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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Aug 19. 2024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이사

봉사활동 일지

  주말에 시 외곽에서 홀로 지내시다가 사망하신 분의 집을 정리하는 봉사를 했다.


  처음에는 가족도 없는 무연고자인 줄 알았는데 봉사하는 중간에 유족분이 찾아오셔서 현장을 둘러봤다는 소리를 들어보아 하니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유족들의 상황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생활이 어려워서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를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무연고자로 처리하여 시청에서 처리할 것을 요청한 것 같다. 고인의 집을 정리하는 것도 버거워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뒷 처리를 부탁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처리를 위해 여러 봉사단체가 나서서 모이게 된 것이었다.


집 안의 모든 물품을 포대자루에 넣어 버리는 모습


  현장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포대자루에 집 안팎의 물건을 모두 집어넣는 것이었다. 유족들은 유품에 대한 소유권을 모두 포기했기 때문에 모든 고인의 물품은 버리는 것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집 안은 뭔지 모를 고약한 냄새가 가득했다. 처음엔 냄새 때문에 멈칫했는데 코가 금방 적응해서 상관없었다. 약초 관련 책들이 방구석에 가득했는데 고인이 그쪽으로 관심이 많으셨는지 냉장고와 방구석 여기저기에 마른 약초가 봉지에 가득 담겨 있었다. 방바닥에 뒹굴던 노란색 두꺼운 노트에는 일기가 적혀있었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약초 채집에 대한 것이었다. 평범하게 살았던 분 같은데 갑자기 돌아가신 후 집 안이 이렇게 아수라장이 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주인이 없는 집은 순식간에 생기를 잃어버린 듯했다.


  집 밖으로 포대자루를 한참 나르고 있는데 동네 주민들이 집 안을 힐긋거리면서 봉사현장을 맴도셨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지켜보시는 건가 싶었는데 어떤 분이 밖에 놓아진 TV를 가리키면서 '이거 버리는 거죠?'라고 물으셨다. 거실 벽에 걸려있다가 방금 전에 떼어낸 것이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유족분들이 소유권을 포기하셔서 다 버릴 예정이다'라고 했더니 그분은 냉큼 본인의 몸보다 커 보이는 TV를 들고 본인의 집으로 들고 가셨다. 그분을 시작으로 쓸만한 물건들이 나오면 주민들이 지켜봤다가 하나둘씩 가져가셨다. 아무리 그래도 돌아가신 분의 물건을 별생각 없이 가져가는 게 괜찮은 건가 싶었다.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마음인 걸까. 버릴 물건이었기 때문에 가져가는 건 뭐라 할 수 없었지만 기분이 이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집 안에서 나온 포대자루를 정리해서 버리는 모습


  사람들이 물건들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해서 내부 청소 대신 집 안에서 나온 포대자루를 마을 입구에 버리는 작업으로 옮겼다. 집에서 마을 입구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다행히 트럭이 있어서 짐을 가득 싣고 옮기면서 힘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부피가 큰 가구나 세탁기·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은 차도를 막지 않게 길 가에 잘 쌓아두었다. 포대자루는 입구를 잘 묶어야 쓰레기 처리업체에서 불평하지 않고 잘 수거한다고 해서 잘 묶여있지 않은 포대자루를 찾아내 꼼꼼히 묶어서 쌓아두었다. 4~5차례 트럭으로 쓰레기를 옮겨 놓고 나서야 내부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집은 어수선했던 처음과 달리 말끔해졌다. 잠시 불편했던 마음도 쓰레기를 버리면서 함께 버렸는지 마지막에는 잔잔함이 남았다. 고인의 마음도 집 안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어 편안하게 먼 길을 떠나시길 기도했다. 고인의 마지막 이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를 여름 햇빛을 잔뜩 머금은 진한 초록빛이 버려진 고인의 물품들을 한 아름 안고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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