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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던 술을 끊으니

by 강현석

술을 마시지 않은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에 그래 한 번 시도해 보자 하고 시작했다가 끝내는 술을 마시지 않게까지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쉽게 술을 마시지 않게 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마시면 기분이 좋고 마실수록 자꾸 더 마시고 싶어지는 것이 술 아니던가. 때문에 그 유혹을 떨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신 다음날 아침의 고통 또한 술꾼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술로 인한 실수담은 누구나 몇 가지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술에 취해 버스에서 곤히 자다가 집을 찾지 못해 책가방을 맡기고 여관에서 자야만 했던 때도 있었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종점에서 내려 황당했던 적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젊은 시절부터 반복되면서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가졌지만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술을 마시지 말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술을 좀처럼 끊지 못하게 되자 담배 끊었을 때를 떠올렸다. 담배를 끊는 데는 꼬박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담배를 배우고 5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그렇게 힘이 들었던 것이다. 담배 끊기에 제일 큰 장애물은 의외로 친구 녀석들이었다. 친구라는 놈들이 협조는커녕 방해만 하는 것이었다. 평소 담배 인심이 박하던 녀석들조차 담배를 들이밀며 피우라고 강권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유혹을 버티지 못하고 두어 달을 끊었다가 한 대만 하다가 끊지 못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술은 담배처럼 유혹에 절대로 넘어가지 말자 굳게 다짐을 하면서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매일을 견뎠다.

그러면서도 술을 끊는다는 것은 담배를 끊는 것보다 훨씬 어려우리라 생각은 했다. 담배처럼 주위에서 그냥 두지를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시도를 해보자 결심을 했다. 처음 얼마간은 약을 먹는다거나 의사가 당분간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다고 얼버무리며 넘어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건 한두 번이나 통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술자리에 가지를 말아야 했고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여기저기서 만나자, 밥 먹자 전화가 오고, 얼굴 좀 보자 아우성을 치는데 참 환장할 노릇이었다. 자신의 술잔을 받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런다고 고분고분 물러선다면 애초부터 술 끊겠다고 선언할 내가 아니지 다짐하고 다짐하며 버텼다.


고등학교 1학년 봄방학 때였다. 저녁을 먹고 찾아간 동네 친구네 집에는 또래 친구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던 중 한 녀석이 주막에 가서 막걸리를 사 오자고 하는 것이었다. ‘막걸리라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술은 절대 안 된다고 우겼지만 녀석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녀석들의 술 솜씨는 별게 아니었다. 두어 잔도 마시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고거 마시면서 술을 마시자고 그래?’ 한마디 했다가 된통 당하고 말았다. 그때까지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고 버티고 버텼지만 녀석들의 '막걸리를 옷에 들이붓겠다'는 공갈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조금 마셨다가 죽는 줄 알았다. ‘이렇게 쓰기만 한 걸 왜 마셔?’ 하며 손사래를 치는 내게 처음에는 그렇지만 몇 번 마시면 엄청 기분이 좋아진다며 계속 잔을 내미는 통에 어쩌지 못하고 몇 잔을 더 받아 마셔야 했다. 이후 저녁마다 술을 마시게 되고 친구 녀석들의 잘 마신다는 추임새에 무슨 영웅이라도 된 양 술을 입에 드리붓게까지 된 것이다.


아주 어릴 때였다. 어느 날 저녁 잠자리에서 할머니께 어른이 되더라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할머니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그런 약속을 덜컥하고 만 것이다. 아마도 술을 좋아하셔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시는 아버지가, 술주정 한 번 하신 적은 없지만, 내 딴에는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다짐을 들은 할머니가 아침을 먹으면서 식구들에게 공표를 하는 통에 우리 식구들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술을 마시지 않을 걸로 당연히 믿고 있었다.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서 술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할머니조차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배운 술을 시골집에서 대입 재수를 하게 되면서 자주 친구들과 어울려 마시게 되었다. ‘술 안 마시겠다고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 맨날 술을 마시느냐’는 누나의 잔소리는 귓전으로 흘렸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내가 술을 못 마시는 줄 알고 계셨다. 정말 모르셨는지 모르는 체하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모르시는 걸로 알고 아버지께 술 마시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대학 시절과 군 시절 술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무교동 낙지골목이나 학교 앞 술집에서 학생증이나 책, 시계 등을 잡히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때론 잡힌 책이나 학생증을 찾으러 술집에 갔다가 서비스로 주는 한 잔 술에 마음이 동해 잡혔던 책을 또 잡히고 나와야 할 때도 있었고, 통행금지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여관방에서 자다가 술에 취하고 잠에 취해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남의 방에 들어가 잠을 자다가 쫓겨난 적도 있었다. 남의 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는 것은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는 술 마시고 한 실수로, 용서가 될 수 있었던 행위였던 모양이다.


어찌어찌하다가 한 도시의 시장이 되었다. 이제는 달라져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술을 마시게 되면 끝장을 보아야 하고 그런 때는 다음날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버릇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술은 마시면 안 되는 것이었다. 술을 마셨다고 해서 실수나 잘못이 용인되거나 양해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술을 전혀 못 마신다고, 체질적으로 마시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모두가 시장은 체질적으로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관내 순방이나 행사 자리에는 의례히 식사와 함께 술이 따랐다. 마을 어르신들은 당연히 시장에게 술을 권했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고 해도 결코 통하지 않았다. 그분들에게 시장은 ‘고을 원님’이었다. 원님에게 술 한 잔 따르겠다는 그 어르신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소주잔에 맥주를 조금이라도 받아서 마시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위태위태하게 넘길 수 있었지만 중국 출장을 가서는 사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 들은 체도 않고 술을 권하는 데는 당할 재주가 없었다. 어쩌지 못하고 독한 고량주를 몇 잔씩을 들이켜야 했다. 그 독한 술을 몇 잔이나 마시고도 끄떡 않는 모습을 지켜본 우리 직원들은 지금껏 속았다며 난리였다. 이후 어쩔 수 없이 회식 자리에서는 한, 두 잔 마시기는 했지만 여전히 평소에는 술은 마시지 않았다.


시장 직을 그만두고 나서도 술은 가급적 마시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술자리를 해야 할 때도 맥주 한, 두 잔으로 끝내곤 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술을 자제하다가 결국은 아예 술을 마시지 않게까지 된 것이다.

얼마 전 기업인으로 큰 성공을 한 고향 선배 한 분과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혼자서 술을 마시자니 영 재미가 없다며 한 잔만이라도 하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다시피 했지만 ‘술을 마시지 않은 10년 넘는 세월이 너무 아까워서... 죄송합니다.’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선배와 헤어지고 마시는 시늉이라도 할 걸 그랬나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술을 끊은 지 10년도 훨씬 넘었지만 지금도 술을 끊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 재미로 산다고, 술 마시지 않고 사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아느냐고, 술 안 마시고 사는 재미가 술 마시는 재미보다 훨씬 낫더라고 하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항상 맑은 정신으로 사는 재미, 맑은 정신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차를 끌고 가고 싶은 곳을 맘껏 다니고, 음주운전 단속 걱정할 필요가 없고... 글쎄 나 혼자만의 합리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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