했는데, 지금의 아르코 미술관이죠. 독특한 청년작가가 나타났다는 평을 받으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전시가 힘찬 출발점이 되어 이후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죠. 그다음에 의미가 큰 것은 2011년 성곡미술관에서 한 전시입니다. 제 전시 중 가장 규모가 컸고, 거기서 새 시리즈를 소개했습니다.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시리즈였죠. 이후 지금 하는 작업들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전환점을 이룬 전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3. 교육과 삶, 그리고 미래 ]
Q. 전남대학교에서 오랜 기간 후학을 양성하셨습니다. 교육자로서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시는 철학은 무엇이며, 이 시대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십니까?
A.35년 가까이 교수로 지내는 동안 재주 많은 학생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재주 많은 그 학생들이 다 작가로 활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입니다. 세상과 맞짱 뜨겠다는 투지! 젊다면 그런 게 있어야 합니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저는 ‘기운생동(氣運生動)’을 높이 칩니다. 고대 중국에서 남제(南齊)의 미술가 사혁(謝赫)이 저서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 ‘육법(六法)’ 중 첫째로 ‘기운생동’을 꼽았을 때 그것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쉽게 헤아리기 어려운 작법이었습니다. 시대가 이어지며 이 개념은 동양 회화에서 최고 이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 이렇게 생각해요. 동양 미술뿐 아니라 여타 예술 장르에서도 기운생동은 적용된다는 것이죠.. 그 개념은 작가가 창조한 현묘한 세계로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학생들과 젊은 예술가들에게 한 가지를 강조한다면, 그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Q. "물방울이 계속 떨어져서 커다란 바위를 깨뜨리는 마음"으로 고난과 장벽을 헤쳐왔다고 하셨습니다. 험난한 길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한 교수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A. 예술 활동은 인간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결핍이 있기에 끝까지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죠. 모든 것을 갖췄다면 예술을 할 필요가 없어요. 위대한 예술가들을 보면 아픔, 슬픔, 결핍이 꼭 있더라고요. 고난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열정과 열망이 있기에 예술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Q. "잊혀지지 않는 좋은 작가로 남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과 함께, 대중과 후학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바라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내년에 대규모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하기 전 마지막 해인데요. 그동안 해온 작업을 되돌아보면서 새 작품을 선보이려 합니다. 의미도 크고 책임도 큰 과제이지요. 그러면서 출판물을 만드는 작업도 시도하고 있어요. 저의 일상을 담은 소품 작업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글 작가와 책을 만들어보는 거죠. 2023년에 도록과 비평을 믹스한 형식으로 《HURZINE》을 만들었는데, 신선하다는 평이 많았어요. 여러 아이디어가 있으니까 또 새롭게 해봐야죠.
처음 작품을 발표한 지 37년이 되었고, 교수 생활은 34년이 되었는데, 이 자리에 이렇게 있는 것 자체가 주위 사람들의 아량 덕분입니다. 작품의 기운으로 관람객의 살을 떨리게 하는 작가, 없는 길을 열어 주고 보여 준 선생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