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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뾲파의 휴직일기 ep.08] 초심

간절했던 그때,

by 뾲파

지난 주말, 아내 사촌의 결혼식을 가느라 뾲뾲이를 부모님께 맡겼다.


실로 오랜만에 자유를 느꼈다.

늘 뒷좌석 카시트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낯설고, 설렜다.


오랜만에 차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뾲뾱이가 우리에게 오기 전의 날들이 생각났다.

아니, 사실은 '그리워졌다'는 편이 더 가깝다.


그리고 또 문득, 내가 초심을 잃었나, 생각했다.

이토록 소중한 일상인데.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순간인데.


나는 111일 차 육아 아빠다.

그리고 나는, 육아 휴직 중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겐 필연적으로 금요일 밤이 설렌다.

금요일 밤에 뭐 하지, 주말에 어디 가지, 이번 주말엔 영화나 드라마를 정주행 해볼까.


우리도 그랬다.

금요일 밤엔 괜히 집 앞 번화가를 향했다.

외식을 하고, 후식을 먹고, 영화관을 기웃거렸다.

그래서 금요일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지금도 금요일 저녁.

지금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하나 있긴 하다.

아이 재운 후 누리는 육퇴.

이 기다림도 소중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잔잔하다.


그래서 그때가 그리워졌다.

둘이서만 누렸던 온전한 휴식,

둘이서만 걸었던 집 앞 공원 산책길,

주말을 기다리며 설렜던 감정,

주말 데이트 코스를 그리며 했던 행복한 고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하는 밤마실, 그때의 공기, 자유.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


그러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졌다.

지금은, 그때의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순간이므로.

너무 간절해서 눈물 날 정도로 바라고, 또 바랐던 '언젠가'이므로.

문득 내가 초심을 잊고 지냈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궁경부무력증 이라는 진단을 받은 아내는 다소 힘겨운 임신 기간을 보냈다.

내내 노심초사했다.

행동 하나에도 행여 아내에게 영향이 가진 않을까,

또 그 영향이 아이에게 미치진 않을까.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약 16주, 네 달여 동안 긴장을 하다 보니 우린

지치고 피로했다.

그래서 간절했다.


제발, 최대한 늦게 태어나다오.

제발, 응급 상황엔 대형병원에서 우리를 받아다오.

제발, 무사히 태어나기만 해 다오.

제발, 산모가 건강해다오.


간절함이 통했을까.

뾲뾱이는 건강하게 우리에게 다가왔고,

아내는 건강하게 회복했다.


이후 여건 상 육아휴직이 간절한 때엔

제발 휴직 신청을 큰 이슈 없이 할 수 있게 해 다오, 하고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이 역시 그대로 행해졌다.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일들이 하나, 하나 이뤄져

소중한 일상이 됐다.

감사한 일상이 됐다.


근데 요즘 잠이 부족하다 보니,

전보다 제약과 힘듦이 늘다 보니,

전보다 힘이 부치다 보니

이 소중하고 감사한 일상을 잠시 잊었나 보다.


부끄러워졌다.

초심을 찾아야겠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고 생각했다.

오늘은, 어제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 일 테니.




올해의 첫날, 우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코로나19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우리에게 그곳이 신혼여행지였다.

출산 전 마지막 해외 여행지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의 한 작은 카페에서 우리는 올해 계획을 세웠다.

운동과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하고자 다짐했지만

무엇보다 '뾲뾲이 낳아 건강하게 잘 키우기'가 핵심이었다.


그리고 계획 세우기의 끝자락에서 우린 올해의 노래를 정해 보기로 했다.

음악 스트리밍 어플에서 무작위(셔플)로

몇 번째 노래를 틀어, 해당 노래를 올해의 노래로 선정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정은지(Duet 10cm)의 '같이 걸어요' 다.


올해가 두 달 여 남은 지금

우린 다행히도 꽤 사이좋게, 도란도란, 육아의 길을 같이 걷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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