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25 춘천마라톤 10K에 참여했다. 국내 3대 마라톤 중에 하나인만큼 명성도(지금 와서 보니 악명도) 높은 춘천마라톤에 추가접수로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이미 접수일이 지났다고 생각하고 일치감치 포기했던 춘천마라톤 홈페이지를 왜 들어갔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나를 접수할 수 있게 이끌어준 알고리즘은 긍정적으로 일을 잘 해냈다.
그때는 여러 가지 업무가 밀려있어서 스트레스가 극한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그러다가 춘천마라톤이 추가접수를 한다는 사실을 접수 시간 직전에 알게 되었고 가능할까 하는 마음으로 일단 참가접수를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게 뭐라고 추가접수 완료를 해내고 나서는 성취감과 함께 벅찬 감정이 들어서 그런지 일은 똑같이 바빴는데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이번에도 10K를 참가했다. 이후에 춘천마라톤에 대해서 찾아보면서 업힐(오르막) 코스여서 사람들이 PB(개인최고기록) 갱신하기 어려운 악명 높은 코스라는 후기를 보고 조금 걱정되었다. 최근 기록이 50분을 깨지 못하고 답보중이었기 때문에 업힐이라면 가장 최악의 기록이 나올 것 같았다. 처음 마라톤 했던 때와 달리 허리도 안 좋아지고 족저근막염도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했어서 몸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도 춘천마라톤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는 말라비틀어진 일상에 큰 흥분과 떨림을 가져다주었다.
10K를 참가한 지 4년 차가 되어간다. 이 정도면 하프도 도전해 볼 만하고 풀코스도 준비해 볼 시간이다. 러너들이 급격하게 많아진 요즘에 관련 유튜브도 많아졌는데 코로나 시기에 러닝을 시작한 사람들이 지금은 풀코스에 도전해서 메달을 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에 비해서 나는 발전 없이 10K만 하는 것 같아서 하프라도 도전해야 하나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는 이유는 10K 이상 달리면 '지루하기 때문'이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는데 무슨 지루함이 있냐 하겠지만 서울에서 열리는 마라톤 코스는 대부분 비슷하다. 여의도 한강공원, 광화문거리, 상암 월드컵경기장 등 정해진 코스가 3~4군데 정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하게 참여하다 보니 코스가 그놈이 그놈처럼 느껴졌고 3번 정도 같은 코스를 경험해서인지 지루함마저 느꼈다.
개인적으로 6~7K 지점부터 밀려오는 생각과 싸워 이기는 게 쉽지 않다. 그것은 '내가 왜 달리고 있지?'라는 생각이다. 스스로 참가신청해 놓고 이게 뭔 생각이냐 싶지만은 그 정도 달리면 '내가 왜 돈 내고 이 개고생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막상 완주하고 메달을 받고 나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서 다음 달에 참가할 마라톤을 또 찾게 된다. 이게 반복되는 10K 마라톤 습관(?)이다.
최근에는 이 10K 마라톤과 나의 삶을 결부 지어서 생각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가시적인 성과에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꾸준함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내 모습도 알게 되었다. 요즘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체력적인 인내와 내면의 인내와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운동선수들도 경기에 뛸 때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패배한 것이라는 말은 스포츠 판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이다. 헬스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기록을 깨기 위해서 신체적인 관리와 함께 마인드 관리를 열심히 한다. 개인적으로 헬스를 해보니 이 부분은 확실히 체감된다. 혼자서 운동하는 것과 PT 받으면서 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옆에서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면서 운동하는 것과 혼자서 한계를 끌어올리는 건 전자가 효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혼자서 할 때는 10개도 하기 힘든 무게를 PT 선생님과 하면 다리와 팔을 덜덜 떨어가면서도 그 횟수를 채우기 위해서 악을 쓰면서 해낸다. 마인드 세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목표 달성도 달라질 수 있다.
장거리 러닝은 단순히 육체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온갖 잡생각과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부분도 크다. '왜 달리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뛰는 보폭이 줄어들고 힘이 빠지는 걸 느낀다. 그 생각을 이기고 완주를 하는 것. 그것이 다른 것보다 더 값진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춘천마라톤은 최근 큰 소리로 화를 냈던 사건 이후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번에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다른 마라톤들과는 다르게 들었던 생각은 이랬다.
'내가 더 긴 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으면 그 상황에서 한 번 더 참을 수 있었을까?'
불타는 듯한 감정이 온몸을 통과하는 일을 겪고 마라톤을 준비하니 재밌는 가정을 하나 해보게 된다. 지금 보다 긴 코스를 도전해서 나를 지치게 하는 잡생각들을 이겨내는 정신적 인내력이 더 성장하면 화도 더 참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을. 화를 낸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화를 내지 않았으면 오히려 나는 내적으로 더 아픈 상황에 왔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도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내면의 그릇을 키우는 방법이 더 긴 코스를 달리면서 더 많은 생각들과 싸우다 보면 단련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이번 마라톤도 PB달성은 실패했다. 도착선을 밟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이번에도 쉬지 않고 뛰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업힐코스인데도 평소 하향세였던 기록에 비하면 잘한 것 같아서 또 만족했다. 그러면서 '다음엔 하프코스를 뛰어볼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는데 그건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된 것 같아 포기한다. 지금처럼 마음에 채워진 어두운 감정을 하나씩 빼서 성취감과 만족감으로 채워나가는 방법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당장 그릇을 키울 수 없다면 직접 내용물을 버리고 좋은 것을 채우는 방법도 현명한 선택이다. 그렇게 다음 달에 나갈 또 다른 대회를 찾고 신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