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게 점점 많아진다
2009년 1월의 겨울, 나는 유럽을 여행 중이었다. 옆에는 지금의 와이프가 함께였다. 프랑스에서 만난 우리는,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첫 여행지이자 처음 가보는 스페인이었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이름 모를 몇 개의 도시와 몇 번의 기차 환승 끝에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도착한 바르셀로나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와!!’.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지금껏 상상해본 적 없었던 그 도시에 한눈에 반해버렸다. 건축, 문화, 분위기, 자연환경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100년 넘게 공사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대표로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과 현대적이고 모던한 건축의 집합소였다. 격자 모양의 이 계획도시는 다른 유럽 도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거리 곳곳에는 음악이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어디서든 춤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넓게 펼쳐진 해변, 그리고 따뜻한 기후는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우리 나중에, 바르셀로나에서 살자!!”
누가 먼저 내뱉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살고 싶은 도시 1위로 점찍어버렸다. 첫 행선지였지만, 이렇게 매혹적인 도시를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프랑스, 이탈리아 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완벽한 도시였다. 5일간의 여행은 마치 꿈속 같았다. 정해진 일정과 숙박을 포기할 수 있었더라면, 여행의 전부를 이 도시에 쏟고 싶었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그런 돌발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행선지인 마드리드행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여름의 유럽은 밤 9시가 넘어도 대낮처럼 환하지만, 겨울의 유럽은 한국과 비슷한 시각에 해가 진다. 이미 어둑 컴컴해진 도시엔 인적이 드물었다. 그나마 버스터미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야간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듯했다. 버스 시간은 꽤 남아 있었다. 비행기도 아닌데, 왜 그리 서둘렀는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르셀로나를 좀 더 만끽할걸. 아쉬웠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티켓팅을 완료하고 쉴만한 장소가 없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터미널 1층엔 제법 사람이 많았기에 적당한 자리가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갔다. 비어있는 자리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번잡스러운 1층에 비해 2층은 왠지 모르게 스산했다(이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분위기는 좀 그랬지만 앉아서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한쪽에 짐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짐을 앞에 펼쳐놓고 ‘우리 여행 중이오’라고 티 나게 버스를 기다리는데, 20대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옆에 자판기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영어를 잘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분명 이렇게 말한 것 같았다. 이렇게 티 나는 여행자에게 왜 그런 걸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내가 어떻게 알아?’. 의아하게 생각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몰라.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야?”
이후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대화는 계속 이런 식이 었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겨우 내게서 떠나갔다. 그러고는 왜 나한테 그런 질문을 했을까 한참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 친구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옆에 잠깐 앉았다 떠난 사람이 생각났다.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황급히 가지고 있던 짐을 확인해보았다. 분명히 7개야 할 짐이 6개로 줄어 있었다.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게다가 여권과 각종 비싼 전자기기가 들어있던 작은 백팩이었다. 카메라, 외장하드, MP3 등 내가 소유했던 가장 비싼 것들이 모두 그 속에 들어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기에 늦은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여자 친구를 혼자 내버려 둔 채 터미널 곳곳을 뛰어다녔다.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잡히기만 하면 바로 주먹이라도 날려버릴 기세였다. 그렇게 한 참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터미널 2층 한쪽 구석을 지날 때였다. 딱 봐도 노숙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어딘가에서 튀어나오더니 내 앞을 막아섰다. 음? 다급해 죽겠는데 뭐하나 싶었다. 그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찾더니 이내 나를 향해 꺼내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머니 칼.
상황이 달랐다면, 몸을 사리고 돈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내 몸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칼이고 뭐고 눈에 보이지 않았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뜸 주먹을 날리고 꺼지라고 한국어로 욕을 지껄였다. 기대와 다른 내 기세에 놀랐는지, 움찔하며 칼을 도로 집어넣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이후에도 10여분 간 동안 터미널을 헤집고 다녔지만,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혼자 남겨둔 일행이 떠올랐다. 급히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다행히 여자 친구는 혼자 잘 버티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체념하듯 자리에 앉아 잊어버린 물건에 대한 후회와 분노를 삭이며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그것은 분명 칼이었다. 나를 찌를 수도 있는 뾰족한 칼이었다. 나를 향한 칼과 내 안의 분노. 아무리 화가 났지만, 칼날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나를 향해 휘두를 수 있었다. 가방을 도둑맞았다는 생각에 눈 앞에 보이는 게 없었고, ‘겁’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직도 눈 앞에 그려질 만큼 선명하게 기억한다. 과연 지금의 나라면 어땠을까? 분노에 욕을 지껄이며 주먹을 날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하겠지. 지금의 나는 그때와 많이 다르니까.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겁이 많아졌다. 나이 든 만큼 겁이 많아진다는 속설 때문일까. 갈수록 소심해진다. 몸을 사리고 마음을 사린다.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않으며, 안전한 일만 택한다. 훈장처럼 얘기하던 밤샘 작업과 아침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버티기도 힘들어졌다.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알약 5개를 입에 털어놓고, 그렇게 싫어하던 한약을 빼먹지 않고 복용한다. 몸에 좋다면 우선 먹고 본다. 맛은 일단 제쳐둔다. ‘내가 잘못되면 어쩌지?’ 같은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고, 온갖 무서운 상상과 불안한 장면을 수시로 떠올린다. 별의별 걱정을 다하고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이 겁의 원인은 무엇일까? 소멸의 대한 막연한 불안함일까? 의식이 흐려지고, 기억해야 할 것이 생각나지 않으며, 천천히 피 흘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무서워 그런 걸까? 죽어가는 것이 두렵긴 하지만, 이 겁의 원인이 죽음이라는 그 현상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죽음은 자신의 일이기도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 더 크다. 특히 사고나 병과 같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은 더 잔인하다. 그래서 겁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겁의 크기가 점점 커져간다. 만약 누군가의 칼날이 또다시 나를 향한다면, 나는 가장 먼저 가족을 생각하고 어떻게든 살려고 발악할 것 같다. 마치, 어린 자식과 노모가 있으니 제발 자기를 죽이지 말라던 영화 속 어떤 사람의 울먹임처럼.
이제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