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냐. 우리는 와이프 혼자도 잘 키웠어.
사회면에 나오는 기사 내용 같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들은 이야기다.
나는 51일 차 육아 아빠다.
나는 남성 비율이 90%에 육박하는 프로스포츠 구단에서,
기자들과 잦은 술자리를 갖고 스폰서 영업을 하러 뛰어다닌,
다소 거칠게 자란 홍보맨이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과감히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육아휴직 급여를 받고 있는 남성은 약 3만 5천 명, 전체의 28%에 불과하다. 점점 많은 아빠들이 휴직 후 함께 육아를 하고 있지만, 아직 휴직을 신청한 육아 아빠는 3분의 1이 채 안 된다.
개인의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내가 겪은, 그리고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해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모 언론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남성 노동자 1,720명 중 29%만이 '남성도 언제든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답했고, 이런 분위기의 배경에는 '인사고과, 승진 등 직장 생활에 발생할 불이익에 대한 우려(27.4%)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들 하지만, 아직 엄빠 둘이서 함께 키우는 것조차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
나의 2024년 상반기의 콘셉트는 '눈치'였다.
우리 부부는 장거리 커플이었고, 결혼 후에도 주말 부부였다. 그러다 보니 식구가 느는 것은 아직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작년 말, 뜻하지 않게 아내의 임신 소식을 접했다. 나의 첫 감정은,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이었다.
아내가 있는 비수도권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가, 내가 있는 수도권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가, 출산휴가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아내의 출산휴가 이후 복직을 할 때는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하는가 등 소중한 생명 소식에 대한 기쁨도 잠시, 걱정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휴직을 하면 어떨까?'
조심스레 육아휴직을 생각해 봤다.
이튿날 출근 후 우리 팀 과장님을 불렀다.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과장님, 저 아이가 생겼습니다"
"정말? 축하해"
"그런데..."
"응?"
"우리 회사에서 육아휴직 쓴 사람이 있을까요?"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 적은 없을걸?"
"저는 한 번 써보려는데..."
"남자가? 육아휴직?"
"힘들겠죠?"
"너의 선택이지만, 우리는 와이프 혼자도 잘 키웠어"
세대가 다른 부장, 차장에겐 예상 가능한 무드였다. 그런데 세대가 비교적 비슷한 과장님도 '사내 분위기가 걱정된다'고 말하니 문득 자신감이 떨어졌다.
퇴근 후 아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놨다.
아내는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며 나를 위로했다.
동시에 분명히 보였다.
아내의 눈이 흔들린 것을.
당연했다. 아내도, 나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인데, 계획마저 불투명하니 말이다.
소셜미디어에도, 육아 서적에도 육아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나와있었다. 아버지의 육아가 성장기 아이의 뇌 발달과 사회성에도 큰 영향 미친다고. 아이가 생긴 이상 정말 최선을 다해 잘 키우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가 너무 걱정하고 있었다.
사회가 바뀌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옳고 그름의 기준도 과거에 비해 상당수 바뀌었다.
가정에 충실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것이 없다고, 속으로 결론지었다. 그래.
이후 회사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고충을 털어놨다.
상황이, 내가 휴직을 쓰지 않으면 힘들다고.
휴직은 처음이라, 걱정된다고.
저마다 걱정 어린 위로와 함께 힘내라고 했다. 힘내라고만. 그들도 겪어보지 못했으리라.
보편적 권리이자 노동법상엔 육아휴직 제도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도의적인 것이 가장 크게 걸렸다. 대부분은 본인이 겪지 못한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갖기 마련이므로.
특히 시즌 중 무척 긴박하게 돌아가는, 그리고 규모가 작은 프로스포츠 구단의 특성상 휴직 대체 인력을 뽑는 것도 부담이 되리라. 최근까지도 사내에서 육아휴직이 없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나는 점점 팀장님, 부장님에게도 언제 이야기를 해야 하나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