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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Jul 13. 2024

세부 플랜테이션 베이에서 하루 살기

필리핀 세부 여행기 (3)

  SNS나 여러 매체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삶이 유독 부각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사람들의 생활반경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불안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다른 감염으로 이어질까 봐 조심스러웠다. 이후 일상생활이 회복되면서 갇혀있던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소하려는 듯이 소비심리가 불타올랐다. 풀빌라를 빌려 화려하게 놀기도 하고, 말만 들어도 입이 쩍 벌어지는 비싼 집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 최고급 물품들을 구입해서 언박싱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며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행복이라는 것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걸까 싶기도 할 만큼 질투도 나고 내가 처한 현실과 괴리감이 심했기에 허탈함과 공허함도 커졌다.


   다행히 나는 이런 나의 상태를 전보다 비교적 빨리 알아차리고 그런 컨텐츠를 올리는 사람들을 차단시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낮춰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은 오랜 기간의 상담과 책 속의 지혜를 통해 마음을 다듬은 효과였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면 내가 정말로 행복할까?', '그들의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가슴 아픈 일이 있을 수 있다' 등의 생각으로 내 마음을 지켜나갔다. 어찌 보면 합리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우선이지 않은가? 몇 차례 마음 앓이를 하고 나서야 그런 부류들의 생활을 보고도 '저건 저들의 삶, 나는 나의 삶을 산다'라고 생각하며 덤덤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필리핀 여행에서 내 기준으로는 제법 호화로운 숙소에서 놀고 보니 생각이 잠깐, 아주 잠깐 바뀌었다. 돈이 있으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낼 기회가 많긴 하다는 생각으로.


  호핑 투어 장소로 갈 때 운전기사로 오신 현지인분과 나눈 짧은 대화가 생각난다. 그분은 우리가 신청해서 다니고 있는 코스의 장소들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갔던 식당이나 스노클링에 돈을 쓸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고 했다. 정작 가장 가까이에서 투어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이런 신나는 경험에 공감하지 못하는 듯하게 무덤덤한 이유가 이런 것이었나 싶었다. 나도 이렇게 큰돈을 한 번의 여행에 쓰는 게 처음이라 떨리기도 했지만 쓴 만큼의 행복은 돌아오는 것 같았다. 세속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내가 느낀 게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다.

 



  숙소 바로 옆이 해변가이면서 일출을 볼 수 있는 방향이라서 새벽에 눈을 뜨고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우연히 바로 옆 방에 묵고 있는 남자 후배(H)도 같이 깨서 일출을 보러 나왔길래 같이 가기로 했다. 허리가 쑤시긴 했지만 붉게 타오르는 해수면을 보는 것이 사람의 손 때가 묻지 않은 자연이 보여주는 최고의 멋이었기에 그 순수함과 경이로움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봤다.


세부에서의 일출 구경

  그 시간을 이런 펑화로운 광경을 보는 것으로 채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해는 점점 떠오르고 붉었던 세상이 자기의 색깔을 되찾아갔다. 일행들은 오늘 숙소에서 하루종일 물놀이를 하는 것에 들떠있었다. 나는 허리 때문에 근처 그늘에서 쉬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쉽지만 더 악화되면 다음날 있을 시티투어를 소화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조심하기로 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전에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자기 바빴던 여자친구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노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체력이 약해서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던 여자친구는 정말 행복하게, 재밌게 물속을 헤엄치면서 놀았다. 후배 부부들도 여자친구와 함께 민물 수영장에서 놀았다가 일출을 봤던 얕은 바닷가로 이동해서 물고기를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등이 새까맣게 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이 정도 체력이 다들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몇 시간을 물속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해변가 의자에 누워서 높이 솟아오르는 햇빛의 뜨거움을 피하면서 적당히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방에서 잠시 잠으로 기절했다가 숙소 내 게임방에서 포켓볼도 쳐보고 총 쏘는 게임, 오토바이 게임 등을 두루 섭렵하고 저녁까지 해결하고 돌아왔다.


  사실 저녁 먹을 때부터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앉아 있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밥 먹는 내내 통증으로 인해 얼굴을 찡그리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쓰느라 등에 식은땀이 났다. 아름다운 숙소의 마무리를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망치기 싫어서 조심스러웠다. 식당에서 나왔을 때 통증이 절정에 달해서 이후에 산책을 하려던 일행들에게 아파서 쉬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분위기가 좋았는데 나의 아픔에 모든 관심이 쏠리며 여행의 즐거움을 분산시킨 것 같아 미안함이 솟구쳐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일 일정에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파스도 붙이고 다음날 체크아웃 전까지 푹 쉬기로 했다. 방에 돌아온 나는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필리핀 세부 여행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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