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계가 서로를 마주 볼 때
“자, 이제 우리는 이번 투어의 마지막이자 가장 깊은 심장부로 들어갑니다. 시스티나 성당입니다.”
준오가 깃발을 낮게 낮추며 일행을 좁은 통로로 안내했다. 통로 끝에서 불어오는 공기는 이전의 회랑들과는 달리 고요하고도 엄숙했다. 준오는 입구 앞에서 멈춰 서서 수신기를 통해 마지막 속삭임을 건넸다.
“안에서는 절대 정숙하셔야 합니다.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고요. 제가 아까 밖에서 드린 설명, 기억하시죠? 아담과 신의 그 간극을 꼭 확인해 보세요. 신이 내미는 손길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손가락을 펴서 그 간극을 메우려는 아담의 의지라는 걸 생각하시고요. 그리고 천장화를 계속 바라보다 보면 목이 너무 아프실 수 있으니 양 쪽에 설치된 의자에 앉으셔서 천천히 천장화를 바라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성당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희수는 숨을 들이켰다. 수백 명의 인파가 내뿜는 미세한 숨소리만이 공명하는 거대한 침묵의 공간.
그 공간 속에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자, 화집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서사가 희수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희수는 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아담의 창조’를 찾았다. 저 높은 곳에서도 신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고, 아담은 나른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그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경이로운 광경 앞에서 희수는 지난 7년, 광고 기획자로서 스스로를 갈아 넣어 일궈냈던 인생 프로젝트의 파편들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글로벌 IT 기업의 브랜드 철학을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희수가 밤을 지새우며 설계했던 <The Human Connection: 미완의 조화>는 그녀가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희수에게 단순하게 주어진 업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공모전 상금과 여러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보태며 버텼던 그녀가 업계 1위인 성운기획에서 살아남는 법은, 그 누구도 빈틈을 찾아낼 수 없는 압도적인 퀄리티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뿐이었다.
본부장은 이번 프로젝트만 성공시킨다면 그동안의 희수의 노력을 보상해 주겠다며 최연소 팀장 자리를 약속했다. 그것은 가난과 결핍으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를 씻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희수에게 이 프로젝트가 더 절박한 이유는 바로 민석의 어머니였다.
민석과의 만남은 완강히 반대하는 그녀에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보잘것없는 집안 배경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능력과 지성으로 일궈낸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이라면 민석의 어머니 앞에서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희수에게 이 프로젝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기 위해 뻗었던 희수의 간절한 손짓이었던 셈이었다.
하지만 민석은 그 간절함을 비웃듯 희수가 설계한 전략 로직과 이미지 보드를 그대로 복제해 본부장에게 단독 보고했다. 이를 알게 된 희수가 본부장을 찾아 갔을 때, 돌아온 것은 그의 차가운 냉소였다.
“강희수 씨, 증거 있어요? 김대리가 제출한 로그 기록 보니까 강희수 씨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던데. 오히려 강희수 씨가 김대리 자료에 손댄 거 아니야? 회사에 분란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나가.”
이미 본부장과 민석은 한통속이었다. 광고주인 대기업 오너 일가의 조카와 혼담이 오가던 민석을 밀어주기 위해, 회사는 희수의 7년을 지워버리고, 그녀를 아이디어 도둑으로 몰아세웠다. 희수가 믿었던 사랑과 충성했던 조직은 처음부터 이 회사에 희수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그녀를 말끔하게 지워냈다.
시스티나 성당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희수는 깨달았다. 민석과 본부장은 기획서의 텍스트와 레이아웃을 그녀에게 훔쳐 갔을지언정, 그 로직을 탄생시키기 위해 겪었던 지독한 전율과 그녀의 스토리까지는 훔쳐가지 못했다는 것을.
준오가 밖에서 설명했던 “인간이 스스로 손가락을 펴야 완성되는 구원”이라는 말은, 사실 희수가 이 프로젝트의 첫 줄에 적어 두었던 핵심 카피의 의도였다. 낯선 가이드의 입을 통해 자신의 가장 깊은 진심을 마주한 순간, 희수는 비로소 깨달았다. 타인에 의해 강탈당한 결과물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의 본질은 여전히 자신의 손끝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 서슬 퍼런 침묵 속에서 희수는 처음으로 민석이라는 이름을 자신에게서 밀어냈다.
성 베드로 광장의 눈부신 햇살 아래서 투어가 끝났다. 준오는 깃발을 정리하며 공식적인 투어의 종료를 알렸다. “혼자 여행 중에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동갑내기 한국인 친구 하나 로마에 뒀다고 생각하시고요”
광장의 많은 인파들의 이야기 속에 흩어지는 준오가 건넨 한 마디는 어쩌면 7년 전, 교수의 배신으로 한국을 등지고 로마 공항에 홀로 내렸던 준오 자신에게 누군가 건네주길 바랐던 간절한 구원의 요청이었다. 한국에서 미대 재학 시절, 준오는 무형문화재급 소목장이었던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박 교수를 누구보다 믿었다. 준오의 집안은 대대로 전통 가구 사업을 하며 남부러울 것 없는 부를 일궜지만 준오에게 가장 큰 자산은 아버지의 정직한 나무 결을 닮은 신뢰였다. 그러나 준오가 밤을 지새우며 연구한 전통 안료 배합 방법을 박 교수가 자신의 특허로 가로챘고, 그 배신의 충격으로 아버지는 미완성 서안(書案) 앞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이 모두 자신의 탓인 것 같다는 생각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남겨두고 이탈리아로 도망치듯 유학을 선택했다.
그렇게 낡고 부서진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복원사가 되고 싶었던 준오는 오늘, 보풀이 일어난 베이지색 코트를 걸치고 성벽처럼 굳게 닫혀 있던 희수의 눈동자 너머에서 7년 전 자신의 무너진 세계를 마주했다.
투어 일행들이 흩어지는 광장의 소란 속에서 준오는 한참 동안 희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1월의 로마 햇살은 눈부셨지만, 그 아래 서 있는 희수의 그림자는 짙고도 길었다. 준오는 카카오톡 창을 열어 어제 투어 안내를 위해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대화방을 확인했다. 동갑내기 친구라는 수식어는 사실 준오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유일한 위로의 통로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