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카메라 없이 여행할 수 있을까?

프레임을 벗어나 온몸으로 체감하는 여행

by 보노

사진은 더 이상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3살 아이부터 시작해서 70 넘은 노인들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버튼(더 이상 셔터는 없다)을 눌러댄다. 딸아이가 스마트폰으로 가장 먼저 배운 것도 바로 사진 찍는 법이었다. 시간, 장소도 상관없다.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만 꺼내 들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 지워버리면 그만이니까.

사진이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일 때, 사진은 곧 돈이었다.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가 있어야 했고, 필름을 사야 했다. 필름을 하나 사더라도 찍을 수 있는 사진은 고작 18~36장 정도. 지금은 18컷 찍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겠지만, 그때는 만만치 않은 필름 가격 때문에 셔터 한 번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구도를 바꿔보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셔터를 눌러도 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현상이라는 다음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결과물이 손에 들어왔다.

지금은 다르다. 사진 찍는 행위에 어떠한 망설임도 없다. 많이 찍어서 하나라도 건지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튼(더 이상 셔터가 아니다)을 마구 눌러댄다. 찍고, 확인하고, 맘에 안 들면 고민 없이 삭제 버튼을 누른다. 어차피 기록되는 사진은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정보기 때문에, 저장 용량만 충분하다면 공짜나 다름없다. 클라우드를 사용하더라도, 매달 커피 한 잔 가격이면 수 만장의 사진을 저장할 수 있다.




언젠가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할 때였다. 숙소에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2차로 술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5~6명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중 한 명이 유독 뒤쳐지고 있었다. 왜 그런가 싶어 뒤돌아 보았더니, 그분은 잠시도 쉬지 않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길이라도 잃으면 안 될 것 같아 다가가서 물었다.

“사진 너무 많이 찍는 거 아니에요?”

“응, 다시 못 올 것 같아서.”

“몇 장이나 찍으셨어요?”

“20,000장 정도 찍은 것 같아”

2주 여행하는 일정에 찍은 사진은 무려 2만 장이 넘는다 했다. 충격이었다. 14일 동안 2만 장이면, 대충 계산해도 하루에 1,400장. 하루에 7시간 꼬박 여행한다고 가정하면 18초에 한 번 셔터를 눌러야 한다. 세상에, 18 초라니. 하루에 백 장도 채 찍지 못하는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숫자였다. 그렇게 찍어대면, 손가락에 마비가 오지 않을까? 정리는 어떻게 할까? 일일이 한 장씩 살펴보며 폴더를 만들고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을까? 그 많은 사진을 정리할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아마 나라면, 어딘가 방치해두고 몇 년 동안 꺼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행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평소와 다른 특별한 곳에서의 경험이기에, 누구나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시 못 올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꺼내 들면, 오히려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못한다. 온몸으로 느끼고 기억해도 모자랄 판에 조그맣고 갑갑한 뷰파인더(또는 스크린)로 세상을 바라보다니. 사진을 아무리 잘 찍는다 하더라도 사진으로 순간을 담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아무리 비싼 렌즈를 쓰고, 좋은 카메라를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 장소에 대한 기억은 사각의 이미지에 담기는 것이 아니다. 손에 닿는 감촉, 코 끝으로 전해지는 상쾌함, 바람소리, 따스한 햇살 같은 온몸의 감각이 더해져야 비로소 머릿속에 각인된다.

언젠가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그 벅차오름을 기억하고 싶어 카메라를 꺼내 든 적 있었다. 내가 보았던, 그 벅찬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구도를 바꿔보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보았다. 광각렌즈를 끼워보기도 하고, 파노라마 기능도 써보았다. 하지만, 프레임에 담긴 이미지는 내가 보고 느꼈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답답한 풍경만이 사각의 스크린에 담겨 있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사진 찍는데 허비할 수 없었다. 그곳의 풍광을 온몸의 감각으로 직접 느끼고 기억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가방에 도로 집어넣어버렸다.


아무리 잘 찍어봐야 사진은 사진일 뿐, 그날의 기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쉼 없이 셔터를 눌러대었던 바르셀로나의 나는,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을 볼 수 있었다. 눈 앞의 풍경, 옆에 있는 사람, 그리고 발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바닥의 감촉 등. 여행으로 얻어야 할 모든 것은 전부 카메라 밖에 있었다. 뷰파인더에 보이는 세상에 갇혀서 눈 앞의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특별한 그 순간을 놓치는 것과 같다. 기억에서 사라질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카메라를 들어보지만, 정작 기록한 이미지는 하드디스크에 쌓여 두 번 다시 꺼내보지 않는다.

나는 카메라 없는 여행을 꿈꾼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체감하고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여행. 언제가 그런 여행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