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싸면서 든 생각
최근에 운동을 시작하면서 식단까지 변화가 생겼다. 부모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식탐'이 많은 사람인데 체중감량과 근육량 증가를 위해서 기존의 먹는 습관을 바꾸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다. 식단은 매번 자세하게 영양소 구성을 분석하면서 준비하는 건 아니지만 현미밥 위주의 식단으로 단백질을 고정적으로 먹어야 하는 건 지켜야 했기에 운동하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먹는 닭가슴살을 대량 구매해서 먹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간은 맛있는 게 눈앞에 있어도 먹지 못하는 현실이 굉장히 짜증 났는데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조금은 식탐이라는 녀석이 차분해진 것 같다.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지라 항상 긴장 중이다.
오늘 아침에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도시락'을 싸봤다. 이전에 체중 감량을 위해 나름 노력한 것으로 점심마다 냉동된 곤약볶음밥을 데워서 준비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미밥과 반찬, 닭가슴살 100g으로 구성된 식단을 지켜야 했다. 무엇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하고 싶은 성격 때문에 도시락 통 준비부터 반찬 구성까지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은근히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트밀을 먹으면서 도시락을 어떻게 쌀까 고민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집반찬의 종류가 거의 없었다.
'지금 있는 게 멸치랑 김치, 두부, 깻잎, 닭가슴살...'
'계속 도시락을 할 거면 밑반찬도 좀 만들어놔야 하는데 어떤 반찬을 해야 번거롭지 않게 준비할 수 있으려나...'
'나물 반찬을 직접 해본 적은 없는데 잘할 수 있을까?'
마음이 갑자기 번잡해지면서 생각의 가지들이 뻗어나가는 것이 느껴지고 답답함이 느껴졌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런 생각들 때문에 행동을 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오늘 도시락 싸는 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도시락 통을 꺼내 반찬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용 도시락이라서 그런지 양이 굉장히 작아 보였다. 나는 적당한 양을 펐다고 생각했는데 반찬칸 하나에 다 들어가지 않았다. 그 부분이 조금 슬프긴 했다. (양이 한 젓가락 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오늘 할 일의 시작인 도시락 싸기를 하고 나니 무언가 많은 걸 한 느낌이 들어서 뿌듯했다.
학교 다닐 때, 아침에 일어나 주방으로 나오면 식탁에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오늘은 입맛 없다고 못 먹을 것 같다고 해도 어머니께서는 따뜻한 국물이라도 물처럼 쭉 마시고 가라고 하시면서 은근슬쩍 국에 밥을 말아서 주셨다. 집 반찬은 주기적으로 계속 바뀌었다. 주말마다 장을 보신 후 싱크대 한 가득 담긴 식재료를 손질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이걸 언제 다 먹나 했는데 그 걱정은 일주일이면 다 사라졌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굶고 다니는 꼴을 절대 못 보셨다. 어머니는 서울로 출퇴근하셨던 아버지의 아침까지 준비하기 위해 새벽 5시 정도에는 항상 일어나셨다. IMF때 아버지께서 직장에서 나오시고 잠깐 힘든 시기가 있으셨을 때도 어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깨우셨다. 그렇게 밥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오늘 도시락 싸면서 한 번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당연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선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