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푸름 Jul 02. 2024

필리핀에서 조식 그리고 호핑투어

필리핀 세부 여행기 (2)

  공허한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 때문일까, 도로변에서 잔 탓에 아침부터 부릉 거리는 차량 소리 때문이었을까. 새벽에 숙소를 도착해서 잤음에도 새벽 6시에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필리핀과 한국은 시차가 1시간 밖에 차이가 안 나서 시차적응할 필요가 없었다. 늘 일어나던 시간에 제대로 눈이 떠졌다는 것은 그만큼 질 좋은 수면을 취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일어나서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달리는 것을 창문 너머로 구경하고 숙소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다가 잠에 곯아떨어진 여자친구를 두고 조식을 먹으러 홀로 나갔다. 1층 로비 뒷문으로 나가서 안쪽으로 난 긴 콘크리트 벽을 따라가니 숙소 건물과는 독립된 식사 공간이 나왔다. 조식이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서 가서인지 앉을자리는 충분했다. 조식 메뉴는 개인적인 입맛으로 볼 때 간이 세지 않아서 (양적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을 떠나 먼 타지에서 혼자 먹는 첫 끼니였다. 딱히 외국어를 유창하게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밥만 먹고 있을 뿐이었지만 평소 쉽게 해 볼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의 순간은 짜릿하다.


엘로이사 로얄 스위트에서의 조식


  보통이라면 아침을 챙겨 먹지 않는 내가 여행에서 조식에 유독 꽂히는 이유는 아마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루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출근하면서 배고파한 적도 거의 없고 아침을 안 먹는다고 일하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 여행지 숙소에 가게 되면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식 장소로 향한다. 가는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만약 여행 온 날이 평일이라면 출근시간에 준비 안 한 부스스한 모습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주말이라면 남들이 평일에 못 잔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려는 시간이기에 식기에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외에는 고요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내 삶이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행에서 느끼는 이런 일상의 작은 어긋남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평범한 일상에 갇혀있던 자유가 그 틈 사이로 터져 나오면서 해방감과 함께 엔도르핀이 온몸 구석구석을 돈다. 조식 하나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이다.


  나보다 늦게 일어나 혼자 조식 먹으러 가기 아쉬워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두 번째 조식을 먹고 나서 호핑투어 일정을 시작했다. 예약해 놓은 호핑투어 업체 측에서 숙소 앞으로 현지 운전기사님을 보내주셔서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필리핀은 에어컨의 유무에 따라 여행의 만족도가 달랐다. 특히나 몸에 열이 많은 나로서는 시원한 바람 앞에서 제대로 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숙소나 투어업체에서 제공하는 픽업&드롭 서비스는 굉장히 고마웠다. 늦은 아침을 먹고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호핑 투어업체 사무실에 도착했다. 짐을 정리하고 바다 근처 뭍에서 우리와 같은 시간에 투어를 신청한 다른 팀들과 작은 배를 타고 호핑 투어를 제대로 즐길 큰 배로 옮겨 탔다. 한국인 사장님 한 분과 현지 스태프들 열 몇 명이 오늘 여러분들의 일정을 책임진다며 각자 소개를 하는데 다들 기본적으로 흥이 넘치고 끼도 많아 보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호핑투어 현지 스태프들. 수많은 K-POP 댄스를 외우고 있었다.


  호핑투어 예약 전, 투어 후기를 보면서 내성적인 내가 외향적인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무척 걱정이 되었다. (찾아본 후기 중에는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없었지만) 저 스태프들이 춤추다가 흥이 올라서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배 앞으로 끌고 나가 무대에 서게 하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다행히 스태프 분들은 자신들의 영역, 배 앞에서만 신나게 놀고 우리가 앉아서 보고 있는 배 옆 가장자리까지 넘어와서 자신들의 넘치는 활력을 억지로 전달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한정으로 제공되는 맥주와 여러 안주거리를 먹다 보면 스노클링 장소에 도착했다.


  허리가 아픈 상황이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물에 들어가 보지도 않는 건 이번 해외여행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물속에 들어가니 허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물에 들어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옛날에 일본에 갔다가 워터파크에서 물에 가라앉을 뻔한 적이 있어서 물에 대해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그걸 잊어버릴 만큼 스노클링은 재밌었다. 안전요원같이 팀마다 배정되어 바다 여기저기를 앞장서서 이끌어준 스태프들이 장난도 쳐주고 물속에서 부릴 수 있는 쉬운 재주들을 가르쳐주면서 재미는 배가 되었다. 


호핑투어에서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이 스태프들이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준다.


  1차 스노클링 시간이 마무리될 무렵 어느샌가 모여든 작은 해파리에 쏘인 사람들이 발생하면서 빠르게 배에 탑승하기 위해 배 난간을 잡고 몸을 솟구쳐 올리는 순간 깨달았다. 걱정 없이 물놀이를 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물 먹은 옷들이 무게감이 더하면서 허리에 무리를 더했는지 통증이 심해져서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다. 선상에서 주는 라면을 먹고 배를 채우는 것으로 나의 호핑투어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후 진행된 투어 일정은 참여하지 못하고 배에서 계속 누워있었다. 모두가 즐거운 여행을 만끽하고 있는데 정작 그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는 심정도 답답했지만 그보다 바쁘게 즐겨도 모자랄 시간에 함께 여행 온 친구들에게 안 좋은 분위기를 끼얹은 것 같아서 미안함이 컸다.


  무사히 일정을 소화하고 투어에서 준비한 저녁과 마시지까지 받은 후 플랜테이션 베이로 이동했다. 늦은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숙소까지 드롭해 준 차량에서 내리자 더운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체크인 후 버기(리조트 내 이동차량)를 타고 우리가 묵을 숙소에 도착해서 방 내부 모습을 보고 제대로 방을 잡았구나 생각했다. 생각하고 있던 2인실 방 크기보다 훨씬 넓었고 방 바로 앞에 수영장도 있어서 실컷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1층에 위치한 숙소에는 벌레가 자주 등장한다는 말도 들어서 벌레퇴치약을 사 왔는데 숙소에 있는 기간 내내 그들을 볼 수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에어컨부터 틀고 캐리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놀고 나면 뒤처리할 것들이 많지만 여행이니까 모든 것을 감수하고 즐길 수 있었다. 업무나 공부가 아닌 휴식으로 하루를 꽉 채운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음 날은 다른 곳으로 이동 없이 플랜테이션 베이 내에서 하루종일 보내기로 했다. 벌써 여행의 반절을 지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놀면 지겨울 줄 알았는데 더 놀고 싶어졌다. 필리핀에서의 휴가가 끝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고민되기 시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