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준비 일기
새해 첫 주말부터 바쁜 마음으로 시작했다. 1월 말에 있을 웨딩 촬영에 필요한 것들을 점검하다 보니 신랑 쪽 턱시도가 필요했다. 예복은 맞춤과 대여, 2가지 방법으로 준비하게 되는데 나는 평소 정장을 많이 입지 않아서 대여를 하기로 했다. 대여 업체는 결혼준비 카페에 나온 대여 후기를 찾아보고 우리를 담당하는 웨딩플래너에게 요청해서 서울 청담동 쪽에 있는 2곳을 예약했다.
서울에서도 결혼 준비의 중심지인 청담동쪽이어서 그런지 스튜디오, 드레스, 예복, 예물 등 결혼 관련 업체들이 줄지어 있었다. 원주에서 올라와서 보니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고급화된 어떤 분위기가 청담동을 휘감는 느낌이었다.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찬란하게 꽃 피우기 위해 많은 커플들이 골목을 오가며 예약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격과 퀄리티, 두 가지를 잡기 위해 복잡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커플들과는 반대로 결혼 업체들은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고 날카롭게 깎은 듯한 건물에서 차분히 손님들을 기다리는 듯했다. 건물 밖에서는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오직 간판을 통해서 위치확인만 가능할 뿐이다.
처음 방문한 업체는 가성비 좋기로 유명한 업체였다. 오후 오픈시간 직후였는데도 이미 상담받는 커플들이 있었다. 예비 신랑들이 다들 왜 이리 키가 크고 몸도 좋아 보여서 조금 위축되었다.
세상엔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속으로 투덜대고 있을 때 우리를 담당해 주실 직원분이 오셔서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결혼일정과 기존에 생각해 둔 스타일이 있는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하신 뒤에 먼저 주로 많이 선택하는 예복들을 보여주시면서 입어볼 수 있게 도와주셨다. 입으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이 많았는데 가슴이 많이 패인 턱시도를 입을 때는 조끼는 입지 않는 것이 좋고 촬영 때 입는 정장에서는 대부분 조끼를 입어서 웨딩촬영 느낌이 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가장 무난한 검은색부터 밝은 베이지, 턱시도 등 컨셉과 색깔이 다른 4~5벌 정도를 갈아입는 동안 담당해 주신 분이 계속해서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시고 옷매무새를 잡아주셨다. 평소라면 그냥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을 남이 도와주니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결혼 준비 때 유일하게 신랑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신랑 예복준비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임을 오늘 알게 되었다. 갈아입은 옷의 사진 촬영도 허락해 주셔서 여자친구가 계속 찍어주었다.
어깨선도 반듯하고 깔끔하게 선이 떨어지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를 바라보니 평소에 좀 더 신경 써서 잘 입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예전에 EBS에서 사람이 입는 옷에 따라 사람들이 느끼는 첫인상이 천차만별이 되는 실험을 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병원에서 사무일을 하다 보니 남들에게 보여줄 거리가 없는 탓에 거의 꾸미고 다니지 않았다. 하필 그날 입은 옷들이 최고의 순간에 입는 옷들이기 때문에 더 대비가 된 것 같다. 나는 옷에서만큼은 고집스럽게 돈을 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자친구를 속상하게 만든 적이 많았는데 그런 기억들도 떠올라서 기분이 좋다가도 민망함도 같이 번져갔다.
2번째 방문한 곳에서는 처음 방문한 업체에 비해 감동은 덜했지만 그날 입었던 옷 전체 중에 가장 잘 맞는 옷이 있었다. 여자친구도 그 옷을 입었을 때 처음으로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어울리는 옷이었다. 다 입고 나서 업체를 결정을 해야 했는데 직원분이 계속해서 이 만큼 좋은 혜택을 드리는 곳이 없다, 품질은 여기가 가장 좋다 하면서 어필을 계속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았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경우에서 직원분의 설득에 피곤해져서 그냥 그 자리에서 계약한 경우가 있었고 여자친구의 표정도 직원분의 어필에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것 같아 다음 시간 예약된 업체에 가서 입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자리를 떠났다.
근처 카페에서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비용과 핏, 분위기 등을 고려해서 합리적인 곳이 어디일지 이야기를 계속 나눈 뒤 업체를 결정했다.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이라서 그런지 결제할 때도 마음이 한결 후련하고 아쉬움이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정장을 3벌 대여하기로 했고 (촬영 2벌, 본식 1벌) 셔츠와 구두도 모두 대여하고 촬영소품 패키지도 받아서 여러 가지 컨셉에 맞춰서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본식 후 2부 때는 따로 빌리지 않고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정장 중 깔끔한 옷을 택해서 입고 다니기로 했다. 혼주 정장대여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양가 아버님 두 분 모두 가지고 있는 정장이 있어서 따로 추가하지 않았다. 어머님들이 입으실 한복은 후에 선택하기로 했다. 옷이 자존감을 올려주는 경험을 정말 오랜만에 한 것 같다. 그동안 옷에 정말 무심했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벌은 옷을 사 보기로 여자친구에게 선언했다. 집을 합치는 김에 옷도 미련 없이 정리하려고 한다. 일상의 변화가 이렇게 또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