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파도에 휩쓸려본 게 언제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는 말이 착하다는 말,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속으로 삭이고 삭이다가 썩어갈 때쯤, 버티지 못하고 마음의 댐이 터져버리는데 그것도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음 한 켠에서는 그렇게 참지 못하고 터지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박혀 있어서 무너진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지금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어린아이가 어른 옷 입고 어른인 척했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너무 여렸고 경험이 별로 없는 내가 어려운 상황을 대처하는 태도는 그렇게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도 버티기 힘든 감정의 파도가 들이닥쳤다.
그 당시를 돌아보자면 파도의 고도는 마음의 댐 높이를 훨씬 넘겨서 무너뜨릴 정도로 강렬했다. 사실 이번 일은 5년 가까이 쌓여온 감정이 터졌다고 할 수 있겠다. 상대가 던진 말은 돌멩이처럼 작아 보였을 수도 있다. 그냥 무심하게, 해야 할 말을 했던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 이성의 끈을 끊어버린 날카로운 비수 같았다.
그날은 평소와 크게 다른 건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겸직이라는 이름하에 여러 부서에 걸쳐있었고 그것이 목을 조르듯이 답답한 상황이었다. 직급도 분명히 있었는데 그 직급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했다. 실제 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부분이 내심 신경 쓰이고 있던 참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맡고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과한 책임을 떠맡고 있다...' 등의 생각이 매일 직장을 나가는 발걸음에 채워진 족쇄였다.
또한 이런 현실에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만들어낸 좌절감은 분노로 바뀌었는데 염증이 생긴 목구멍에 힘들게 침 넘기는 것처럼 이 분노도 겨우 속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분'이 나에게 건넨 말이 시발점이었다.
'그분'은 자신의 입장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5년간 받아온 성의 없는 업무 지시로 인해 쌓인 분노는 조그마한 트리거에 펑 터져버렸다. 겸직이지만 중요한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었던 만큼 업무에 대한 공유와 설명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분'이 일하시는 스타일은 그런 당연함과는 무관했다. 나는 도와주는 입장인데 내 일정은 상관없이 업무가 진행되는 게 많고 그마저도 정해진 이후에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부분이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나에게는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일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나하고는 맞지 않아서 대면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사람이 싫으니 일에 나가기 싫은 게 당연했다.
'그 말'에 나는 독을 가득 품은 독사처럼 달려들었다.
누가 먼저 큰 소리를 질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그 시간의 장면이 사진처럼 드문드문 머릿속에 남겨져있을 뿐이다. 그분의 성격상 가만히 있을 분이 아니었기에 소리 지르면서 매섭게 노려보던 두 눈동자는 똑똑히 기억난다. 그때 나는 그분에게 같은 직장의 직원이 아니라 '남'이 되어 있었다. '니가 ~했잖아!' 하면서 소리 지르는 모습에 그분의 내면 밑바닥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화를 낸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을 상대할 때 착한 척하는 건 나만 손해다. 내 기억상으로 내 인생에 처음 큰소리를 내면서 화를 냈다. 그런데 그 화를 낸 대상에게 전혀 미안함이 들지 않았다. 후련하고 시원했다.
시원함과는 별개로 화를 낸 이후에 내 마음 상태는 이러했다. 화를 낼 때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듯 했고 이후에는 모든 걸 소진하고 잿더미만 남은 줄 알았는데 불씨가 남아서 뜨끈한 마음이 계속되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산불을 일으키는 것처럼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 조금만 마른 낙엽이 그 위에 쌓이면 활활 타오를 것 같다. 처음 화를 내본 부작용이 오래간다. 그래도 예전처럼 강한 감정에 휘말려 아무것도 못하는 게 아니라 내 중심을 잘 잡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서 더 다행이다. 불씨가 더 누그러들고 잿더미가 양분이 되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다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