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혼자 하는 여행으로
일주일에 3일은 술을 마시던 대학시절,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던 후배 녀석이 말을 꺼냈다.
“형, 여행은 친한 사람들하고 같이 가야 재밌지 않아?”
그때 나는 여행이란 혼자 가는 거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야, 여행은 혼자 가는 거야.”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녀석이 답했다.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얘기할 사람도 없고. 친구들이랑 같이 가야 재밌지”
맞는 말이었다. 혼자 가는 여행은 외롭고 심심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여행은 그 이상의 무엇이라 생각했다. 내게 여행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다녀오는 것이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고, 뭔가를 얻을 수 있어야 비로소 여행이라 말할 수 있다 생각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녀석에게 말했다.
“얻는 게 있어야 여행이지. 친구들과 놀고 오는 건 여행이 아니야”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그의 저서 <연전연패>에서 여행을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성찰할 수 있고, 깊이 사색할 수 있을 때는 고독에 몸을 맡긴 때입니다. (중략)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이방인으로서의 고독함에 시달리며, 다른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방황하고 망연자실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활로를 찾아내어 어떻게든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여행을 하고 있으면 인간은 생각하게 됩니다. 그 생각은 고독 때문에 더욱 깊어지고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중략) 저에게 여행이란 단지 신체적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한 자아의 발견 과정이었습니다.
20대의 나는 철저하게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고수했다. 여행은 힘들어야 하고 고독해야 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스스로를 깊숙이 들여다 보고, 끊임없이 내면과 대화화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이라 부를 가치도 없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항상 혼자 떠난 것은 아니었다. 가끔 친구들과 여행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즉흥적이었다. 계획하고 떠난 경우는 별로 없었다. 게다가 많아야 한 두 명 정도.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참을 수 없었다. 단체여행은 생각만으로도 피로가 몰려왔다. 혹여라도 단체로 여행할 때면, 출발하는 차(또는 기차)에서 웃고 떠들다가 도착하기도 전에 녹초가 되었다. 어딜 가고, 무얼 먹고, 무얼 할지 논의할 때는 항상 한 발을 빼고 참여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단, 다수의 결정을 따랐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려 했고, 눈치껏 분위기를 맞추었다. 그렇게 눈치를 보다 보니, 여행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방전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러려면 뭐하러 여행 왔나 싶었다. 여행이라기보단 육체적, 정신적 노동에 가까웠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 며칠 동안은 피로 때문에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혼자 떠났다. 혼자 걸었고, 혼자 산에 올랐다. 홀로 독일의 어느 공항에서 노숙했고,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랜 일본 출장에서는 주말만 되면 혼자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발길 닫는 대로 걸어 다녔다. 지나가다 눈에 띄는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 보곤 했다. 공원을 거닐어 보기도 하고, 미술관을 산책했다. 낯선 카페에서 여유로이 커피를 마셨다. 시간도, 장소도, 이동수단도, 오로지 내 기준으로 내 마음대로 정했다.
그러다 가끔,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연한 인연으로 외로움의 갈증은 해소되었다. 지리산 근처를 여행하던 중 영화감독을 꿈꾸던 어느 친구를 만났고, 예정에도 없던 지리산을 함께 올랐다. 도보여행 중 들어간 어느 식당에서는 부모님 또래의 등산객이 점심을 사주셨다. 덤으로 자식 신세한탄도 들려주셨지만... 베를린에 갔을 때는 묵었던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핫하다는 클럽에 다녀왔다.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다. 혼자였다면 시도할 용기조차 없었겠지만, 여럿이 함께하니 거리낄 게 없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프랑스 아저씨와는 노벨상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벨기에행 유로버스에서 만난 페르시안에게서 아랍인과 페르시아 인이 어떻게 다른지 배울 수 있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소중한 인연이 내 여행의 오아시스가 되어 주었다.
아직도 혼자만의 여행이 더 낫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홀로 떠나고 싶다. 그러나 가족이 있고 직장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모두 버리고 혼자서 훌쩍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제는 어딜 가든 가족과 함께다. 이전에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 달갑지 않았지만, 가족과 함께할 때는 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설레고 기다려진다. 물론, 여행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가고 싶은 곳보다는 아이가 즐거워할 만한 곳을 위주로 동선을 짜야하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보다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정해야 한다. 숙소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좋아하는 시설(수영장이나 키즈카페)이 있는지 확인하고 아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재미있고 즐겁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라면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지만, 내 아이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후로 몇 번,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와이프 식구들과 떠났던 코타키나발루, 회사 동료들과 떠났던 제주도와 나짱 등. 여럿이서 떠나는 여행이라니. 처음에는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녀오고 나니 '생각보다 괜찮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20대의 나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는 함께하는 여행은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제는 나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고집부리는 사람에게 관대해지고, 분위기를 맞춰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혼자 떠나지 못하는 사람의 두려움이 이해되었고, 여럿이 떠나도 재미있게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험과 추억을 공유하고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정말 삶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20대의 여행은 오로지 내게만 집중하던 젊은 시절의 내 모습과 닮았다. 그때는 꿈과 미래만 생각하고 주변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모든 여행은 내가 기준이었고 내 의지로만 내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나 이외의 것에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의 먼저 생각하고 모두가 행복할 만한 선택을 했다. 함께하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모두가 즐거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후배와 술잔을 기울이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나는 여행은 이런 것이다라고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혼자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라고 소리 높여 주장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이 바뀐 것처럼, 여행에 대한 정의도 달라졌다. 20대 내게 여행은 혼자 하는 것이었겠지만, 후배에게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혼자만의 여행을 꿈꾼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내게만 집중하며 떠날 수 있는 날을 상상한다. 얼마 전 와이프에게 “회사 그만 두면 혼자 제주도 올레길 투어 할 거야!”라고 선언하듯 말해 버렸다.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던 일이기도 하고, 더 늦으면 아예 시도조차 불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반응을 살피며 살짝 눈치를 봤다. 와이프는 쿨하게 그러라 답해주었다. 참 고맙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