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왜, 그 새벽 경의선에 몸을 실었을까?

10kg, 33일, 1,200km의 걷기

by 보노

2007년 9월의 어느 새벽, 나는 10kg 가까이 나가는 배낭을 메고 경의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선지는 일산 탄현역.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착했다. 통근열차라 좌석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앞에 있는 칸에 올라탔다. 출근 반대 방향이라 그런지 열차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빈자리를 찾아 짐을 풀고 의자에 앉았다. 새벽 늦게까지 뒤척이느라 겨우 두어 시간 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졸리진 않았다. 오히려 머리는 개운했고, 정신은 또렷했다. 도착지인 탄현역까지는 1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지루할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렸겠지만,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었다. 대화를 나눌 동행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왠지 모르게 책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밖에 없었다.

창 밖은 어두컴컴했다. 9월인걸 감안하면 해가 떠 있어야 할 시각이었지만(대략 7시), 어디서도 빛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에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해를 가린 두터운 구름은 좀처럼 지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작부터 흐리다니. 예감이 좋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처럼 어디서든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운에 맡길 수밖에.


2007년 9월, 경의선에서 서울 어딘가


한참 동안 비 걱정을 하다 보니, 어느덧 열차는 탄현역에 멈춰 서고 있었다. 멍하니 내놓았던 정신을 챙기고 배낭을 집어 들었다. 열차 밖으로 나오니, 창밖으로 보았던 하늘이 한층 더 짙어진 것 같았다. 비가 걱정되긴 했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었고, 날씨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소였다. 이제 와서 날씨가 무슨 상관이냐 싶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맑은 하늘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배가 고팠다. 평소에 아침을 챙겨 먹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이른 새벽의 공기를 많이 마신 탓일까? 아니면 평소와 다른 날이라 긴장한 탓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어디 들어갈만한 식당도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에 연 식당이라곤, 24시간 운영하는 분식집이나 해장국 집 정도다. 그마저도 주변에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면 내심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변을 살펴보니 편의점이 눈에 띄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눈에 보이는 데로, 먹고 싶은데로 이것저것 집어 들었다. 체력소모를 가늠할 길이 없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충분히 먹어둬야만 했다.

배도 채웠겠다, 슬슬 시작할 시간이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아마도). 첫날 목적지는 대략 정해뒀지만, 정확히 어디에 묵을지는 정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숙박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해뒀겠지만, 그때는 상황이 달랐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노트북도 가져오지 않았다. 컴퓨터가 없으면 예약은 시도조차 할 수 없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매일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미리 예약해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능력 밖의 일은 운에 맡기면 되는 법. 나중에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일단은 주어진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배낭은 무겁고 날은 흐렸지만, 어쨌든 걸었다.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산책보다는 지각했을 때의 걸음에 가깝게, 그렇게 묵묵히 걸어갔다.

2007년, 스물다섯의 나는 홀로 도보여행을 계획했다. 기간은 대략 한 달. 시작하는 날은 정해졌지만, 끝나는 날은 미정이었다. 대학생의 나는 건축에 뜻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현대 건축과 전통건축을 걸어 다니며 자세히 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유럽 배낭여행이 유행처럼 번져가던 시기였다. 나는 그런 세태에 반기라도 드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걸어보기로 했다. 딱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누구나 하는 일을 따라 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과는 다르게,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국내 도보여행으로 귀결되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왜 걷기였을까? 차를 타고 다녔다면 훨씬 많은 건축물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걷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것 역시 남들과 다른 어떤 경험을 얻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생각하기 위해 걷는 방식을 택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홀로 걷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질 거라 싶었다. 나를 밤잠 설치게 만들었던 고민과 걱정이 걷는 동안 정리되고 사라질 거라 믿었다. 그러나, 33일간, 하루에 40km, 총 1,200km를 걷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힘들어 죽겠다’였다. 인생이 어쩌고 미래가 어쩌고 가 아니라, 해지기 전에 도착해서 푹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가지고 다녔던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제 조금은 익숙해졌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허나 처음 가진 여행의 마음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확실히 현실은 생각과는 다르다. 이제는 오로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여행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어떤 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더라도 반드시 여행은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아무리 빽빽하게 계획을 짜더라도 틀어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은 일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 두면 여행은 더욱 풍성해진다. 나는 걸으며 어떤 고민과 걱정에 대해 생각하고 결론을 내려보려 했다. 하지만, 나는 걷는 순간의 육체적 고통(현재)에만 집중했고,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과 사람, 그리고 우연히 마주한 강렬한 풍경만 각인되어 머릿속에 남겨졌다. 경의선에서 바라보았던 잿빛 하늘, 첫날 묵었던 퀴퀴하고 눅눅했던 여인숙의 모습, 지나가던 누군가가 건넨 따스한 손길, 손에 쥐어준 고구마 같은, 그런 것 말이다.




유럽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유럽에 왔다는 흥분과 놀라움에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댔다. 동행하던 여자 친구(지금의 와이프)는 끊임없이 불평했지만, 굳이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내게 유럽의 건축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바르셀로나에서 두 번째 행선지인 마드리드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여권과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2인조 소매치기에게 보기 좋게 당해버린 것이다. 여행 전에는 절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여겼지만, 그 사람들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절망적이었다. 당장이라도 여행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형편도 아니었다. 우선 대사관을 방문하고, 경찰서에 가서 분실 신고를 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스페인 경찰 두 명과 어설픈 영어로 분실신고를 하는 것은 은근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분명 나는 우울해야 하는데, 그들과 얘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 이후 나는 여행 중 사진 찍기를 그만두었다. 손에서 카메라를 놓고 나니 그제야 옆에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 그때부터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녀는 나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계속해서 사진만 찍어대고, 여자 친구는 계속해서 투덜댔을 것이다. 대화다운 대화 없이 각자 여행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여권과 카메라를 잃어버린 덕에 나는 비로소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그 일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소매치기가 우리를 이어준 셈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기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왜 걷기로 결정했을까? 전국 곳곳을 두 다리로 누비다 보면 어떤 인생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생각했을까? 미래나 연애, 학업과 같은 고민에 어떤 답을 얻을 줄 알았던 걸까?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뭔가 달라져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작할 때 가졌던 질문에 나는 그 어떤 답도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그 오랜 시간을 걸어가며 과거나 미래보다는 걷는 순간, 즉 현재에만 집중했다. 몸 상태가 어떻고 오늘 어디까지 걸어야 하는지. 지도를 보고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어느 방향으로 꺾어야 하는지. 그런 일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과거나 미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하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상기하며 후회한다. 오늘 할 일, 오늘 만날 사람, 오늘 읽을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하루를 낭비한다. 과거와 미래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서, 결국 선 자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을 걱정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 발짝 내딛는 것이다. 현재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한 발짝 발을 내디뎌 보는 것이다. 시작은 어렵다. 하지만, 걷다 보면 익숙해진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어느새 걷고 있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편안해진다. 그렇게 한 걸음씩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듯 오늘 할 일에 묵묵히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다다르는 날이 올 것이다. 물론, 처음 생각과는 조금 달라진 미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