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가슴 콩닥거리며 기다리던 명절이었다. 동짓날 팥죽을 먹을 때부터 기다리던 명절이 설날이었다. 동지가 지나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마다 설이 몇 밤 남았느냐고 할머니에게 묻곤 했다. 설은 왜 그렇게 더디 오던지! 설은 새 옷과 새 양말, 새 운동화를 선물 받는 날이었다. 설이 가까이 오면 어머니가 장에 갈 날만 기다렸다. 설이 가까이 오는데도 어머니가 장에 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장날은 더디 오기만 했다. 닷새를 기다리기는 참 힘이 들었다.
설날을 앞두고 장에 간 어머니가 돌아올 때쯤 되면 동구 밖까지 나가 어머니를 기다렸다. 동구 밖 모퉁이로 어머니 모습이 보이면 달려가 보따리를 빼앗아 어깨에 둘러메고 집으로 앞장서 걸었다. 보퉁이가 끌러질 때면 무엇이 나올까 기대감에 마음이 황홀해지기까지 했다. 장 보따리에서 나오는 물건은 설마다 거의 같았다. 까만 양복과 알록달록한 나일론 양말, 그리고 까만 운동화였다. 누나나 동생들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설 전날 밤에는 새 옷과 운동화를 머리맡에 곱게 개어놓고 잤다. 설날 아침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꼭두새벽이면 잠을 깼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서둘러 세수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세배할 시간을 기다렸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새 옷을 입고 자리에 앉으면 세배를 드렸다.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세배받으라고 억지로 안방으로 끌고 오면 ‘난 세배 안 받아도 된다’ 하면서도 늘 웃으며 자리에 앉곤 했다. 곧이어 친척 아이들이 와서 세배를 하면 할머니와 아버지가 모두에게 세뱃돈을 똑같이 나누어 주셨다. 세뱃돈을 받기 무섭게 친척댁으로 세배하러 달려가곤 했다. 세뱃돈 대신 콩강정이나 한과를 꺼내면 아이들 얼굴은 실망의 빛이 역력하지만 어른들은 애써 모른 체했다.
세배가 끝나고 제사를 모시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마루에서 벌벌 떨며 서 있어야 했다. 마루는 추웠고 발은 시렸다. 제사 모시는 시간은 길기만 했다. 방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어른이 하루빨리 되고 싶었다. 아이들은 절을 하면서 장난을 치고 킥킥대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친척집까지 제사가 다 끝나면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며 놀기도 하고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다니기도 했다. 동네 어른들은 떡이나 과자만 주었지 세뱃돈은 주지 않았다. 설날 아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세뱃돈을 얼마나 받았느냐는 것이었다. 모든 제사와 세배까지 끝나 집으로 가면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세뱃돈을 별도로 더 주시곤 했다. 필요한 것 외에는 절대로 돈을 주지 않는 아버지였지만 설날만은 달랐다.
설이 가까이 오면 가게에서 과자를 떼어 와 장사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은 과자 한 통을 다 팔고 나면 거의 과자 반 통 가까이 살 수 있는 돈이 남는다고 자랑했다. 나도 은근히 과자 장사를 해보고 싶었지만 아버지께 혼이 날 것 같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느 해인가 세뱃돈 중 일부를 떼어 큰맘 먹고 크레파스를 샀다. 왕자파스였을 것이다. 예쁜 비닐 상자 안에 든 크레파스는 정말 멋졌다. 색깔 가짓수도 크레용보다 훨씬 많았다. 색이 어찌나 잘 칠해지던지 그림 그리는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세뱃돈을 과자 사 먹는 데 쓰지 않고 크레파스를 샀다는 걸 알게 된 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들에게 자랑하기 바빴다. 세뱃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그 비싼 크레파스와 학용품을 다 샀다고 말을 보태기까지 했다. 좀 부끄럽기도 했지만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때부턴 더욱 모범생이 되어야 했다.
설이 끝나고 정월 대보름까지는 집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전통적인 풍습이기도 했지만 하지 않으면 화라도 입지 않을까 하여 꼭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정초에는 집집이 마당 한가운데 깨끗한 물을 담은 그릇이 놓인 상을 모셨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그 상 앞에 엄숙하게 앉아 뭔가를 정성스레 빌곤 했다. 아마 정월 대보름날까지 매일 그랬을 것이다. '소 날'엔 외양간 위 다락에 콩을 볶아서 얹어 놓아야 했고 '용 날'인가에는 새벽에 일어나 이웃집 부엌으로 달려가 솥뚜껑을 열어 놓아야 했다. 솥뚜껑은 반드시 다른 집 남자아이가 열어 놓아야 했기 때문에 '큰 집' 부엌은 늘 내 차지였다. 깜깜한 부엌에 들어가 솥뚜껑을 여는 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솥뚜껑 여는 소리에 잠을 깬 큰 집 형수가 나와 칭찬을 하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집안 부엌에는 정갈한 쌀만 골라 담은 ‘용 단지’라는 항아리를 구석에 두었고 안방 실겅에는 깨끗한 쌀을 담고 창호지로 덮어 실타래로 묶은 삼신할미를 위한 바가지를 얹어 두어야 했다. 이 '용 단지'나 '삼신할미 쌀'은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여름철 쌀이 다 떨어지면 어머니는 할머니께 드릴 밥을 짓기 위해 이 '용 단지' 쌀이나 '삼신할미 쌀'을 헐어야 했다. 대청마루 안방 문 위에는 창호지를 여러 장 겹치고 그 위에 나무를 대고 실타래로 묶은 신주를 모셨다. 아이들 백일이나 돌잔치 때면 이 신주 앞에 미역국과 하얀 쌀밥을 가득 담은 상을 차려 놓고 할머니는 아이 건강하고 잘 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정월 대보름이 가까워지면 마을 풍물패들이 지신밟기를 한다. 집집마다 풍물패가 다니며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며 집안 곳곳에 있는 귀신을 몰아내는 풍습이었다. 풍물패는 마당을 돌며 흥겹게 놀다가 부엌으로, 마구간으로, 정랑(화장실)까지 두루 다니면서 풍악을 울려 댔다. 이럴 때 형편이 닿으면 돈을 내놓고 형편이 못 되는 집은 막걸리와 간단한 음식을 내왔다. 집집을 거쳐 가면서 풍물패들은 점점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 갔다. 아이들과 구경하던 할머니, 아낙들까지 덩달아 신이 나서 풍물패를 쫓아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대보름날을 맞는다. 보름 전날쯤인가는 동네 어른들이 붉은색 팥 바위 흙을 동네 어귀와 골목길에 뿌리고 마을 입구에는 솔가지를 단 금줄을 쳤다. 집집마다 사립문 앞에 팥 바위 흙을 뿌리고 금줄을 달았다. 보름날 이른 새벽, 남정네들은 마을 입구 당나무와 성황당에 가서 한 해 동네가 무사하기를 비는 제사를 올렸다. 대보름날은 정말 신나는 날이었다. 이른 새벽이면 일어나 온 가족이 동탯국과 함께 찰밥과 오곡밥을 먹었다. 마을 청년들은 대보름날 새벽, 여인네 복장을 하고 집집이 찰밥을 얻으러 다녔다. 대보름날 여러 집에서 밥을 얻어먹을수록 복을 더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다. 찰밥은 일주일 이상 먹을 수 있도록 넉넉하게 지었다. 함지박에 담아 둔 굳은 찰밥은 맨손으로 뜯어먹으면 아주 맛이 있어 수시로 들락거리며 찰밥을 뜯어먹곤 했다. 대보름날은 해가 지기 전 이른 시간에 저녁밥으로 국수를 먹어야 했다. 국수처럼 명이 길어지라는 의미라고 했다. 생일날 저녁도 마찬가지 의미로 국수를 먹었었다.
거지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평소 아침밥을 먹고 있노라면 한, 두 명의 거지가 빠지지 않고 찾아오곤 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특히 거지가 많이 찾아왔다. 문둥병 환자도 많았다. 이들은 두, 세 사람이 함께 다니며 동냥질을 했다. 아이들은 이들을 몹시 무서워했다. 문둥병을 나으려고 아이들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마루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문둥이 두 사람이 동냥을 얻으러 왔다. 집에는 나 혼자뿐이어서 무척 무서웠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얼른 고방으로 가 쌀을 한 바가지나 퍼서 자루에 부어 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나는 안 줘요? 나도 좀 주소’ 하는 것이었다. 아이한테 존댓말 하는 것이 무서워 얼른 쌀을 한 바가지 더 퍼서 주었다. 어머니께 동냥 온 문둥이에게 쌀을 한 바가지 퍼주었다고 말은 했지만 끝내 두 사람 모두에게 쌀을 퍼주었다고 하지는 못했다.
대보름날 저녁이면 일찌감치 저녁밥을 먹은 아낙네들은 마을 앞동산에 올라가 달을 보고 절을 하면서 뭔가 소원을 빌었다. 남자아이들은 숯불을 깡통에 담아 빙빙 돌리며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대보름 다음날은 귀신날이었다. 귀신날 오후가 되면 겨우내 날리며 놀았던 연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려 보내야 했다. 연을 날려 보내기는 정말 싫고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에 귀신이 붙기 때문이었다. 귀신날 밤에는 귀신이 신발을 신고 가지 못하도록 신발을 방에 들여놓고 자야 했다. 귀신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세기 때문에 잠을 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잠을 자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곤 했지만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일어나면 아침이었다. 일어나기 무섭게 눈썹이 세지는 않았나 거울부터 들여다보곤 했다. 어머니나 누나는 잠든 동생들 눈썹에 떡 쌀가루를 칠해 놓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난 여동생은 거울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보름 동안 겨울 휴가를 끝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곤 했다.